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선택
-
공희작가: 아밀 | 장르: 판타지, 일반바다뱀과 제물에 얽힌 비극, 섬만은 알고 있다구체적인 시대도, 위치도 알 수 없는 동양의 어느 바위섬. 언제부터 이 섬에 자리했는지 모를 신당에서는 매 풍어제마다 혼기에 찬 여성이 제물로 바쳐지곤 했다. 다가오는 풍어제를 앞두고, 제물로서 자수 이외의 모든 행위를 통제당하는 처녀가 마을을 찾아온 어느 용기 있는 무사와 사랑에 빠진다. 그 무사에게 이끌려, 바다뱀 신에게 바쳐지는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난 처녀는 과연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공희」는 인신 공양이라는 악습의 기원에 대한 상상이 담긴 작품이다.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아련한 묘사와 섬세한 구성이 인상적이며, 이야기의 시작과 수미쌍관을 이루는 듯한 여운 있는 결말에 가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게 된다.
-
미스 김 미스 리작가: 가양 | 장르: 일반, 기타“사무실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네요.”채용정보사이트 평점 2.0에 불과한 근무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단 가보고 결정한다는 것이, 뒤늦게 확인한 새직장의 채용정보사이트 리뷰 장점은 ‘좋은 경험한다 쳐라’, 단점은 ‘귀신이 나온다.’. 그리고 보란듯이 얼마 되지 않아 눈앞에 귀신들이 떡하니 나타난다. 가양 작가는 그간 브릿G에서 10편의 중단편을 발표해 왔고, 이중 「죽었다 깨어나도 일확천금」, 「할로인설전기」가 편집자 추천작으로 소개되었다. 「미스 김 미스 리」 역시 지난 1월 편집장의 시선에서 소개되었는데, 작가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글쓰기가 매력적인지라 이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면, 최근까지 꾸준히 작품을 올리고 있는 가양 작가의 작품을 둘러보자. 「미스 김 미스 리」는 최악의 근무 조건에 말종 상사, 게다가 귀신까지 등장하지만 우울하거나 무서운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시종일관 유쾌한 전개로 시선을 떼지 못 하게 한다. 시작과 결말에 나오는 채용정보사이트 리뷰를 인상적으로 활용한 데다, 각기의 캐릭터도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
발푸르기스의 밤작가: 이창준 | 장르: 추리/스릴러악마와 같은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발푸르기스의 밤』은 숲속의 외딴 대저택에 숨겨진 외할머니의 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그린 추리스릴러 작품이다. 작가는 고립된 장소와 한정된 용의자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단서들을 제시하여 독자가 범인을 추리하며 읽어나가는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구성했다. 무속 신앙과 서양의 신화가 어우러진 저택의 풍경은 기괴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할 뿐만 아니라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인상적인 결말과 맞닿아 있으니 직접 확인해 보시길.
-
당신은 누구의 꿈을 꾸나요?작가: 홍윤표 | 장르: SF당신의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다.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대신 잠을 자는 신종 서비스 ‘대리 수면’을 소재로, 자본과 노동의 미래를 어두운 시선으로 담아내는 디스토피아 SF 「당신은 누구의 꿈을 꾸나요?」를 베스트 추천작으로 재선정하였다. 맨홀을 청소하던 노동자가 유해가스에 노출돼 사망하고, 반도체 생산시설을 청소하던 노동자들이 연달아 암에 걸리는 등 노동의 가장 낮은 자리에는 늘 생계와 직면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자리해 있다. 더구나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취약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이 더욱 위협받기 시작한 요즘, 계급과 노동에 대한 씁쓸한 이야기는 현실의 일면을 성찰적으로 비추며 묵직한 시사점을 남긴다.
-
은혜작가: 지언 | 장르: 호러, 역사하늘의 섭리는 왜 이토록 가혹한가여우고개의 산신령이 용하다는 말에 노부부가 소원을 빌러 찾아온다. 부디 딸 하나만 점지해 달라는 것인데, 999년 도를 닦아 온 꼬리 여덟 개의 여우 요괴가 부부의 소원을 듣게 된다. 1년만 더 기다리면 축생의 연을 끊어 인간이 될 수 있으나 부부가 가련하기도 했고 자신도 더는 기다리기 싫었던 여우는 직접 부부의 자식으로 태어나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부부의 집에 막내딸로 태어나게 된 ‘은혜’는 눈에 띄게 총명하고 예쁜 아이로 자란다. 딸을 갈망하던 부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던 삼신이 뒤늦게 어린 은혜의 앞에 나타나 그녀를 꾸짖는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삼신의 고전적인 대사가 앞뒤 꽉 막힌 것처럼 보일 정도로 삼신의 말에 꼬박꼬박 받아치는 은혜의 거침없는 대꾸는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법도를 지키고 측은지심을 지키면 인간도 부처가 될 수 있고, 짐승도 인간이 될 수 있다.’ 비록 1000년을 채우지 못해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지는 못했으나, 은혜는 바로 이런 마음으로 어질게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했다. 하지만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인간보다 더 선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어 했던 은혜에게, 하늘의 섭리는 너무도 가혹했다. 글이 전개될수록 각각의 인물들에게 각각의 이야기가 주어지는 탓에, 이 비극을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독자들은 그저 어찌하여 하늘의 섭리란 이토록 가혹한 것인지 하늘에 물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