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얼마 전 댓글 공작에 대한 검찰 조사를 비판하며 그것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5년이 지난 지금 그것에 대해 수사하는 것은 정치보복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다. 홍준표 대표가 어떤 근거에서 댓글 공작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것을 그리 쉽게 단정할 문제는 아닐 듯싶다.
마냥 감탄하고 즐거워할 일은 아니다. 얼굴을 노출하는 이 자연스러운 행위가 개인정보를 송두리째 도난당하는 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마이클 코신스키 교수가 9월 초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이 걱정은 더욱 또렷해진다. 코신스키 교수는 심층신경망을 이용해 얼굴 사진만으로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 지능은 물론 성적 취향이나 잠재적 범죄 가능성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얼굴만으로 내 '아이덴티티'가 데이터화해 다른 이에게 해킹당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결정적으로 내 억장을 무너지게 만든 건 MB의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단합이 필요하다. 국민이 하나로 뭉치면 어느 누구도 감히 대한민국을 넘보지 못한다"라는 발언이었다. 국정원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하고, 군사이버사령부 등을 동원해 여론조작과 국민 편가르기를 하며,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여러 인사들을 괴롭힌 건 과연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국민의 단합을 결정적으로 저해하고 국민들을 흩어지게 만든 MB재임시 국가기관들의 위법행위들에서 MB는 자유로울까?
MB가 페이스북에 '대국민 추석인사'의 글을 올렸습니다. MB의 페이스북에는 11시간 만에 2,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공유도 400회가 넘었습니다. (9월29일 오전 6시 기준) 댓글과 공유 횟수가 많은 것은 MB가 올린 글 중에서 "전전 정부를 둘러싸고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라며 "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만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다. 때가 되면 국민여러분께 말씀드릴 기회가 있다"는 내용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동일한 목적의 공익광고여도 한국에서 만든 것과 프랑스에서 만든 것은 초점이 확연히 달랐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이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모습을 공공연하게 그리면서 동정심을 끌어내려 한다. 반면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상들은 한 명의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민들에게 약간의 배려를 촉구하는 형식이다. '인간극장'류의 슬픈 음악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잘 팔리는 만화를 만들어서 아이들 상대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됩니다. 오히려 만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다양성을 일깨워주고, 다양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편성하는 모든 분들께 부탁합니다. 방송에서 묘사하는 성역할이나 나이, 민족, 직업, 빈부, 장애·비장애 등 차이에 대한 차별적 고정관념은 어른들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세요.
국회의원의 지위를 이용해 산하기관에 자신의 "시집"을 카드 단말기까지 의원실에 갖다 놓고 팔았던 이가 이제 북경의 "시인" 노영민이 될 판이라니, 역시나 마르크스가 헤겔을 빌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얘기한 대로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되는 모양인가 싶어 쓴웃음마저 난다.
발전사들은 대기오염 저감시설과 고효율보일러를 적용한 석탄발전소를 "친환경" 또는 "청정" 발전소라고 홍보합니다. 하지만 오염물질 저감 기술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대기오염물질 발생과 온실가스 배출을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필터를 쓰고, 순한 성분을 첨가해도, 담배는 여전히 건강에 해로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의학은 나날이 발달하는데 아픈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잘 모른다. 최근 들어 아주 낮은 농도를 가진 합성화학물질들이 많은 질병들의 감춰진 원인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 수많은 합성화학물질들의 존재가 단지 정부가 무능해서 그리고 기업이 탐욕스러워서 발생한 문제일까? 아니다. 그냥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런 시대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피해자이자 모든 사람이 가해자인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MBC에서 노조가 탄생한 건 1987년 12월이었다. 1987년은 6월 항쟁이 일어난 해다. 새로운 시대적 갈망이 꿈틀대던 그해에 MBC 노동조합이 설립됐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거다. 노동조합의 탄생은 공정한 방송 보도를 지향하고 국민에게 진정한 알 권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MBC 내부자들의 열망에서 비롯된 것 이었다. 흥미로운 건 9월 4일 총파업을 시작한 지금의 MBC가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훌륭한 삶을 산 지식인이 말년에 이르러 당혹스러운 주장으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를 이따금 보게 됩니다.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리영희 선생의 절필 선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이 훌륭하니 그대로 따르라고만 한다면, 보통 사람에겐 비현실적인 조언이겠지요. 마치 어설프게 쓰인 위인전처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은 숱한 국난 속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종묘와 사직이 우선이라는 '명분'으로 도성을 버리고 파천을 단행했다. 해전에 약한 후금군과 맞서기 쉬운 강화도가 파천의 목적지였다. 그 와중에 수많은 조선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후금군의 노예로 끌려갔다. 인조정권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우왕좌왕했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보유세 강화를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그 핵심은 현행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국세 보유세를 도입하고, 그 세수를 전액 모든 국민에게 1/n씩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세금을 국토보유세라 부르고자 한다. 국토보유세는 천부자원인 토지에만 과세하고, 종합합산, 별도합산, 분리과세 등 용도별 차등과세를 원칙적으로 폐지하며, 모든 토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과세한다는 점에서 종합부동산세와 크게 다르다.
이제 서울 사는 게이나 레즈비언들은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절대 청약 당첨이 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이전엔 일정 비율에 대해서는 가점 상관없이 무조건 추첨이었기에 그거 하나 바라고 청약을 넣었던 건데, 8월부턴 무조건 가점제가 되었다. 법적인 결혼을 할 수 없는 우리 동성애자들 같은 경우에는 결혼을 한 이성애자 부부들과의 가점 경쟁에서 상대가 될 수가 없다.
감내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까지 간 것이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폭발 일보 직전까지 온 한반도 위기 상황은 극적인 반전의 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제는 대화다. 서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얼굴을 맞대야 한다.
'아이 캔 스피크'가 여성의 경험과 연대가 큰 의미를 차지하는 영화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순서는 당연하기 짝이 없다. 물론 감독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의 영화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그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느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는지도 그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을까?
참여정부와 MB정부 댓글의 가장 큰 차이는 '실명'과 '비실명'입니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민간댓글 알바팀은 철저히 비실명으로 '좌익효수'와 같은 아이디를 수십 개 만들어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에 반해 참여정부는 정부 부처의 이름과 담당자를 정확히 공개했습니다. 누가 글을 썼는지 밝혔다는 사실은 정치 공작이 아닌 정부 부처의 공식 홍보 업무였다는 의미입니다.
<아이 캔 스피크>는 가능한 한 위안부 문제라는 무거운 소재를 짊어지는 시간을 미뤄둠으로써 그 주제 의식에 확실하게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다. 그리고 민족적 채무처럼 끌어안고 있었던 위안부 문제라는 역사적 엄중함을 산뜻한 이야기에 담아 간편하게 떠먹인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라는 엄중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공감하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단정짓지도 않는다.
내가 미적분을 풀어내고 칠판이나 다른 도구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내겐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경탄할 사건인 듯 보였다. 내가 하고 있는 활동들은 물론이고, 내 손목에 채워진 점자스마트 워치나 아이폰의 보이스오버 소리까지도 모든 사람들에겐 상상초월의 영역으로 느껴지는듯 했다. 내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의 사람들의 리액션은 다른 분들의 시간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겠지만 난 조금의 다름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대단하고 궁금한 이야기들이었지만 나의 이야기는 시각의 부재와 관련하여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