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커플링'에 꽂힌 구광모 LG 회장..."미래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내라"

발행일 2022-09-30 11:52:58
구광모 회장(왼쪽)이 29일 사장단 워크숍에서 최고 경영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LG)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이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의 저자 탈레스 테이세이라 전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테이세이라 교수는 "시장을 파괴하는 건 기술이 아닌 고객"이라며 고객 가치 경영을 강조해 왔다. 구 회장은 2018년 취임 이후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강조해 왔다. 테이세이라 교수를 강연에 초청한 것도 위기일수록 고객 가치 경영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구 회장과 계열사 CEO, 사업본부장 등 30여명은 29일 경기도 곤지암리조트에서 사장단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중장기관점에서 미래 준비를 위한 경영전략을 논의했다. 이들은 5~10년 후의 미래 포트폴리오 방향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심도있게 논의했다. 특히 미래준비를 위한 전략은 철저히 미래 고객의 관점에서 고민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구 회장은 "미래 준비는 첫째도 둘째도 철저히 미래 고객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며 "미래 고객이 누구이고 정말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지, 수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것이 미래 준비의 시작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테이세이라 교수가 강연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고객가치사슬(CVC)의 파괴현상인 디커플링과 디스럽션(Disruption) 현상을 설명해 주목받았다. 디스럽션은 업계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시장 점유율의 변화를 일컫는다. 시장은 고객이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에 따라 빠르게 바뀐다.

필름카메라 시장을 주도하던 코닥과 후지가 디지털 카메라가 인기를 끌면서 캐논과 소니, 올림푸스에 자리를 내준 게 한 예다. 올림푸스 등 디지털 카메라 업체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들 업체는 시장을 주도하던 '톱티어' 업체였지만 고객이 바뀌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1998년부터 13년 동안 휴대전화 시장의 점유율 1위를 기록했던 노키아(Nokia)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점유율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노키아의 CEO였던 스티븐 엘롭은 "내가 몰랐던 부분이 무엇인지 미처 몰랐다"며 "우리가(노키아)가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무너지고 말았다"고 호소했다.
디커플링 저자 탈레스 테이세이라 교수.

테이세이라 교수는 시장을 바꾸는 요인은 첫째도 둘째도 '고객'이라고 강조한다. 오너십과 지배구조는 기업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지배구조가 어떻든 고객을 읽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테이셰이라 교수는 "오늘날 시장 파괴의 핵심인 디커플링이 제품과 기술 차원이 아닌 고객의 가치사슬 차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기존 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고객 가치사슬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 안에서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그룹이 이날 워크숍의 강연자로 테이세이라 교수를 초청한 건 의미가 남다르다. LG전자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는 판매량과 점유율이 세계 1위이다.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TV로 유명하다. LG전자는 미국 월풀(Whirlpool)을 꺾고 세계 가정 시장의 1위를 차지했다. 월풀은 1913년 세계 최초로 전기 세탁기를 개발하고, 줄곧 가전 분야에서 세계 1위였던 곳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는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의 점유율은 35%로 집계됐다. 중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에서 달리고 있는 전기차 10대 중 3.5대는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하고 달리는 셈이다. 

이렇듯 배터리와 가전,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 등은 LG가 자랑하는 세계 1등 상품이다. 하지만 지금 1위라고 앞으로도 1위로 남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장도 바뀌고, 고객도 바뀌기 때문이다. 올림푸스와 노키아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LG그룹의 '1등 제품'도 언제든 고객에 의해 사라질 수 있다.

때문에 구 회장도 "미래 고객이 누구이며, 무엇을 요구하는지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 한국이 1위였던 LCD 시장을 뺏었고, OLED 시장도 노리고 있다. 배터리는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세계 1위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여기에 유럽은 아시아 국가의 배터리 산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스볼트, 브리티시볼트 등 자국 배터리 업체를 육성하고 있다.

지금도 디스럽션은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이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시기 테이세이라 교수를 초청한 것도 '고객 가치 경영'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위기 의식을 갖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1등이라는 지위는 언제든 경쟁자에 의해 추월당하고, 미래 고객에 의해 2등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항상 안고 가야한다"며 "지금과 같이 고객도 변하고 시장도 변하는 시기에는 어느 때보다 두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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