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 요청은 '여론재판'이 아니다. 이재용이 불구속 상태에 있으면 삼성의 조직적 힘이 작동하면서 실체적 진실이 계속 은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재용은 일개 시민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거대 권력의 수장이다. 특검이 이재용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이재용이라는 시민에 대한 응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직의 수장이 격리되어 있어야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의연 판사는 이상의 점을 간과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처벌까지 불투명해질 수가 있습니다. 이미 할아버지 이병철과 아버지 이건희 사건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5.16쿠데타 이후 '부정 축재자 1호'로 지목됐지만, 공장을 지어 주식을 헌납하면서 감옥을 가지 않았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100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고작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만 선고받았습니다. 전직 대통령들도 구속됐었지만, 삼성가 총수들은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무법지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단죄한 사법기관에서 그를 두고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국민에게 허탈감만 안겨주고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죄는 가볍지 않다"면서 그가 개인용도로 쓴 돈까지 있었음을 밝힌 것은 그의 죄질이 악질적이었음을 넉넉히 보여준다. 더군다나 그의 구속을 앞두고서는 돈을 줬던 기업인과 대통령의 다른 측근이 만나 돈거래 사실을 은폐하라고 하는 일까지 있었다. 또한, 그는 대통령의 탄핵심판 법정에까지 나와서 뻔뻔스럽게도 대통령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떼기까지 했다. 그러나, 황당한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남자분들에게 부탁 하나 드립니다. 며칠 전에 약 400명이 모인 공식 챗방 대화기록을 봤습니다. 점점 대한민국 여자들이 어쩌고 하는 식으로 말이 흐르니까 남자 한 분이 스톱시킵니다. "논란이 될 만한 말은 지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혐 발언은 거기에서 정리되었습니다. 저는 남자분들께 딱 이것 하나만 바랍니다. 챗방에서 헛소리 하는 사람들 나올 때, 내 너를 단죄하리라는 식으로 키배 벌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한 마디만 해주세요. "논란이 될만한 말, 다른 분들이 불편할 수 있는 발언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거 한 번이면 됩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 안 하셔도 됩니다.
이재명의 '국보세' 신설 제안을 '혁명적'이라고 표현한 건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다. 비대언론과 메인스트림으로부터 '세금폭탄'이라는 융단폭격을 당하며 노무현이 만든 종합부동산세가 가장 많이 걷힐 때 3조원에 미치지 못했다. 이재명이 '국보세'를 신설해 15조원을 걷겠다는 제안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혁명적인지 극명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재명이 용감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이재명은 토지에 부과하는 보유세가 저항이 심한 세금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 같다. 국보세와 기본소득을 연계시킨 걸 보면 말이다.
내 자신에게 혹독할 만큼 엄격하게 살아온 내가 엄청난 감정적 교란과 시간을 팔아 겨우 하나 마음에 담은 것이 '성정체성에 대한 무지'였다는 것이 너무 허망하고 억울하고 부끄러웠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사랑하는 내 자식인데 몰라서 그랬었다는 것이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다. 평소 나는 강단에서 '당연시하며 터부시하는 것'을 학문하는 자가 항상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태도라고 하였는데, 부끄럽게도 내 자신이 이분법적 성정체성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터부시해 왔었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얼마 전 JTBC 기자가 정유라씨의 소재를 경찰에 알리고 체포 장면을 취재한 바 있습니다. 논란이 일었습니다. 훌륭한 방송사의 기자가 선의로 좋은 일을 했으니 괜찮다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럼 극우 언론사의 기자가 수배 중인 해고 노동자를 뒤쫓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경찰에 알리는 경우는 어떤가요? 기자의 가치관이 판단의 기준일까요? 간단치 않습니다. 시민으로서 신고하고 기자로서 취재한 제이티비시 기자의 선택이 정당했다 하더라도, 제기된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겠다 싶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사드에 대한 입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8일 "사드배치는 다음 정부로 최종결정을 미루자"고 했다가 15일 "한미간 합의를 취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6일 "한미 협의에 얽매일 필요 없다"며 또 원점에서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도록 말을 두 번 번복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는 2012년 대선 당시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대한 혼선을 떠올리게 합니다.
투우사 같지 않아 보이는 한 신사가 투우장에 조용히 들어선다. 그의 손에는 작은 상자 하나가 들려 있다. 그는 사나운 소 앞에 서서 소를 조금씩 흥분시킨다. 그런데, 앞발로 땅을 거칠게 비비면서 날카로운 뿔을 앞세워 신사를 향해 돌진하려던 소가 이내 돌진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된다. 다시 돌진을 하려다가 멈추는 동작을 소는 몇 번이나 반복한다. 소가 신사를 향해 돌진하려 할 때마다 신사는 상자 안의 작은 단추를 눌렀고, 그럴 때마다 소는 신사에게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듯 돌진을 멈춰서는 것이었다.
때에 따라 평균을 훨씬 더 상회하는 수준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 영화에는 그런 남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남자보다 덜 이기적인 주인공들이 그런 남자를 관리해내기 위해 분투한다. 그냥 배제해버리면 될 텐데 뭐 그리 잘난 남자라고 굳이 관리까지 해가며 그녀들의 삶 안으로 끌어안아야 하나 싶겠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그는 그녀 아이들의 아빠이고 결정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 사랑 말이다. 오늘도 수많은 구제 불능의 이기적인 인간들이 사랑받는다는 구실로 구제받는 중이다. 사랑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이 '소녀상'이 어쩔 수 없이 환기시키는 '능욕당한 순결한 소녀'라는 이미지는 전쟁범죄자들의 죄상을 묻는 일에 적합한 상징성만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 이미지는 흔히 식민지 침탈을 당하거나 패전을 당하거나 하는 특정 민족(국가)의 불행한 상태를 환유하여 '민족주의'라는 비이성적 환상을 조작해 내는 데에도 적합한 상징성을 갖는다. 더 나아가면 여성에 대한 고착된 관념 -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고 순결해야 하고, 다른 '놈들'이 건드려서는 안되는, 비자율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라는 남근주의적 관념을 재생산하는 또 다른 상징성도 가지고 있다. 이 점이 바로 나도 공감하는 바 이 '소녀상'이 주는 불편한 느낌의 근거일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어느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고 회원국 모두를 위해, 그리고 회원국 사이의 이해관계조정을 하는 업무를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유엔사무총장이 특정국가인 대한민국의 공무를 수행하였다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반 전 총장은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된 후 사무소가 있는 미국 뉴욕으로 전출을 했다가 지난 13일에 다시 국내에 주민등록전입신고를 하였다. 따라서, 국내에 주소를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단서조항의 어디에도 해당할 여지가 없다.
"기독교 신앙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성경 한 권 얻을 수 있겠습니까?" '호, 이런 기특한 신병을 봤나' 하는 흐뭇한 얼굴로 군종병이 문고판 성경책을 주더군요. "기왕이면 성경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습니다. 영어로 된 성경책을 빌려주십시오." 그래서 영한 대역 성경책을 한 권 얻었습니다. 작업하다 쉬는 시간에 남들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 피우는 동안 저는 한구석에 앉아 영어 성경을 읽고 외웠습니다. 방위병 막내가 토플책을 보다가 걸렸다면 엄청나게 맞았겠지요. 하지만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않더군요. 흔히들 군대 고참은 하느님보다 높다고 하는데, 고참도 하느님은 무서운가 봐요.
대통령 입후보자가 피선거권의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는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대통령 피선거권이 없으면 선거소송(당선소송)을 거쳐 당선이 무효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대통령직을 둘러싼 논란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를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 피선거권의 자격요건으로 국내 거주 기간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석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공직선거법의 개정 없이 현재 상태로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면 피선거권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국회가 대통령선거의 기본규칙인 피선거권에 관한 규정부터 명확한 의미로 개정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성별 직종분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직종별로 차이야 있겠지만, 전반적인 직종별 성 비중은 지난 20년간 계속 악화되었습니다. 대학진학률과 학업성취도 차이가 사실상 사라졌고 (오히려 여성이 우위에 있고), 무수한 정책과 예산이 투입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개인 "노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부 전문직에서 여성이 약진하고 있음을 들어 소위 "여성 상위시대"를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문제는 효율성을 갉아먹을뿐더러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됩니다.
[찬성] 고통을 실제로 겪는 환자에게는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운 나날이다. 회생할 수 없는 환자에게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생존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죽음을 연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죽을 권리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 [반대] 죽을 권리를 허용하면 자발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요된 죽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은 죽을 권리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죽어야만 하는 의무'가 될 수 있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귀찮고 쓸모없는 인간'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대 폐지론'을 들고 나와 다시 한 번 논쟁이 붙고 있다. 사회의 문제가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서울대 폐지와 대학의 평준화라는 주장은 가벼운 발언이다. 서울대학교를 없앤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문제는 서울대학교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왜곡된 욕망구조에 있다.
진짜안보 논쟁이 필요하다. 문제는 사드 배치가 아니다. 우리는 유권자로서 한반도의 평화적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해 대한민국의 포괄적 안보정책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사드는 북핵을 억지할 수 있는 군사적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방법의 효용성과 실효성은 국가 이익, 한반도 안정과 평화, 그리고 동북아의 전략적 역학이라는 3가지 관점에서 포괄적 안보관 속에서 논의할 때,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빨갱이니, 종북이니 색깔론만 들이대는 가짜안보에는 자극적인 언사와 저질스런 몸짓만 난무하지 현상을 타파하는 혁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기문 전 총장이 휴일도 없이,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지 못할 만큼 바쁘게 일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좀 충격을 받았다. 이런 리더는 조직을 병들게 한다. 공무원도 사람이다. 쉴 때 쉬어야 창의력을 발휘한다. 일주일에 5일 딸들과 저녁식사를 한다는 미국 대통령의 말을 듣고 많은 공무원들이 부러웠을 것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할까? 반기문 전 총장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알고 보면 창피한 얘기다. 이런 리더를 자전거라 부른다. 밑에 직원들 쥐어짜서 자기 출세하는 사람들. 그들이 지나친 조직은 골병이 들어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직도 새마을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리더가 있는 조직은 곧 망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