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은 평균 학력, 평균 혼인연령, 종사직종 등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이런 차이도 총임금격차에 포함됩니다. 총임금격차에서 차별을 추출해 내야 합니다. 어떻게? 차이와 차별을 분리한 연구 결과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분리한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연구 결과값을 제시하며 임금 격차의 몇 퍼센트가 차별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준 뒤 넘어갈 수 있습니다. 쓰는 저와 읽는 여러분 모두 편합니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엄밀한 의미에서 설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보고 나서도 "그게 왜 차별인지, 어째서 꼭 그만큼이 차별인지" 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기본소득의 주요 주창자들이 보수주의 정치 사상가들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19세기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과 20세기 자유지상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을 꼽을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먼은 국가가 보편적 사회복지를 구현하고자 세금을 많이 징수하거나,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거나 또는 정년을 정하여 기업에 권고하는 등의 정책이 모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왜일까? 간단하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누구라도 자유를 구가하는 삶을 허용할 터인데, 기본소득은 자유를 위한 최소의 물질적 조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취하는 여자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이슈가 떴다. 이 이야기 역시 여러가지로 보도할 수 있다. 연합뉴스가 택한 방법은 여성의 피해자화다. 기사의 사진은 등을 보이는 여성의 사진이다. 당신은 가해자의 시선으로 여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혼사녀'라는 신조어까지 붙였다. 하여튼 XX녀라고 안 붙이면 사내복지에, 인사고과에 영향이 가나 보다. 하나하나만 보면 크게 비판거리가 안 될 것 같지만, 그게 모자이크처럼 합해져서 치안은 좋다지만 여성 상대 강력 범죄가 다른 나라보다 높은 한국이 된다.
협치는 좋은 것이다.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관건은 상대가 누구냐다. 민주적 기본질서와 보수적 가치에 충실한 보수정당이라면 대화와 협치의 상대로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와 보수적 가치에 충실한 당인가? 새누리당은 민주적 기본질서의 바깥에서, 헌법을 파괴하고 민주공화정을 유린한 박근혜-최순실 일당을 여전히 비호하는 정당이 아닌가? 그런 정당과 협치와 대화가 가능한가?
김정은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가 신년사에서도 "군사기술적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한 말이 과장이 아님을 내외에 보여 주기 위해서는 KN-08이나 KN-14, 그것도 아니면 괌 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둔 무수단이라도 발사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김정은은 트럼프가 두렵다. 난폭자는 난폭자를 안다. 국내외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침없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7개 이슬람 국가 시민들의 미국 입국 금지령을 내리고, 중국·일본·독일을 상대로 '금융전쟁'을 선포하는 트럼프의 미국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다가는 불벼락을 자초할지도 모른다. 미사일 시험발사에 관한 한·미 정보당국의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는 것도 김정은이 빠진 딜레마 탓일 것이다.
헌법재판관 중 박근혜씨가 임명한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에 대한 우려가 많이 들려옵니다. 법은 정치의 영향을 받지만 법 자체의 논리가 있습니다. 최고 법률가로서 민주헌정의 권위를 바로 세우는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거나 또는 결정을 무한정 연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묻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실망하고 분노한 촛불 시민의 선택은 제가 예단할 수 없습니다.
법관, "법원이 증거제출명령을 내렸을 때 행정부는 그냥 무시해 버렸죠?" (중략) "당신이 그 사실(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모른다면 어떻게 대통령을 탄핵하죠?"/ 대통령 쪽 변호인, "안다면 탄핵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모른다면 탄핵할 수 없습니다."/ 법관,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대통령이 불법을 지저르는 것을 알면, 탄핵할 수 있지만,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증거제출명령밖에 없을 땐, 탄핵할 수 없다. 고로 당신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얘깁니다."/ 법정 안에 폭소가 터졌다.
DON'T - 뜨거운 샤워기 아래서 넋 놓고 서 있기 외출에서 돌아와 하는 뜨거운 물 샤워는 온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마법과 같은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 동안 피부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장시간의 뜨거운 물 샤워는 피부 표면에 남아 있는 마지막 피지까지도 녹여내기 때문이다. 샤워 직후는 피부가 촉촉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이는 겨울철 밤을 괴롭히는 피부 소양증의 원인이 된다. 샤워는 긴장이 풀릴 정도의 따뜻한 온도에서 짧은 시간에 끝내도록 한다.
정유라의 특권에 분노하는 국민도 그런 특권을 가능하게 하는 학벌주의에 대해서는 의외로 둔감한 경우가 많다. 청문회에서 고위공직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 다들 혀를 차면서도 정작 부동산 불로소득을 허용하는 제도 자체를 확실하게 손볼 생각은 안 한다. 제도 앞에서 개인은 수동적이 되어 개혁보다는 적응을 택한다. 심지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쟁취한 특권은 정당하고 나아가서는 특권적 제도마저도 나쁘지 않다고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특권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사회 상층부에 많이 포진해서 그런지, 특권을 개혁하자는 주장을 불온시하기까지 한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발하는' 미국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너무 부럽다. 현직 외교관 중 약 1,000여명이 반대의견을 밝혔다. 뉴욕 시카고 등 400여개 도시는 행정명령 집행을 중단하며 '피난처'를 자처하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며, 동시에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만일 한국에서 박근혜와 이명박의 '매우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현직 공무원이 반대입장을 밝히고, 기업들이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지방정부가 중앙정부 정책에 반대되는 피난처를 제공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도대체 미국은 왜 한국과 다를까?
별다른 공신력 있는 자료도 없고, 자신들이 직접 근거로 내세운 엠마 왓슨의 연설에 "Gender Equalism"이 전혀 언급되지조차 않는다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이러한 주장 혹은 망상이 반년 가까이 제멋대로 자라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우리는 "성 평등주의"가 여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제시되어 여러 남초 커뮤니티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상황을 ①한편으로 껄끄러운 여성주의(자)를 덜 합리적인 이들로 낙인찍어 몰아내면서도 ②동시에 이제 현실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든 과거의 남성우월주의로 퇴행하는 걸 피하면서 ③합리성·정상성과 남성의 권리를 함께 점유하고픈 한국 남성들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방금까지 간호사를 붙들고 소리 지르던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외쳤다. "이 새끼가,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그 태도가 너무 위협적이라 무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제발, 제발 당신 친구분을 살리려고 합니다. 저는 여기 유일한 주치의고, 당신 친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건 꼭 필요한 시술인데다가 위험한 시술이기도 합니다. 여기 전부 멸균되어 있으니 제게 손대지 말고 제발 나가주세요." "미친새끼. 어린 새끼가 나한테 나가라고? 나가라고?" 두 손과 환부가 소독된 상태였으므로 마음이 급해져 더 이상 응대할 수 없었다.
부통령제는 이번 탄핵 사태처럼 대통령이 유고(有故) 상태가 될 때 빛을 발한다. 황교안이 대통령 노릇을 "대행"하는 것을 야권이나 국민들이 용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국민들 손에 의해 직접 뽑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부통령이 있었다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사망이든 탄핵이든 대통령 유고 상태가 되면 부통령이 즉각 대통령직을 승계하면 된다. 그렇다면 야권이나 국민들이 이렇게 대통령직을 승계한 부통령을 지금 황교안에게 하듯이 불신하고 심지어 사퇴하라고까지 얘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시리아에서 다쳐서 요르단 국경을 넘을 때 대개는 환자만 국경을 넘는 것이 허가된다. 시리아 전쟁이 그치지 않은 시국에서는 국경의 보안이 철저하다. 구급차에 실려 있는 아이 옆에 함께 올라있는 엄마일지라도 종종 함께 넘어오는 것을 허가 받지 못한다. 결국 아이만 내려오게 되고, 아이가 다쳐서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의 옆에 있을 수도 없는 상황까지 겹쳐 더 막막한 느낌이 드는 상황이 되고, 아이는 아이대로 어린 나이에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나온 상황이라 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
우리 몸이 자체적으로 만들지 않은 화학물질이 체내로 들어오면 우리 몸은 이들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배출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이들의 주된 배출 경로가 바로 소변과 담즙입니다. 특히 담즙은 지용성이 강한 종류들이 많이 배출되는 경로인데요 화학물질은 지용성이 강할수록 우리 몸에 더 해롭게 작용한다고 보시면 확실합니다. 따라서 뉴트리아의 담즙을 먹는다는 것은 그 몸에 좋다는 우르소데옥시콜산 성분과 함께 뉴트리아가 야생에 살면서 노출되었던 유해화학물질들 중 특히 지용성이 높았던 종류들, 발암물질이기도 하고 환경호르몬이기도 한 그런 화학물질들을 같이 먹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동안 뉴트리아가 서식했었던 낙동강의 수질이 어떠했는지는 제가 굳이 설명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라 봅니다.
너도 프리랜서 나도 프리랜서, 둘 다 집에 있으면 같이 육아를 해야지 왜 나만 노동량이 많은 거야? 공동육아가 꿈이었던 여자는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낳자 꿈은 그냥 꿈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단 '아이를 본다'는 개념이 서로 달랐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관습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길 바랐고 가끔 '가부장적이지 않은 자신'을 칭찬해주기 바랐다. 육아를 돕는 나, 집안일을 돕는 나, 여러모로 아내를 '돕는'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져서 대놓고 조력자로 머물기로 했다. 조력자가 아닌 동료를 원했던 여자는 화가 났고 매일 싸우던 부부는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는 외설적인(?) 예술을 규제해왔다. 멀리는 1950년대 정비석의 〈자유부인〉에서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 염재만의 〈반노〉, 가까이는 장정일의 〈아담이 눈들 때〉와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외설적인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고발 내지는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외설적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예술을 탄압하는 것은 예술과 사회의 경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예술은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서는 안되며,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불온한 것은 예술에서도 표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류 예술관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 단호하게 "No"라고 외칠 수 있는 관료집단의 존재였습니다. 요즈음 대통령의 불법적인 지시 혹은 명령에 맹종하다가 줄줄이 엮여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왜 "아니요."를 외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단지 부당한 지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불법적인 지시였는데도요. 그들은 그 알량한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불법적 행동에 앞장서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소위 공직자란 사람들이 명백하게 불법적인 지시에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장서 하수인이 되기를 자청했다는 건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한 정치인의 "됨됨이"나 그릇은 권력의 자리에 있을 때만큼이나 어떤 자리에서 물러날 때 드러난다. 그점에서 반씨의 퇴임사는 얼마전 대선 경쟁에서 물러난 모 시장의 그것과도 비교된다. 한 사람은 경쟁에서 물러나면서도 남 탓을 한다. 다른 사람은 자기 탓을 한다. 그들의 속마음이나 "진면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민들은 남 탓하는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점에서 반씨는 물러나는 순간까지도 큰 정치적 실책을 했다. 자신이 정치적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는 걸 대중에게 여실히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