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캐논 ‘EOS RP’

2019.04.15

사진은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하지만 카메라는 아니다. 거추장스럽고 무겁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라는 구심력은 카메라를 집어삼켰다. 카메라는 장롱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때문에 시장은 풀프레임 중심으로 재편됐다. 스마트폰과 확실한 품질 차이를 보장하는 카메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역설이 발생한다. 성능이 좋은 카메라일수록 크기와 무게가 늘어난다. 휴대성과 거리가 멀어진다. 그리고 일상과 멀어진다.

카메라는 무겁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어깨는 카메라가 버겁다. 구조적인 한계를 가진 DSLR 대신 미러리스가 카메라 시장의 구세주처럼 떠오르고 있지만, 풀프레임과 만난 미러리스는 여전히 무겁다. 무게와 부피가 줄었다고 하지만, 동급 DSLR과 비교했을 때 얘기다.

재작년 연말, 거금을 들여 소니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a7R2’를 샀다. 하지만 여행을 갈 때마다 선뜻 어깨에 메지 못한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믿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며 눈물을 삼키곤 한다. 시장은 ‘풀프레임+미러리스’로 가고 있지만, 저변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장벽은 무게와 가격이다. 캐논 ‘EOS RP’는 바로 이 지점을 노리고 만든 카메라다.

한없이 가벼운 풀프레임

EOS RP는 캐논의 두 번째 풀프레임 미러리스다. 레퍼런스 성격이 강한 첫 풀프레임 미러리스 ‘EOS R’보다 목적이 명확하다. EOS RP는 풀프레임 영역에 대한 진입 장벽을 허물기 위해 만들어졌다. 무게는 바디 기준으로 약 440g. 580g인 EOS R보다 훨씬 가볍다. 타사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와 비교했을 때도 100g 이상 가벼운 수준으로, 500ml 생수 한 병보다도 가볍다.

카메라 좀 아는 ‘카잘알’이라면 눈치챘을 거다. 이 제품은 캐논 풀프레임 DSLR로 치면 ‘6D 마크2’, 크롭 DSLR ‘200D’ 정도의 위치에 있는 풀프레임 미러리스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EOS RP는 가장 가벼운 풀프레임을 표방하는 카메라다.

무게의 차이는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다. 세월의 모진 풍파를 맞은 내 어깨는 항상 짓눌려 있다. 여기에 카메라를 더하면 완벽한 새우등, 거북목 자세가 되곤 한다. 카메라가 매달린 좁은 어깨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인다.

반면, EOS RP를 들쳐 맨 내 어깨는 위풍당당했다. 남산을 4시간 동안 분주하게 돌아다녔지만, 집에 갈 때까지 어깨춤을 췄다. 크기도 풀프레임 치고 작은 편이다.

가격은 164만9천원이다.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국내 정식 발매된 풀프레임 카메라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보급기 중 최강이라 불리는 소니 ‘a7M3’의 가격은 249만9천원. 같은 급에 해당하는 니콘 ‘Z6’ 가격도 249만9천원이다. 풀프레임에 입문하기 좋은 가격이다.

목적에 맞게 눌러 담은 성능

무게와 가격이 가볍다고 성능까지 가볍지는 않다. EOS RP의 가장 큰 장점은 가벼운 무게에 풀프레임 성능을 갖췄다는 점이다. 성능은 6D 마크2급이라고 평가받는다. 참고로 풀프레임 DSLR 중 가장 가벼운 편인 6D 마크2의 무게는 685g으로 EOS RP는 이보다 240g 이상 가볍다.

EOS RP에는 약 2620만 화소의 35mm 풀프레임 CMOS 센서, 최신 영상 처리엔진 ‘디직8’ 등이 탑재됐다. 3030만 화소 센서가 적용된 EOS R보다 화소 수는 줄었다. 실제로 사진을 찍어보면 풀프레임답게 좋은 화질과 심도 표현을 보여준다. 조리개 값이 낮은 렌즈를 쓰면 피사체를 제외한 배경을 휙휙 날릴 수 있다.

AF 속도도 ‘급 나누기’가 적용되지 않아 빠른 편이다. 독자 규격의 라이브 뷰 촬영 기술인 듀얼 픽셀 CMOS AF 시스템으로 약 0.05초의 빠른 AF 속도 및 부드러운 AF를 구현한다. 상위 기종인 EOS R과 같은 수준이다. 이미지 센서 전면의 가로 약 88%, 세로 약 100%의 범위에서 빠르고 부드러운 AF를 실현하며, 최대 4779 포지션에서 선택할 수 있는 AF 프레임을 갖췄다.

또한, EV-5 수준의 저조도 AF 검출 성능을 갖춰 빛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제법 빠르고 정확한 AF를 구현한다. ISO 상용 감도도 R과 마찬가지로 최대 100-40000을 지원해 어두운 곳에서도 노이즈가 적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EOS R보다 개선된 점도 있다. ‘눈 검출 AF’가 대표적이다. 사진 및 영상 촬영 시 피사체 추적 상황인 ‘서보 AF'(AF-C)에서도 카메라가 피사체의 얼굴을 감지하고 눈에 자동으로 초점을 맞춰 인물을 쉽게 찍을 수 있도록 돕는다.

R에서는 정지된 사물을 담는 ‘원샷 AF'(AF-S)에서만 눈 검출 AF가 작동했다. 눈에 초점을 잡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며, 부드럽게 작동한다. 검출 성능은 소니 a7 3세대 제품의 ‘Eye-AF’보다 떨어진다. 프레임에 인물이 상반신 이상 크게 담겼을 때 제대로 작동한다.

자유롭게 화면을 회전할 수 있는 ‘스위블’ 액정이 적용된 점도 장점이다. 풀프레임 카메라는 대개 디스플레이를 위아래로 한정된 각도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틸트’ 액정이 적용되곤 하는데, RP는 R에 이어 풀터치 회전형 LCD를 갖췄다. 셀카를 찍을 수 있으며, 다양한 구도를 잡을 수 있다. LCD는 약 104만 화소, 3인치 크기를 갖췄다. 전자식 뷰파인더(EVF)는 약 236만 화소다. R보다 낮은 사양이지만 크게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휴대성을 갖췄지만 그립감과 조작성도 좋은 편이다.

새로운 RF 마운트

EOS RP의 구조적인 특징은 EOS R과 마찬가지로 기존 풀프레임 DSLR에 적용됐던 54mm 대구경 마운트를 유지하면서 20mm의 짧은 플랜지 초점 거리를 갖춘 ‘RF 마운트’를 적용했다는 점이다. 기존 플랜지 백은 44mm였다. 마운트 구경이 크면 렌즈 설계가 자유롭고, 플랜지 백이 짧으면 카메라 크기를 줄일 수 있다. RP는 RF 마운트의 이점을 잘 활용해 크기와 무게를 최소화했다.

참고로 니콘 풀프레임 미러리스에 적용된 ‘Z 마운트’는 55mm 직경과 16mm 플랜지 초점 거리가 적용됐으며, 소니 풀프레임 미러리스에 사용되는 ‘E 마운트’는 46.5mm 직경과 18mm 플랜지 초점 거리를 갖췄다. 캐논은 대구경 마운트를 유지하면서 내구성을 고려해 20mm 플랜지 초점 거리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캐논은 RF 마운트에 맞춰 새롭게 설계된 ‘RF 렌즈’를 내놓고 있다. 실사용해본 렌즈는 ‘RF 35mm F1.8 MACRO IS STM’이다. 작고 가벼운 단렌즈다. 무게는 305g으로 RP와 조합이 좋다.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35mm 화각에 17cm 거리 접사가 가능해 풍경, 인물, 꽃, 음식 등 다양한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아쉬운 연사 속도, 배터리, 동영상

연사 속도는 가격만큼 저렴하다. 원샷 AF에서 초당 5장을 찍을 수 있으며, 서보 AF에서는 초당 4장을 찍을 수 있다. 초당 10연사를 자랑하는 소니 a7M3와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셔터 속도도 1/4000초로 일반적인 수준이다. 사진을 한장 한장 찍을 때는 상위 기종 R과 크게 차이 나지 않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연속으로 촬영할 때는 차이가 나타난다는 얘기다.

실사용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배터리다. 사진 211장을 찍고 RP는 꺼졌다. 공식 스펙으로는 한번 충전으로 약 250장 찍을 수 있다. 중간에 스마트폰과 연결해 리모트 조작을 한 시간과 메뉴를 이것저것 만져본 시간을 따지면 공식 스펙이 얼추 맞다. 하루 날 잡고 사진을 찍는 ‘진사’님들의 사용 패턴에 비춰보면 턱없이 모자라다. 배터리가 아쉽다고 지적받는 1~2세대 소니 a7 시리즈보다 못한 수준이다.

동영상 성능도 아쉽다. 4K 고해상도 영상 촬영을 지원하지만, 프레임은 24P로 제한된다. 또 4K 영상 촬영 시 풀프레임 센서 전체를 이용하지 않고 크롭 영역을 사용한다. 풀HD 촬영과 다르게 약 1.7배 크롭된다. 영상 촬영 시 AF 성능도 답답하다.

결론적으로 평가하면, EOS RP는 풀프레임 대중화라는 목적에 충실한 성능을 갖췄다. 풀프레임 미러리스 중 저렴한 가격대와 가벼운 무게는 분명 매력적이다. 아쉬운 AF 속도와 배터리, 영상 촬영 기능을 갖췄으며, 경쟁사 제품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면 만족할 만하다. 이 정도 사양에 이 무게와 가격대를 갖춘 경쟁 기종도 없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도 서브 카메라로 매력적인 제품이다. 가벼운 무게는 일상을 파고든다. 부담 없이 카메라를 손에 쥐게 만든다. 캐논이 노린 부분이다.

장점

  • 무게를 내려놓았다.
  • 가격도 내려놓았다.
  • 작지만 조작감도 괜찮다.
  • 내 마음대로 스위블 액정

단점

  • 배터리를 내려놓았다.
  • 영상 기능을 내려놓았다.
  • 저렴한 연사 속도
  • 손맛을 줄이는 얄팍한 셔터음

추천 대상
사진에 눈을 뜬 인스타그래머, 서브 카메라를 찾는 취미 사진가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