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 26일, 시위에 참가한 한 학생이 전투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학생은 바로 명지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경대였다. 강경대의 죽음은 내가 어떻게든 버텨보려던 군 복무의 당위성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우리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라는 객관적 사실은 당시 내가 해야만 했던 전투경찰의 임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시청에서 시위 진압 대비 근무를 서다 그곳을 나와 강경대 타살사건 대책위원회가 있던 연세대학교로 가서 양심선언을 했다.
항문성교를 한 군인이 내심 '싫다'는 점만으로 그 군인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도 되는 것인가? 항문성교를 한 군인을 찾아내기 위하여 국가(군검찰, 군사법원)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해가면서 수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 더구나 지금 벌어지는 것처럼 그 군인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 국가가 나서서 누군가를 수사하고 형사 처벌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한데, 왜 이 경우가 그런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합의 하에 한 항문성교로 인하여 '침해되는 법익'은 없고, 단지 '기분 나쁨'은 형법에서 보호되는 법익이 아니다.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고,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한다면, 노조의 기본권이 파괴된 상황에도 문제의식을 가지는 게 일관되다. 갑을오토텍은 부당노동행위, 파업방해, 노조원 폭행, 노조파괴 등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매우 공격적인 방식으로 무력화시킨 노동기본권 파괴의 백화점 같은 사업장이다. 변호인으로서 조력받을 권리를 옹호한 기본권 보장차원의 행위니 문제없다고 방어하려면 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권을 대하는 일관되고 올바른 태도다.
과연 서울로 7017이 뉴욕의 하이라인파크처럼 될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 있던 와중에 최근 서울역 앞을 지나다가 10톤 분량은 되어 보이는 신발들이 서울로 7017과 서울역284 건물 앞을 걸쳐 음산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이 끔찍한 조형물이 왜 서울로 7017과 서울역 광장을 점유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서울시 홈페이지를 뒤져봤다. 서울로 7017과 관련된 키워드로 열람 가능한 자료를 몇 개 살펴보니 이 조형물의 제목이 슈즈트리(Shoes Tree)임을 알 수 있었다.
검찰은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였고, 법원은 업무방해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심지어 노조위원장에게는 실형을 선고했다. 또한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재산에 가압류 인용 결정을 내렸다. 동양시멘트, 정확하게는 동양시멘트가 만든 SPC는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5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피고가 된 노조와 조합원들을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을 보면 볼수록 억울하고 참담하다. 현실에서는 누가 잘못했는지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법 앞에서 이들은 마냥 죄인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금 노무현 정권 시기를 돌아보면 실패의 기억보다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속에서 벌어졌던 그 사람(들)의 뜨거운 고투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과학적 전망이나 역사적 당위 같은 사람 바깥에서 안으로 이입되는 차가운 언어보다 분노, 슬픔, 공감, 회한 같은, 사람 안에서 끓어올라 밖으로 번지는 뜨거운 정념의 언어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아마도 그것이 그날 내가 고민 끝에 5번이 아닌 1번을 찍게 된 진짜 이유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문재인에게, 노무현의 친구인 그에게 한번 다시 해보라고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문재인이라는 바보같이 착하기만 해 보이는 사람의 속에 사실은 비수처럼 시퍼렇게 박혀 있으리라 짐작되는 그 깊고 뜨거운 정념과, 그 정념을 이기지 못해 어눌하고 더듬더듬한 발성으로밖에 나오지 못하는 그 낡고 변변치 못한 수사학이 지닌 가능성에 한 표를 기꺼이 던졌던 것이다.
조국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의 의지가 높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그걸 모르는 검찰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 반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정서적 반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명분'을 이쪽이 제공해줘야 한다. 반대파의 최소화를 위해, 보수적 방법을 채택하되, 실제로는 진보개혁적 성과를 내는 것. 바로 이 지점이 김대중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정치력'의 진짜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부 3기이다. '기분 좋고 섹시한' 내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성공하는' 민주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노무현이 부동산 투기와 정면대결하면서 참여정부 당시 부동산 투기의 진앙 역할을 하던 강남을 특정해 "강남이 불패면 대통령도 불패다"라고 기염을 토하던 장면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과는 다른 발언을 했으면 좋겠다. 예컨대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을 모든 면에서 리드하시는 분들이 아니냐? 짜증나고 억울하신 면이 있더라도 대한민국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여러분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져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같은 식의 발언 말이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강남부자들의 마음도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글, 더군다나 소비자의 알 권리나 대기업의 횡포와 관련하여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기 위하여 애써 올린 공익적·합법적 포스팅이 왜 누군가로부터 신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30일간 차단되어야 할까?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이 이용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 해당 블로그를 방문한 손님은 "(명예훼손 신고로) 임시적으로 게시가 중단된 게시물입니다" 같은 알림말로 도배된 블로그를 보면서 블로거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지는 않았을까? 임시조치로 온라인상에서 사라지는 글은 한해 45만 건이 넘는다.
탄핵으로 박근혜정권의 임기가 사실상 15개월이나 단축된 덕에 본래 박근혜 몫이었던 대법원장과 헌재소장, 대법관 2인까지 새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게 됐다. 개헌을 하지 않는 이상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대법원장을 진보성향으로 임명하면 대법관도 진보나 중도성향으로 채울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향후 5년간 총12명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할 예정이라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대법원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관도 대법원장이 3인을 지명하기 때문에 대통령 몫 3인과 여당 몫 1인에 대법원장 몫 3인까지 총7인이 진보나 중도성향으로 채워질 전망이다. 우리국민들은 역사상 가장 진보성향의 사법권력을 갖게 될 것이다.
동성애자 군인 색출사건에 있어서, 저는 이것이 절대 군 인권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군 인권 문제와 생각의 궤를 같이합니다. 사회에서는 성인 동성애자가 상호 동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감옥에 갇히지 않습니다. 경찰이 그들을 잡아가 취조하며 '좋아하는 체위는 어떤 것인지' '동성과 관계를 맺은 횟수는 몇 번인지'등을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군대 내에서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영내에서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성인과, 합의하에 관계를 맺은 군인이 구속되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군인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한 비만학회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인간도 일주기 리듬에 순응하여 음식을 먹는 시간대를 조절하면, 식욕 및 체중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증거를 제시했답니다. 동일한 총 칼로리를 섭취하되, 한 방법은 가장 대중적인 식사법으로 오전 8시와 오후 8시 사이에 세 끼를 섭취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 방법은 오전 8시와 오후 2시 사이에 세 끼를 섭취 후 그 이후에는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각각의 방법을 4일 동안 실시한 후 여러 가지 지표들을 측정했는데요.
조만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특사를 보내고, 이들 나라와의 정상회담도 서두를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특사를 빨리 보내고 정상회담을 빨리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정상을 만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 정책, 철학을 정비하는 것이다. 정리된 우리 생각 없이 빨리 만나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가는 상대의 생각과 의도에 말려들 가능성만 커진다. '선 전략, 정책 정비 후 정상회담, 특사파견'의 순서가 맞다.
며칠 전에는 우리집에 최신형 에어컨이 들어왔다. 에어컨은 전원이 켜지는 순간부터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전원이 켜졌습니다. 냉방운전을 시작합니다. 제습을 시작합니다. 희망온도를 24도로 낮춥니다." 내게 필요한 정보들을 주기 위해 새로운 기기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기술의 발달 그 안에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뭔가 큰 울컥함이 느껴졌다. 기술을 계발하고 상품을 생산해내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작은 관심이 동반된 디자인은 누군가의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감동이 될 수 있습니다."
원전을 폐쇄하자고 외치면서 동시에 전기요금을 낮춰달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세금을 내기 싫어하면서 복지를 기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부에 대한 불평을 민주주의와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민주시민은 권력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민주국가에서는 시민이 바로 위정자이기 때문이다.
약점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여소야대의 의회를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선거일정을 고려하면 이 구도가 앞으로 3년 가까이 계속될 수 있다. 정부가 새로운 의제를 추진할 수 있는 황금시간과 겹친다. 의회와 협력관계를 맺지 못하면 정책추진이 어려워진다. 둘째,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았지만 득표율은 41%에 불과하다. 다자구도였던 탓이기도 하지만, 60% 유권자들의 민심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심각한 정치적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앞으로 5년간 정말 무거운 짐을 지게 된 문재인 대통령이 이웃 주민들의 환호 속에 자택을 떠나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과연 문 대통령은 5년 후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까. 광화문 시대를 열어 국민들과 소통하겠다 한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까. 나는 자기 신분이나 상황에 따라 태도를 완전히 달리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가난하다 돈이 생기는 경우, 한직에 있다 좋은 보직을 얻게 되는 경우, 평범한 사람이었다 유명인이 되는 경우 사람들은 한결같음을 유지하지 못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아침 자택을 떠나며 품었던 마음을 꿋꿋이 지키며 국민들의 목소리에 열심히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두 배 이상 득표했다는 대구경북 지역 출구조사결과가 공개될 때, 60대 이상에서 홍준표 후보가 제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 이 '대구경북노인들'은 한국을 아직 전근대의 영역에 붙들어놓는 망국의 근원으로 지목당한다. 2000년대 후반이 "20대 개새끼론"을 비롯해 "정치에 관심없는" "나약하고 무력한" 청년세대들을 '나라를 망치는 주범'으로 확정짓는 시기였다면, 놀랍게도 그로부터 채 10년이 지나기 전에 화살이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우파정권의 변명불가능한 실책만의 소산이 아니며, 그동안 한국인들이 정치체의 핵심으로 간주해오던 가치 자체가 이동했음을 함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