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 무능과 부패를 감추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에게 법관이 파면을 명령하는 나라! 삼권분립은 책에서 본 것보다 훨씬 놀라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문도 놀라웠다. 쉽고 분명한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 '이런 건 잘못했지만 이런 건 잘했고' 하는 식의 '물타기'나, '이쪽이 잘못했지만 이쪽도 이런 잘못이 있고' 같은 '양비론'식 표현이...
법관, "법원이 증거제출명령을 내렸을 때 행정부는 그냥 무시해 버렸죠?" (중략) "당신이 그 사실(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모른다면 어떻게 대통령을 탄핵하죠?"/ 대통령 쪽 변호인, "안다면 탄핵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모른다면 탄핵할 수 없습니다."/ 법관,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대통령이 불법을 지저르는 것을 알면, 탄핵할 수 있지만, 그걸 알...
지난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1, 2차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칭찬은커녕 욕을 하는데 그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다. 거기에 비하면 언론은 물론,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실린 청문회에 대한 비난까지도 훨씬 순했다. 왜? 대통령 탄핵 투표가 코앞에 있었기 때문일 거다. 탄핵 가결을 바라는 마음에 국회에 대한 비난을...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봤다. 한쪽 눈에 백내장 수술을 한 뒤 처음 본 영화였다. 달라진 시력에 적응이 안 돼 큰 화면을 보는 동안 멀미감이 밀려왔다. 당연히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뿌듯한 고양감이 생겼다. 기적이 내 곁에서 막 벌어진 것 같은 느낌. 그게 오래간다. 이 영화가 뭘 한 거지? 한 번...
'세상 공짜 없다.' 정확하고 옳은 말이다. 누가 공짜로 뭘 많이 주려고 하면 경계해야 한다. 남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고 뭘 취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공짜로 받고, 공짜로 남을 부리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그게 이 말의 뜻일 거다. 김영란법의 취지도 같다. '공짜 돈 뒤엔 반드시 청탁이 따른다. 그러니 공짜 자체를 막자!'
몇 달 전 어머니가 이사를 하셨다. 에어컨을 사야 하는데, '동네에 산이 많아 시원하니 에어컨 없어도 된다'는 어머니 말씀도 있고 해서 차일피일 뭉갰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대형 마트에 갔다. 잘 나가는 신상품 에어컨 가격을 알아보고 인터넷몰에 올라온 가격과 비교해봤다. 역시 인터넷이 훨씬 쌌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를 봤다. 현대전이 이렇구나, 새삼 놀라게 하는 독특한 전쟁영화였다. 영국, 미국, 케냐, 3국 군이 케냐 상공에 무인 감시 비행기, 속칭 '아이 인 더 스카이'를 띄워 놓고 테러리스트 체포 작전을 편다. 지상군을 대기시켜 놓았지만, 손쓸 틈도 없이 테러리스트들이 민병대 자치 지구의 안가로 이동한다. 지상군...
1987년 6월에 난 군 복무 중이었다. 부대는 수도권에 있었고 영관급 장교가 많았다. 어느 날 야간 당직 사병이 상급 부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대령들 몇 명을 지목하며 더플백과 세면도구 갖고 출동 준비를 하라고 했단다. "계엄이 선포되면 행정부처를 인수하는 책임자가 대령이래." "정말 계엄을 선포하는 건가?" 공포감에 한기가 올라왔다. 그때 야전부대에서 복무했던...
지난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리 손자 베스트>(김수현 감독)가 처음 상영됐다. 백수 노인과 백수 청년, 둘이 주인공인데 둘 다 우익단체 소속이다. 노인은 '어버이 별동대'의 대장이고, 청년은 인터넷 모임 '너나베스트'에 사진과 글을 열심히 올린다. 정치 문제에 세대 문제까지 '핫'한 요소들이 엉킨 설정이다. 최근의 어버이연합 논란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주 가서 봤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은 영화 <스윙보트>(2008년)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유권자가 나온다. 중년 남자 '버드'는 미국 대통령 선거일에 투표장에 가지 않았는데, 딸이 몰래 투표장에 들어가 아버지 대신 투표를 한다. 그 순간 공교롭게도 투표기의 콘센트가 청소부의 빗자루에 걸려 빠지는 바람에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킨다. 나중에 투표 결과를 집계했더니 공화당·민주당 후보 둘 다 동점으로...
필리버스터 때문에 유명해진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1939년 작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필리버스터의 승리로 끝난다. 초짜 상원의원 스미스가 재벌과 정치인이 야합해 만든 댐 건설 예산안을 막으려고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 대다수 의원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방청석을 찾고 기자들도 스미스에게 동조하지만 재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언론의 보도는 스미스에게 적대적이다. 연설 시작 23시간이 지나 스미스는...
얼마 전 개봉한 <빅 쇼트>는 2008년 미국 금융대란의 주범인 모기지론이 거품투성이여서 주가가 폭락할 것을 미리 알고 공매도해 떼돈을 번 사람들의 실화다. 모기지론을 신처럼 떠받들면서 금융대란을 부추긴 거대 금융회사의 뒤통수를 때려 대박을 터뜨린 이들의 통쾌한 이야기? 주인공들의 예상은 정확했지만, 수백만명이 집을 잃고 실직하는 비극 위에 벌어들인 그들의 돈이 어딘가 찝찝하게 여겨지는...
부산시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금 엉뚱한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 검찰 출입 기자 할 때 서울지검이 유명한 국악계 인사를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하면서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돌렸다. 돌릴 땐 표정이 좋았는데 다음날 낯빛이 흐렸다. 청와대에서 쓴소리 들었다고 했다. 세계적인 예술가의 명예를 그렇게 떨어뜨려야 했느냐고. 사전에 이런 사람을 구속한다고...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를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이런 큰 기업 대표가 자기 이득 챙기겠다고 아동 음란물 유통을 방치했다고? 일부러는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카카오톡 안에서 유통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책임져라? 그게 형사처벌할 만큼 비난 가능성이 있는 건가?' 진짜 궁금함은 그다음에 생겼다. 기사를 뒤져봐도 이렇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2심 선고공판을 봤다. 그 뒤 기사들을 보니 어딘가 부족하고 부정확했다. 판결은 조 교육감이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행위를 둘로 구분해, 하나는 무죄이고 하나는 유죄라고 했다. 대다수 기사는 '처음 의혹제기는 무죄이지만, 고 후보가 아니라고 한 뒤에도 의혹을 제기한 건 유죄'라는 식이었다. "첫 의혹 제기는...
이소룡이나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혁명이나 독립운동 같은 실제 역사의 투쟁 공간에 들어와 활약하는 영화! 그런 걸 보고 싶어 한 적이 있다. 왜? 실제 투쟁은 엄숙하고, 처참한 폭력과 마주해야 하고, 공동체에 복무해야 하고, 자유롭지도 않은 대신, 이소룡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온 활극엔 단독자의 자유와 낭만이 있고, 무엇보다 폭력의 통쾌함이 있어서였을 거다....
셰프 전성시대다. '셰프'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지 몇 해 안 되는 것 같은데 어느새 그 셰프들이 텔레비전을 점령했다. 요즘은 너무 자주 나와 식상할 정도다. 그래도 셰프라 부르든, 요리사라 부르든 나도 그들이 좋다. 간단한 말 한마디로 그들의 요리가 취미를 넘어 장인의 영역에 있음을 드러낼 때 정말 멋있다. 요리 실력에 더해 구사하는...
(0) 댓글 | 게시됨 2017년 03월 15일 | 00시 2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