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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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친구의 계절작가: 그린레보 | 장르: 추리/스릴러, 일반SNS 시대, 종이책과 인연을 갈망하는 어느 책벌레의 고뇌심심풀이로 트위터에서 주로 혼자 책 이야기를 하던 아라는 국내에 번역되기는커녕 일본에서도 극히 마이너하다고 평가받는 작가의 책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다가, 낯선 유저 수현의 멘션을 받으며 급속도로 친해진다. 독서 취향이 상당히 겹치는 수현에게서 동질감과 동지의식을 느끼며 그토록 그리던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꿈에 설레는 아라. 그렇게 온라인상의 친분을 쌓아가다가 실제로 만나기로 한 대망의 약속의 날이 찾아왔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외견을 의식하면서 약속 장소로 간 아라는 예상 밖의 설렘과 어그러짐 속에서 방황하지만, 수현이 실존하는지도 의심스러운 어느 희귀본을 손에 넣었다는 걸 언급한 순간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다. 한때 ‘인터넷으로 만난 친구’란 어딘지 위험하게 들리고 남에게는 여차저차 아는 사이로 얼버무려야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랜선 인연(?)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책과 친구의 계절」은 지극히 마이너한(언급되는 작가들의 면면으로 볼 때 탐미적이지 않을까 싶은) 취향을 가진 두 책벌레가 트위터를 통해 만난다는, 어찌 보면 소소한 일화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기묘한 긴장감을 띠며 흡인력 있게 전개된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왔을 희귀본에 탐닉하는 신세대 독자들의 이야기는 ‘그놈의 책이 뭐길래…’라는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하는 결말로 치닫지만, 작품에서도 언급되듯 “나쁜 건 책이 아니며” 도리어 관계와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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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작가: 공포문학 단편선 | 장르: 호러천사 같은 여자의 뒤에 켜켜이 쌓인 비밀중풍으로 거동조차 못하는 아버지, 치매에 걸린 어머니, 아래로는 변변한 직업도 없는 두 동생까지 달려 있어 마흔이 될 때까지 결혼도 못하고 있던 형이 한 여자를 데려온다. 예쁘장한 얼굴에 다소곳한 태도, 오래 장애인 봉사를 했다며 침착하게 어머니 수발을 들고 지저분한 환경에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는 그녀의 이름은 ‘은혜’. 그녀는 심지어 결혼식도 생략하고 혼인신고만 한 채 집에 들어와 시부모를 돌보고 집안일을 해치운다. 동네사람 모두 그녀를 칭찬하지만, 동생들은 기묘한 의심을 감출 수가 없다. 헌신적인 그녀의 태도에 의혹이 가라앉던 것도 잠시, 점차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실제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은혜」는 겉으로는 모두가 칭찬할 만한 천사 같은 여자 ‘은혜’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하나씩 벗겨 가는 호러 스릴러물이다. 희한하게 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동자를 돌리는 형수, 술만 마시면 밤마다 소리를 지르는 주사가 생긴 큰 형, 갑자기 죽어 버린 강아지,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사……. 『흉가』, 『분신사바』, 『이프』, 『모녀귀』 등 많은 호러 장편을 쓴 작가 이종호가 능수능란한 손길로 써내려간 이야기는 긴장감 넘치고, 한 여자가 불러온 한 가족의 비극은 끔찍하기만 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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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킬라 할머니작가: 삼림 | 장르: 판타지, 호러삶에서 내몰린 자들의 유대를 강렬한 이미지로 담아낸 공포 소설이름에서부터 음습한 귀기가 느껴지는 자귀도(自貴島). 이 쇠락한 어촌 마을을 꾸준히 찾는 ‘나’는 섬사람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만물트럭 행상꾼이다. 몇몇 마을사람들을 단골 삼아 장사를 하는 게 영 녹록치는 않지만, 가족도 없이 홀로 트럭에서 먹고 자는 그만의 사연이 있다. 한편, 마을의 끝자락에 사는 ‘지말례’ 할머니 역시 만물트럭의 단골이다. 시래기처럼 바짝 마른 체구에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이 인상적인 할머니는 저간의 사정으로 삼십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이라 했다.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에서 홀로 지내는 탓인지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제법 친근하게 말을 붙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트럭을 찾은 할머니는 갑자기 자신의 몸에다 대고 에프킬라를 뿌리더니 괴상한 언행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에프킬라 할머니」는 쇠락한 섬마을을 배경으로 삶에서 내몰린 자들의 사연을 강렬한 이미지로 추적하는 공포 소설이다. 트럭에 모든 삶을 의탁한 채 살아가는 남자와 기괴하기 짝이 없는 기행을 일삼는 할머니의 사연을 탁월한 구성으로 펼쳐 나가는데, 실체가 없는 스릴감으로 질주한 끝에 맞닥뜨리는 풍경은 더없이 고요하고 엄숙하기만 하다. 외딴섬,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들이 만들어 낸 고독하지만 찬란한 풍경. 온통 홀로인 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행상인과 할머니의 유대감이 오래도록 묵직하게 남는데, 여러 장르의 익숙한 장치들을 영리하게 활용한 이야기의 분위기와 메시지가 더없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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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활동작가: 이시우 | 장르: 추리/스릴러, 기타거침없이 시원하게 끝까지 질주한다! 속도감 넘치는 액션 스릴러“니가 죽인 거야?” 등굣길, 담벼락 밑 쓰레기 봉지 사이에 놓인 여학생의 시체를 보고 있는 이영에게 뒤에서 나타난 동급생 김세연이 묻는다. ‘부모를 죽였다’는 소문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삶이 괴로운 이영은 경찰에 얽히기 싫은 마음에 신고를 세연에게 부탁하고 황급히 자리를 뜨지만, 어쩐지 학교에는 몇 시간만에 ‘부모를 죽인 패륜아가 우리 학교 여자애를 죽였다’며 소문이 퍼지고 만다. 시체를 목격하는 장면이 찍힌 CCTV 캡처 화면이 SNS를 떠돌고, 이영이 김세연에게 네가 쓴 글이냐며 따지자 김세연은 이영에게 화면의 이상한 점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데……. 우연한 계기로 만난 두 사람이 살인을 취미로 즐기는 비밀 조직을 와해하는 과정을 그린 장편 『과외 활동』은 몹시 시원시원한 작품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거침없이 달려가는 힘이 있어, 독자는 매력적인 학생 콤비와 함께 결말까지 빠르게 질주하게 된다. 사건 전개는 단순한 편으로(사건 해결에 필요한 기술이 아무리 복잡하다고 한들, 최신 기술의 이해와 활용은 천재 김세연의 몫으로 남겨 두도록 하고 범인 이영에 가까울 것이 틀림없는 우리들은 재미만 취하도록 하자.) 플롯을 따라 추리하는 재미가 있는 미스터리 쪽보다는 통쾌한 액션으로 무장한 스릴러에 가깝다. 이영이 선사하는 오토바이 액션신에서는 주인공과 함께 달리는 듯한 속도감마저 느껴진다. 물과 기름처럼 다른 두 주인공 김세연과 이영의 캐릭터 케미가 좋은데, 중학교 때부터 남다른 해킹 실력으로 이름을 날린 천재이자 전교 1등에 미소녀인 김세연과는 달리, 이영은 ‘부모를 죽였다’라는 소문의 주인공이자 전교 등수는 끝에서 노는 문제아로 싸움꾼에 절도 경력까지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영은 남몰래 김세연을 짝사랑하고 있는 터프하지만 귀여운 캐릭터이고, 미모로 인해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사는 김세연은 뛰어난 머리를 가졌지만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로 철저히 실리에 의해 움직이는데도 이영을 계속 도와주는 미스터리한 조력자다. 각자 비밀을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해서 얽히게 되었는지를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다. 이미 완결까지 나 있는 작품이지만, 브릿G 계약작에 이름을 올린 기념으로 다시 한 번 두 사람과 함께 질주해 보시길. 완결까지 달리고 나면 두 사람의 새로운 모험이 곧 시작하길 몹시 기다리게 되는데, 어쩐지 당분간은 이 매력적인 콤비와 만나기 어려울 듯한 것이 함정.(백합 무협물이나 시골 판타지 2부도 대기 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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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의 식탁작가: 아소 | 장르: 일반, SF멸망한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한반도를 제외한 모든 대륙이 가라앉아 생명체의 대부분이 멸종하고 이는 석유를 채굴하기 위하여 시추하던 과정에 발견된 땅 아래의 새로운 미생물 때문인 것으로 밝혀진다. ‘멸종 박테리아’라 불리는 미생물은 그 위험성이 확인되지 않아 사람들은 사건 이전에 생산된 가공 식품을 선호하여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한편 요양사 ‘무정’이 일하는 요양 병원은 노인들에게 이전과 다름없는 식사를 제공하고 그로 인해 사고가 터지는데… 「멸종의 식탁」은 어느 평범한 요양사의 일과를 통해 미지의 세균으로 인해 멸망한 세계의 이후를 현실감 넘치게 그려낸 SF 작품이다. 환경 오염과 생물 농축 등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익숙한 이슈가 절로 연상되는 이 단편은 예상 가능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장르 소설이 주는 본연의 재미에 충실해 결말까지 흡인력 있게 읽을 수 있다. 온갖 군상들이 망라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좋아하는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