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화국’ 해체 앞장선 준법감시爲...지배구조 어떻게 손 댈까

발행일 2022-02-07 08:35:51


삼성그룹에서 벌어지는 위법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민간 기구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지난 5일 공식적으로 제2기 체제의 시동을 걸었다.

앞서 2020년 세워진 제1기 준감위는 2년여 기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경영 승계 체제 포기, 무노조 경영 폐기 등의 성과를 끌어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국내외적으로 삼성이 ‘삼성공화국’으로 비판받던 원인으로 거론된 세습경영 체제를 없애기로 선언한 건 유례 없는 급진적 변화로 회자되고 있다.

향후 2년간 있을 2기 준감위에선 인권 우선 경영, 사내 위법행위에 대한 공정한 처리, 지배구조 개선 등의 활동이 예고됐다. 현재 남아있는 금산분리 문제를 비롯해 삼성의 지배구조를 어떤 식으로 바꾸도록 방향을 잡을지가 2기 준감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26일 이찬희 신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율촌에서 열린 준감위원장 선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삼성 준법감시위원회)

2기 준감위는 이찬희 신임 준감위원장(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이끈다. 준감위원으론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경영대학원 교수, 성인희 삼성글로벌리서치 조직문화혁신담당 사장, 원숙연 한국행정학회 회장, 권익환 변호사, 윤성혜 전 하남경찰서장, 홍은주 전 iMBC 대표이사가 참여했다.

앞서 지난 1월 26일 이찬희 신임 준감위원장은 서울 강남구 소재 법무법인 율촌에서 삼성 준감위원장 선임 기자간담회를 했다. 2024년까지 2년 임기가 예고된 이 위원장은 2기 준감위 추진 과제로 △인권 우선 경영 △사내 위법행위에 대한 공정한 처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심 경영을 제안했다.

이 위원장은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으로부터, 삼성은 정치권력을 비롯한 부당한 내외의 압박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어떠한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한편, 겸손한 자세로 내외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소통하며 제2기 위원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여 삼성의 준법문화 정착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세경영·무노조 포기 이끌어낸 1기 준감위
삼성 준감위는 그룹 외부에서 삼성을 감시, 통제하는 독립 기구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뇌물공여와 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부회장의 2019년 대법원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았던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의 주문에 따라 2020년 만들어졌다.

초대 위원장은 참여정부 당시 대법관을 맡았던 진보 성향의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고문변호사가 지냈다. 준감위원으로는 봉욱 변호사(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고(故)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심인숙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원숙연 회장, 김우진 교수, 이인용 삼성전자 대외업무담당 사장(2020년 6월 성인희 사장으로 교체) 등이 선임됐다. 이 가운데 이인용 사장을 제외한 6명이 모두 외부 인사로 구성됐다.

(사진=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앞서 2005년에도 준감위와 비슷한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이라는 민간 감시, 제언 기구가 세워졌었다. 삼성과 정치권, 검찰 사이 유착을 폭로한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대외적 이미지가 나빠지자 삼성이 조직 쇄신에 나서겠다며 시민단체 쪽에 '파수꾼' 역할을 요청해 만든 기구였다. 다만 2년여 기간 몇 차례 회의를 끝으로 별다른 성과 없이 해체됐다. 이에 준감위 또한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준감위는 좀 더 강력한 쇄신 드라이브를 걸었다. 진보, 친 노동 성향의 김지형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모신 뒤 2년간 총 스무 번에 걸친 공식 회의를 가졌으며, 이를 통해 삼성그룹이 가졌던 고질적 문제점들을 꼬집고 개선 방안들을 권고했다. 삼성 또한 준법감시위원회 사무국을 만들고 홈페이지 통해 연이은 회의 내용을 공개했으며, 나아가 준감위의 권고 내용을 대부분 수용했다.

2020년 7월 22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열린 워크샵에서 김지형 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삼성 준법감시위원회)

대표적 사례가 2020년 5월 이 부회장의 ‘4세 경영 포기’와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으로, 같은 해 3월 준감위가 요구한 안을 100% 수용한 것이다. 특히 준감위가 승계와 관련해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공표하란 요청에서 삼성은 한 발 더 나가 이 부회장 스스로 가업 승계를 중단하겠다고 못 박았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진 삼성의 승계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문제는 일찌감치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맞물려 ‘삼성공화국’ 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2005년 <파이낸셜타임즈>가 세습경영을 삼성공화국 비판의 본질로 지목한 기사를 냈고, 2007년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의 비자금 폭로 사건과 관련해서도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비판적인 기사를 냈다. 2008년 고(故) 이건희 회장의 퇴진 당시 <로이터>도 ‘삼성공화국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이 회장 일가가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준감위와 삼성은 이밖에도 그룹 관계사에서 벌어질 개연성이 있는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감시, 대외 후원과 내부거래에 대한 검토·승인 시스템 마련, 최고경영진의 준법위반 리스크 방지 체계 마련, 노사문화 정착 등을 함께 추진했다. 또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았던 삼성웰스토리의 급식업체 수의계약 문제와 관련해서도 준감위는 업체를 대외 개방하는 쪽으로 권고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였다.
삼성의 지배구조 '뇌관', 어떻게 해체할까
2기 준감위의 최우선 과제는 지배구조 개편이 될 전망이다. 앞서 1기 준감위에서도 불투명한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개선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간 부족으로 정확히 어떤 식으로 바꿀지는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2기 준감위 체제에서 이에 대해 정확한 방향을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최대주주(이재용 부회장)와 특수관계자로 시작해 삼성물산-생명-전자(또는 물산-전자)로 이어지는 출자 형태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가지고 있어 생기는 금산분리 위배 문제는 논란거리다.

현행 보험업법에선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총자산의 3%까지만 보유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현행법상으론 ‘취득 원가’ 기준인데, 현재 국회에선 이 기준을 원가가 아닌 ‘시가’로 바꾸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민주당 박용진·이용우 의원을 중심으로 발의돼 계류 중이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해진 시한(5~7년) 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가운데 총자산의 3%(지난해 3분기 기준 약 9조9000억원)을 뺀 나머지를 모두 처분해야 한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향후 5~7년 내 삼성생명은 총자산의 3%을 넘어가는 삼성전자(시가 기준) 지분을 팔아야 한다.(자료=NH투자증권 리포트 갈무리)

법이 통과돼 삼성전자 5.51%를 매각하게 되면 삼성전자의 특수관계인 지배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기존 21.15%에서 최소 15.64%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이란 잠재적 리스크에 대비해 삼성과 준감위는 지배구조 개편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다.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지배구조개선의 문제는 삼성이 도약하기 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외부전문가 조언과 내부 구성원의 의견을 다양하게 경청하면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최종적으로는 최고경영진이나 내부 구성원뿐만 아니라 주주인 국민이 삼성의 실질적 주인으로 대우받는 지배구조개선이 이뤄지도록 철저한 준법감시 시스템을 마련”할 것이라 강조했다.

최근 급부상한 노사문제도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삼성이 풀어야 할 숙제다. 1기 준감위 체제에서 삼성의 노동조합이 활성화됐지만, 그 반대급부로 삼성전자가 파업에 돌입할 상황에 놓여있다. 삼성 노사는 성과급 기준을 놓고 협상장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삼성전자 금속노련 홈페이지 갈무리)

앞서 지난 4일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을 비롯해 삼성전자사무직노조, 삼성전자구미지부노조, 삼성전자노조동행 등 4개 노조가 참여 중인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은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 분쟁 조정을 신청했다. 중노위의 조정 절차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노동조합은 쟁의권을 얻게 된다. 노조가 실제로 파업에 돌입할 경우 삼성전자가 1969년 설립된 이래 첫 파업이 된다.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하면 삼성의 ESG 평가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국내 ESG 평가 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와 글로벌 ESG 평가 기관 MSCI가 기업의 노사 갈등을 사회 평가(S)에 반영한다. 지난해 KCGS의 삼성전자 사회평가 등급은 최고점(A+)이었지만 파업이 시작될 경우 이 평가가 낮아질 수 있다.

(사진=삼성전자)

더 급진적으론 준감위가 실효적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해 보인다. 위원회가 최고경영자 리스크를 원천 봉쇄할 만한 장치를 만들진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1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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