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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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사람이 전해주는 이야기작가: 지언 | 장르: 호러민담의 묘미가 살아 있는 기묘하고 특색 있는 괴담 시리즈!시골에서 떠도는 기이한 이야기를 시골 사람이 전해준다는 명확한 콘셉트의 괴담 시리즈를 본 적이 있는가? 매 작품마다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는 화자(나)가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개인의 과거사나 가족, 지역과 관련된 괴담들이 시대와 소재를 불문하고 다채롭게 펼쳐진다. 오래 전 폐가 체험 현장에 얽힌 후일담을 다루는 첫 편 「그을린 폐가」를 시작으로, 전국의 경로당을 돌며 들었던 오싹한 이야기, 친구 조모의 장례식장에서 겪은 괴이한 일, 해방 후 부산 주민에게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 등 감각을 자극하는 각양각색의 괴담들을 만날 수 있다. 담담한 말투로 읊조리는 듯한 화자는 단순히 서술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경험담에 대한 소회를 덧붙이기도 하고 코멘트를 활용해 괴담의 여운을 완성하기도 한다. 때문에 가끔은 본편보다 코멘트를 읽고 나서 더 오싹함이 몰려오기도 하니 이 여름,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면 오늘 밤 당장 이 시리즈를 꺼내 읽기를 권한다. 단, 한밤중에는 어중간한 밝기의 불빛은 켜지 말도록.(그 이유는 작품 속에 있다.) ※ 이번 주 추천작은 공포&괴담 특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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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마을작가: FALIFALI | 장르: 호러, 추리/스릴러“너희 아빠는 여기 계셔. 이 안에 살아 계셔.”엄마, 아빠를 죽였어요? 차마 엄마에게 묻지 못한 질문을 가슴에 품고, 윤서는 휴직계를 내고 엄마가 살고 있는 마을로 내려온다. 폭력적이던 아버지가 만취해 귀가하던 길에 발을 헛디뎌 장독대에 머리를 찧고 죽은 뒤, 윤서의 엄마 김순자 여사는 혼자 시골로 내려 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직장에 매일 꽃다발을 보내는 스토커로 인해 그간 정신이 없던 터라, 윤서는 이제야 처음 엄마의 집을 방문한 참이다. 순자와 윤서를 향해 웃는 얼굴로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던 중년 아줌마들은 윤서가 내려 온 다음 날, 순자의 집에서 모여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자리에서 누군가 던진 “윤서 아빠 못 봐서 아쉽네. 안부 전해 줘.”라는 한 마디가 윤서의 주의를 끈다. 순자의 남편이자 윤서의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은 대화가 주는 기묘함도 잠시, 윤서는 순자의 방 이부자리 안에서 아버지의 검은 뿔테 안경과 낡고 오래된 옷들을 걸친 사람 크기의 인형을 발견한다. 순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윤서에게 인형을 너희 아빠라고 소개하며, 인형 앞에 밥을 차리고 늘 하던 아버지의 습관대로 신문을 놓고, 과일을 깎아 대접한다. 한편 동네의 유일한 또래인 옆집 아주머니의 딸 성미는 ‘인형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새로 만들 인형을 찾는다’는 기괴한 말을 늘어놓는다. 인형을 아버지라고 우기는 엄마의 비이성적 행동과 딸을 대하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태도가 주는 괴리감은 소름끼치고, 남자는 보이지 않고 여자들만이 가득한 마을 전체에 흐르는 불온한 유대감에서는 무언가 주술적이거나 아니면 범죄적인 냄새가 풍긴다. 과연 인형에는 진짜 아빠가 들어 있는 것인가? 엄마는 미친 걸까, 범죄를 저지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를 구원한 것일까? 아빠의 학대를 알면서도 침묵했던 딸의 과거와 떠나는 딸에게 달려와 김치가 든 반찬통을 건네며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말하는 엄마의 현재는 오컬트와 스릴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끝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결말은 직접 확인하시기를. ※ 이번 주 추천작은 공포&괴담 특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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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작가: 녹차빙수 | 장르: 호러끔찍한 낙서로 엉망이 된 숙제들, 누가 이런 짓을 하는가?‘나’는 학교 수업 후 쉬는 시간에 갑자기 수학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교무실로 향한다. 어두운 표정의 수학 선생님이 내민 것은 오늘 제출한 숙제였는데, 어젯밤에 집에서 정리했던 것과 완전 딴판이 되어 있었다. 도저히 숙제라 부를 수 없게 된 그것을 본 나 역시 큰 충격을 받지만, 하루 동안의 말미를 얻어 다시 숙제를 해오기로 한다. 하지만 교실에 돌아가 살펴본 국어 독후감 숙제 역시 끔찍한 내용으로 잔뜩 도배가 되어 있었는데……. 대체 누가 이런 고약한 짓을 하는 걸까? 「숙제」는 익숙한 상황과 배경을 다루면서, 그 안에서 파생되는 역시 익숙한 공포심을 새롭게 자극하는 이야기다. 사건의 원인을 짐작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에서 출발해, 후반부에 이르면 시각적 감각이 탁월하게 구현되는 압도적인 공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주 추천작은 공포&괴담 특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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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작가: 해도연 | 장르: 호러검은 면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요리사인 아내가 만들어 준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꾸역꾸역 집어삼킨 천문학자. 사실 그는 석 달간 면을 보는 것조차 거부감이 느껴져 피하고 있던 중이었다. 3개월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출장차 방문했다가 들르게 된 ‘에일-르’란 이름의 식당에서 ‘신의 음식’을 맛본 이후의 일이었다. 스멀스멀 불안감을 자극하는 묘사가 탁월한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 은 한 가정의 식탁에서 시작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과 일본의 미즈사와란 지역으로 이어지는 예측불허의 전개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식당의 전말이 밝혀지는 결말까지 가 보면,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할 선득한 공포와 충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주 추천작은 공포&괴담 특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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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괴담작가: 장은호 | 장르: 호러그랜저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방독면 살인마 괴담방독면 살인마가 등장하는 만화책을 함께 즐겨 읽는 두 초등학생 정환과 상철. 총명하고 조숙해 마치 어른과 같았던 상철은 방독면 살인마가 실제로 존재해 구형 각그랜저를 타고 다니며 아이들을 유괴한다는 기괴한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 실종된다. 그리고 상철이 실종된 지 두 달 후, 정환의 앞에 그랜저를 탄 수상한 노인이 나타나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랜저괴담」은 그랜저를 타고 다니며 아동을 유괴하는 방독면 살인마를 소재로 한 도시 괴담이다. 그러나 단순히 살인마가 등장하는 도시 괴담에 그치지 않고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를 화두로 삼아 괴담에 현실성을 더한다. 지나치게 비상한 초등학생 캐릭터가 다소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예상할 수 있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흡인력 넘치는 대화 지문과 어느덧 수상한 노인의 말에 넘어가 놀라고 마는 결말까지 매력적인 괴담이다. ※ 이번 주 추천작은 공포&괴담 특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