전통시장은 쇼핑에도 불편하며 청결하지도 않고 때로는 시장에서 무언가를 구매하는 일이 매우 지치고 귀찮은 일이 되기도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많은 시장 상인들은 3-40대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지 못할뿐더러 흐름에도 완전히 뒤쳐졌다. 전통시장의 위기는 그것을 움직이는 상인들이 현대의 트렌드에 맞추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탓이 아니다. 기존의 전통시장의 영업 방식과 시스템을 지지해줄 장노년층은 점점 줄어 가고 있다. 그 점에서 보자면 전통시장은 위기가 아니라 세대교체에 의한 자연적 쇠퇴라고도 볼 수 있다. 자연적 쇠퇴에는 물을 아무리 붓는다 하여도 소용이 없다.
'진보'보다는 '보수'에 훨씬 더 가까울 그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결정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나름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안보를 그토록 외치던 보수 정권하에서 정작 안보에 필요한 군의 변화에는 무감각하거나 외려 변화를 거부하는데 혈안이 되는 모습만 연출했고, 그런 현실이 바로 본인이 가장 열정적으로 추진한 특전사의 개혁 무산에서 극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겨우 칼 하나 안 사줬다고 그쪽에 붙냐'며 비아냥거리지만, 칼'을' 안 사줘서가 아니라 칼'조차' 안 사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 지지가 임기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두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그는 실정이 있을 때마다 기뻐했다. 파병, FTA, 노동유연화 정책 같은 것에 반발이 일어날 때면 "그것 봐! 내가 그럴 거라고 했지! 지지했던 놈들 다 반성이나 하나?!" 하며 조금씩 신나했다. 먼저 알아본 자신의 선구안과 근본까지 꿰뚫어보는 심미안(?)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몇 차례 그런 장면을 보다가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원하는 게 세상이 좋아지는 건가요, 당신의 적이 실패하는 건가요? 당신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신념을 내걸고 운동하는 사람인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면서 세상이 나빠진 일에 왜 기뻐하나요?"
〈사가〉의 매력은 완벽하게 평등한 존재들에 있다. 알라나와 마르코의 외양은 다르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하나는 천사처럼 날개가 있고, 하나는 악마처럼 뿔이 달려 있다. 그들을 쫓는 킬러들, 프리랜서라 불리는 이들은 저마다 모습이 다르다. 윌은 우리 인간과 똑같아 보이고, 그가 사랑하는 스토크는 눈과 팔다리가 몇 개인지 한참 세 봐야 한다. 별 하나가 하나의 존재이기도 하고, 죽어 있는 존재들도 살아있는 이들과 대화를 하고 영적인 관계를 맺기도 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혐오하는 것은, 당장 싸우고 있는 랜드폴과 리스뿐이다. 〈사가〉는 남자와 여자, 산 것과 죽은 것, 인간과 동물, 외계인 등 모든 존재를 같은 위치에 놓는다.
아마도 80, 90년대,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그림을 표현의 자유와 풍자의 프레임으로만 보았을 여성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여성들에게 젠더질서의 변화가 정권교체만큼 중요한 현실이 된 것을 작가는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 여성비하를 자청하고 있는 시국에서 이런 그림이 가지는 풍자적 의미는 무엇일까? 오히려 대통령이 여성임을 부각시키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해온 여성들의 활동과 문제의식을 공격하는 혹은 무시하는 수준의 작품이 아닐까? 남성 작가나 국회의원이 여성들의 문제제기를 의식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세상은 끝나가고 있다.
남성과 여성은 평균 학력, 평균 혼인연령, 종사직종 등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이런 차이도 총임금격차에 포함됩니다. 총임금격차에서 차별을 추출해 내야 합니다. 어떻게? 차이와 차별을 분리한 연구 결과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분리한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연구 결과값을 제시하며 임금 격차의 몇 퍼센트가 차별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준 뒤 넘어갈 수 있습니다. 쓰는 저와 읽는 여러분 모두 편합니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엄밀한 의미에서 설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보고 나서도 "그게 왜 차별인지, 어째서 꼭 그만큼이 차별인지" 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정감 어린 대화를 나눴어야 할 동맹의 두 정상이 왜 "최악의 통화"를 나누었을까? 왜 트럼프는 애초 1시간으로 예정된 전화회담을 25분 만에 중단한 것일까? 턴불은 양국간 합의한 난민교환협정의 이행을 확인해 달라고 트럼프에게 요구하였다. 트럼프는 이를 수용하면 "(내가) 정치적으로 죽을 것"이라며 "보스턴 폭파범을 수출하려고 하냐"며 호주 총리에게 쏘아붙였다. 이행 확인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통화 당일은 트럼프가 반이민 행정명령을 시행한 날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기본소득의 주요 주창자들이 보수주의 정치 사상가들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19세기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과 20세기 자유지상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을 꼽을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먼은 국가가 보편적 사회복지를 구현하고자 세금을 많이 징수하거나,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거나 또는 정년을 정하여 기업에 권고하는 등의 정책이 모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왜일까? 간단하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누구라도 자유를 구가하는 삶을 허용할 터인데, 기본소득은 자유를 위한 최소의 물질적 조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취하는 여자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이슈가 떴다. 이 이야기 역시 여러가지로 보도할 수 있다. 연합뉴스가 택한 방법은 여성의 피해자화다. 기사의 사진은 등을 보이는 여성의 사진이다. 당신은 가해자의 시선으로 여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혼사녀'라는 신조어까지 붙였다. 하여튼 XX녀라고 안 붙이면 사내복지에, 인사고과에 영향이 가나 보다. 하나하나만 보면 크게 비판거리가 안 될 것 같지만, 그게 모자이크처럼 합해져서 치안은 좋다지만 여성 상대 강력 범죄가 다른 나라보다 높은 한국이 된다.
협치는 좋은 것이다.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관건은 상대가 누구냐다. 민주적 기본질서와 보수적 가치에 충실한 보수정당이라면 대화와 협치의 상대로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와 보수적 가치에 충실한 당인가? 새누리당은 민주적 기본질서의 바깥에서, 헌법을 파괴하고 민주공화정을 유린한 박근혜-최순실 일당을 여전히 비호하는 정당이 아닌가? 그런 정당과 협치와 대화가 가능한가?
김정은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가 신년사에서도 "군사기술적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한 말이 과장이 아님을 내외에 보여 주기 위해서는 KN-08이나 KN-14, 그것도 아니면 괌 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둔 무수단이라도 발사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김정은은 트럼프가 두렵다. 난폭자는 난폭자를 안다. 국내외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침없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7개 이슬람 국가 시민들의 미국 입국 금지령을 내리고, 중국·일본·독일을 상대로 '금융전쟁'을 선포하는 트럼프의 미국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다가는 불벼락을 자초할지도 모른다. 미사일 시험발사에 관한 한·미 정보당국의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는 것도 김정은이 빠진 딜레마 탓일 것이다.
헌법재판관 중 박근혜씨가 임명한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에 대한 우려가 많이 들려옵니다. 법은 정치의 영향을 받지만 법 자체의 논리가 있습니다. 최고 법률가로서 민주헌정의 권위를 바로 세우는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거나 또는 결정을 무한정 연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묻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실망하고 분노한 촛불 시민의 선택은 제가 예단할 수 없습니다.
법관, "법원이 증거제출명령을 내렸을 때 행정부는 그냥 무시해 버렸죠?" (중략) "당신이 그 사실(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모른다면 어떻게 대통령을 탄핵하죠?"/ 대통령 쪽 변호인, "안다면 탄핵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모른다면 탄핵할 수 없습니다."/ 법관,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대통령이 불법을 지저르는 것을 알면, 탄핵할 수 있지만,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증거제출명령밖에 없을 땐, 탄핵할 수 없다. 고로 당신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얘깁니다."/ 법정 안에 폭소가 터졌다.
DON'T - 뜨거운 샤워기 아래서 넋 놓고 서 있기 외출에서 돌아와 하는 뜨거운 물 샤워는 온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마법과 같은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 동안 피부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장시간의 뜨거운 물 샤워는 피부 표면에 남아 있는 마지막 피지까지도 녹여내기 때문이다. 샤워 직후는 피부가 촉촉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이는 겨울철 밤을 괴롭히는 피부 소양증의 원인이 된다. 샤워는 긴장이 풀릴 정도의 따뜻한 온도에서 짧은 시간에 끝내도록 한다.
정유라의 특권에 분노하는 국민도 그런 특권을 가능하게 하는 학벌주의에 대해서는 의외로 둔감한 경우가 많다. 청문회에서 고위공직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 다들 혀를 차면서도 정작 부동산 불로소득을 허용하는 제도 자체를 확실하게 손볼 생각은 안 한다. 제도 앞에서 개인은 수동적이 되어 개혁보다는 적응을 택한다. 심지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쟁취한 특권은 정당하고 나아가서는 특권적 제도마저도 나쁘지 않다고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특권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사회 상층부에 많이 포진해서 그런지, 특권을 개혁하자는 주장을 불온시하기까지 한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발하는' 미국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너무 부럽다. 현직 외교관 중 약 1,000여명이 반대의견을 밝혔다. 뉴욕 시카고 등 400여개 도시는 행정명령 집행을 중단하며 '피난처'를 자처하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며, 동시에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만일 한국에서 박근혜와 이명박의 '매우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현직 공무원이 반대입장을 밝히고, 기업들이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지방정부가 중앙정부 정책에 반대되는 피난처를 제공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도대체 미국은 왜 한국과 다를까?
별다른 공신력 있는 자료도 없고, 자신들이 직접 근거로 내세운 엠마 왓슨의 연설에 "Gender Equalism"이 전혀 언급되지조차 않는다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이러한 주장 혹은 망상이 반년 가까이 제멋대로 자라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우리는 "성 평등주의"가 여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제시되어 여러 남초 커뮤니티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상황을 ①한편으로 껄끄러운 여성주의(자)를 덜 합리적인 이들로 낙인찍어 몰아내면서도 ②동시에 이제 현실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든 과거의 남성우월주의로 퇴행하는 걸 피하면서 ③합리성·정상성과 남성의 권리를 함께 점유하고픈 한국 남성들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방금까지 간호사를 붙들고 소리 지르던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외쳤다. "이 새끼가,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그 태도가 너무 위협적이라 무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제발, 제발 당신 친구분을 살리려고 합니다. 저는 여기 유일한 주치의고, 당신 친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건 꼭 필요한 시술인데다가 위험한 시술이기도 합니다. 여기 전부 멸균되어 있으니 제게 손대지 말고 제발 나가주세요." "미친새끼. 어린 새끼가 나한테 나가라고? 나가라고?" 두 손과 환부가 소독된 상태였으므로 마음이 급해져 더 이상 응대할 수 없었다.
부통령제는 이번 탄핵 사태처럼 대통령이 유고(有故) 상태가 될 때 빛을 발한다. 황교안이 대통령 노릇을 "대행"하는 것을 야권이나 국민들이 용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국민들 손에 의해 직접 뽑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부통령이 있었다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사망이든 탄핵이든 대통령 유고 상태가 되면 부통령이 즉각 대통령직을 승계하면 된다. 그렇다면 야권이나 국민들이 이렇게 대통령직을 승계한 부통령을 지금 황교안에게 하듯이 불신하고 심지어 사퇴하라고까지 얘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