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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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절(自切)작가: 하른 | 장르: 호러, 기타머리 잃은 몸, 몸을 잃은 머리. 그 둘의 기묘한 동거.어느 날, 눈을 뜬 내게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내 몸으로 추정되는 몸뚱이가 홀로 움직이고, 나는 머리만 남아 그걸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황당한 상황에서 몸뚱이는 필담으로 ‘네가 나를 잘랐다’라고 알려준다.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이, 몸뚱이는 그 상태로 외출하고, 새남자친구를 사귀고, 친구들을 초대까지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머리만 남은 ‘나’는 보지 못한다. 제목인 ‘자절(自切)’은 몸의 일부를 스스로 절단하여 생명을 유지하려는 현상을 뜻한다. 제목처럼 머리와 분리된 몸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기 넘치는 생활을 하고, 이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머리뿐인 나의 모습을 통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머리 없는 육신이 홀로 돌아다닌다는 다소 고어스럽고 괴이쩍은 소재로 만들어낸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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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사소설 고양이 이야기작가: 너구리맛우동 | 장르: 판타지LSD 소설이라니, 내가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 거지?기이하게도 고양이 하나가 사람 말을 하며 불러세워놓고는 ‘정말 고양이가 말을 한다고 믿고 대답한 거냐’며 의사와 상담해 보란다. 그러더니 주소까지 알려주며 정신과 하나를 소개해 주는데, 소개받은 정신과 의사는 찾아오게 된 사연을 듣고 난처해한다. 그 고양이가 젖먹이 때 어미를 잃은지라 자기가 보살펴주었더니 그 답례로 호객행위를 한다지 뭔가. 의사는 미안하다며 무료로 상담까지 해준다. 다음날 그 고양이를 또 만나게 되는데, 전날 의사의 얘기를 들려주니 고양이는 의미심장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는데. 이 작품은 연작 형태로 전작인 엽편이 하나 있다. 두 작품 모두 독자의 정신을 쏙 빼놓는지라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읽어버리게 만든다. 실제 전편에서 LSD로 인한 환각 이야기가 나오는데, 소설을 보노라면 읽는 이 또한 LSD에 취한 듯 정신줄을 쏙 빼놓게 된다. 기묘한 체험이되 유쾌한 기분이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LSD 소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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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ASIMOS─타나시모스작가: limpo | 장르: 판타지흥미로운 이야기와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담은 정통 판타지왕국의 선지자가 왕 아르테미오를 찾아와 ‘그림자 여왕’이 부활했음을 알린다. 과거 그림자 여왕의 목을 치고 봉인했던 살로메는 말도 안 된다고 부활에 대해 증명하라 요구하지만, 선지자는 증명할 방도는 없으나 부활한 건 분명하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살로메의 힘을 빌어 여왕을 막길 바란다. 결국 교황의 후원 아래, 왕은 살로메를 중심으로한 팀을 꾸린다. 살로메를 위해 목숨을 걸 기사와 그녀의 동생, 그리고 그녀의 감시자까지. 이들은 낯선 땅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타나시모스」는 이전에 소개한 적이 있던 <하늘의 아이들>처럼 진중한 대사와 서술로 정통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장르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에겐 초반 진입 장벽이 있다 하겠다. 그러나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대사와 찰진 비아냥(?)으로 중무장한 살로메의 입담과 개성넘치는 인물들 덕분에 작품에 빠져드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만 살로메만이 아니라 아서, 란슬롯, 원탁의 기사 등 작품을 읽는 내내 낯설지 않은 이름과 단어들이 종종 등장하여 세계관에 대한 혼란이 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또한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자연스레 적응해 나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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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으로 돌아가다작가: 최승윤 | 장르: SF우주 장의업자의 비극, 우주선 창 밖에 유령이?프로그(FROG)라는 별칭의 우주 운송선에서 장의업체를 10년째 운영중인 ‘나’는 맞은편 물류센터에 흉흉한 귀신 소문이 돈다. 우주선 창밖으로 슈트도 입지 않은 할머니를 목격했다는 것이다. ‘나’는 귀신 소문을 들으며 과거에 저지른 어떤 일을 떠올리며 낭패감을 맛본다. 「손님으로 돌아가다」는 22년 전 결혼한 물질만능주의 아내와 철부지 딸들을 홀로 뒷바라지하며 고된 삶을 사는 한 남성의 우울한 이야기를 우주를 배경으로 매우 짜임새 있게 그려낸다. 물리학을 공부한 소심한 작가라는 코멘트와 달리 제법 대범한 이야기 전개는 저자의 다른 작품을 둘러보게 만든다. 독자에 따라서는 다소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질 이야기도 있겠으나, 흥미를 갖고 읽어나가면 제법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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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셨다.작가: ngl94 | 장르: 추리/스릴러아버지가 4년만에 돌아오셨다. 젊은 여자와 함께.큰 기업의 대표이사인 아버지는 4년 동안 해외 어딘가를 돌아다니다, 젊은 여성 하나를 데리고 4년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늙은 재벌과 젊은 미녀, 많이 듣던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좀체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 밝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대신 여자가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경영에 참여하고, 남동생과 나는 여자의 정체가 새어머니인지 아니면 숨겨뒀던 이복여동생인지 의문을 품게 되는데. 140매에 이르는 꽤 긴 단편소설인 「돌아오셨다」는 매우 흥미롭고 기이한 소재의 이야기를 화자의 시점에서 단백하게 풀어낸다. 정체불명의 여인에 대해서나 의문뿐인 아버지에 대해서나 화자는 시종일관 깊은 관여를 하고 싶어하지 않아 보이는데, 그러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은 꽤 흥미롭다. 다만 결말에 이르러 저자가 던져주려 했던 또 다른 반전의 여운은 좀더 다듬어서 풀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