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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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옥작가: 공포문학 단편선 | 장르: 호러타인의 우위를 점유하려는 욕망의 무간지옥오랜만에 모인 고교 동창회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신 후 잠시간 기억을 잃었던 인규는 낯선 곳에서 홀로 헤매다 개인 편의점을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선다. 동창회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동창생의 태도 때문에 열등감과 굴욕을 맛본 주인공은 아르바이트로 보이는 왜소한 편의점 직원에게 무작정 화풀이를 하기 시작한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직원에게서 혐오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느끼던 주인공이 ‘사장’을 호출하며 의기양양하게 편의점을 나서려는 찰나, 일반적인 편의점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낯선 풍경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비어 있는 상품 매대와 광고지가 빼곡히 부착된 편의점의 유리창, 그리고 CCTV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장의 말에 위화감을 느끼는데… 익숙한 상황과 소재를 버무린 전개임에도, 내적 공포가 극대화된 긴박감 넘치는 일인칭 서술로 인해 도무지 읽기를 멈출 수 없다. 권선징악을 다루기보다는 타인보다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에 찬 인물들 간의 역전을 통해 본연의 공포에 충실하고자 한다. 편의점이라는 파리지옥에 걸려든 날벌레, 그 암시적 결말을 직접 확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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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는 하지 않습니다.작가: 화룡 | 장르: SF, 판타지범법자의 종말, 늑대인간 병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 두 명이 폭행과 살해 혐의로 기소되고, 공소를 기각하기 위해 기획사는 ‘늑대인간 병’을 내세운다. 그러나 멤버 중 한 명은 늑대인간 병으로 진단하기 어렵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고, 브로커인 석주와 그의 조수인 평인은 호르몬 수치를 조작하여 큰 배당금을 받는다. 친구 민우는 늑대인간 병을 진단받아 병역을 면제받게 도와달라고 하고, 선배 석주는 습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지는데… 「치료는 하지 않습니다」는 소재의 참신함을 떠나 폭력성을 유발하는 늑대인간 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운 소설이다. 연예인 브로커로 암약하는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에는 처벌받지 않는 범죄자와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양상이 함께 그려지고, 이로 인해 비극은 한층 더 강화된다. 속도감 있는 전개는 물론이고, 호조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극적인 결말로 인해 적지 않는 분량임에도 흡인력 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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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되는 길작가: 황미진 | 장르: 일반, 기타미래 세대의 한 풍경을 쓸쓸히 톺아보다미혼 비혼 독신남녀에게 천문학적인 세금이 부과되는 독신세가 시행된 것도 모자라, 무자녀 가정에 대한 증세 정책이 추가로 집행되며 혼자 사는 것이 죄악이 된 시대. 소득 수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국가는 징벌적 법안으로 시민들을 통제하고, 양육비 이상의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지를 찾아 나선다. 국가가 제시하는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고자 했던 ‘나’는 위장 결혼 업체를 통해 상대 남성 ‘와이’와 처음 만나게 된다. 낮은 출생률로 인한 수치만을 강조하며 주체가 빠진 캠페인과 정책들이 성행하는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이 작품이 제시하는 암울한 미래상을 단순한 상상력의 총체만으로 관망하기란 쉽지 않다. 브릿G에서 만날 수 있는 「감겨진 눈 아래에」가 특이점에 도달한 SF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이었다면, 「가족이 되는 길」은 그보다 더 내밀한 생활의 테두리를 파고들며 특정하기 힘든 개개인의 감정에 집중한다. 성향도 목적도 판이하게 달랐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떠나 주어진 시대의 명제 자체를 묵직하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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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처리팀 김미선작가: 노말시티 | 장르: SF, 로맨스호감과 비호감 사이의 딜레마미선은 인간의 선택을 거의 정확하게 모사할 수 있다는 인공지능 ‘앨리스’의 개발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실적 부진으로 계약 연장이 어려운 상황에 몰린다. 미선이 속한 예외처리팀의 업무란, 나날이 주어지는 고객의 질문지에서 앨리스의 답과는 다르면서도 호감도 높은 선택지를 의도적으로 고르며 인공지능의 기능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회사 휴게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개발팀 직원이자 회사 설립 멤버 이현은 고민하는 그녀에게 한 가지 힌트를 준다. 점심 메뉴는 뭘 먹을지, 휴가 여행지는 어디로 갈지 등등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매번 힘겹게 느껴진다면, 이 작품 속의 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또 대다수의 취향에서 약간 벗어났다고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주인공에게 적극 공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에 관한 소박하고 생활감 있는 발상에 간질간질한 러브라인을 더한 흥미로운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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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미터 O작가: 알렉산더 | 장르: SF인류의 최후를 앞두고 벌어지는 가치관의 충돌멸종이 코앞에 닥친 최후의 인류를 다루고 있는 『파라미터 O』는 소용돌이치는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이들의 대립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생겨나는 점이 재미있다. 극소수의 살아남은 인류가 희망을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도,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가장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조슈는 분명 선에 가까운 인물이고 주인공답다. 하지만 가령, 최후가 눈앞에 왔을 때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고 있는 것은 정말로 옳은 선택인가? 쾌락기에 몸을 맡기고 즐기다 가는 것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봐야 하는가? 이야기 속의 인간군상은 실로 다양하여, 똑같이 쾌락을 추구하는 입장에 있어서도 뇌에 가하는 화학적 자극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이들과 구시대적으로 진짜 육체를 통해서 쾌락을 얻으려는 이들이 대립하기도 한다.(후자는 보수주의자라 불러야 할까? 아이러니한 일이다.) 전력이 위기 상황에 이르자, 규칙대로 남은 이들의 생존보다 인류의 유전 정보가 담긴 씨앗 탱크가 우선시된다. 여기서 또 한 번 가치관의 충돌이 벌어진다. 지금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미래에 인류가 살아남을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가? 『파라미터 O』는 이런 가치관의 충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선택을 보여 준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가? 죄인들의 목숨의 무게는 얼마일까? 다함께 짧게 살아야 하나, 일부가 길게 살아야 하나? 사람이 사람다움을 포기하면 사람이 아닌가? 기계가 사람다움을 갖게 되면 사람으로 봐야 하는가? 저자가 의도한 주제는 인류애였겠지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상념의 파편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자아를 가진 로봇 이브와 새로운 기계종 사회로 이야기가 확장되며 벌어지는 결말이 취향에 맞든 맞지 않든,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진진하게 읽힐 것이다. 『파라미터 O』를 읽으면서 동시에 떠오른 스티븐 킹의 단편이 있다. 우연히 차원을 건너 온 기계를 얻어 미래의 신문을 보게 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미래의 정보를 통해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학 여자농구팀 감독인 자신의 여자친구와 그녀가 이끄는 여대생 선수들이 탄 버스를 음주 운전을 하던 여자의 차가 들이받아 1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미래의 일을 알고 있던 남자는 가해자가 교통사고를 내기 전에 그녀의 차의 타이어를 펑크 내어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한다. 자, 여기서 선은 누구인가? 사건의 가해자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여러 번 음주운전에 걸려 면허가 몇 번이나 취소된 전적이 있는 여자다. 일견 선과 악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미래를 비튼 남자의 앞에 나타난 수수께끼의 차원 관리인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버스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연쇄 살인범이 돼서, 나중에 암이나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발견할 어린이를 비롯해 수십 명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 그 여학생들 중 한 명이 제2의 히틀러나 스탈린이라는 인간 괴물을 낳아서 그가 인류를 수백만 명 살해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