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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없이도 정치개혁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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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치권에서 개헌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정치개혁의 뇌관을 터트렸다. 헌법재판소는 10월 30일,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편차를 2대 1 범위 내로 조정하라고 결정하였다. 내년 말까지 조정을 마쳐야 한다고 하니 청와대의 알레르기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1년간 정치개혁이 커다란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만 지켜도 제왕적 대통령은 없다

개헌론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등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라고들 한다. 국민이 보기에 임기 문제는 너무 지엽적이다. 아니, 그게 왜 문제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대통령의 권한 축소에 대해서는 솔깃한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헌법에는 이미 대통령에 대한 견제 장치가 들어 있다.

국회라는 값비싼 기구의 존재 이유는 행정부 견제에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대통령 소속 정당과 국회 다수당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게 안 되고 있으며, 권력 분립은 행정부와 국회 사이가 아니라 여당과 야당 사이에 존재할 뿐이다. 이런 위헌적 현실을 허용하는, 아니 오히려 촉진하는 선거법, 정당법과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이 문제다.

또 국무총리와 국무회의도 대통령의 독주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 앞에서 굽신거리는 총리나 대통령 말씀을 받아 적기 바쁜 국무회의가 무슨 견제?'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는 헌법 제86조에서 제89조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이처럼, 헌법대로만 하면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 없으므로 헌법을 고칠 것이 아니라 헌법을 충실히 지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투표가치의 평등성"은 비례대표제로

헌법을 그대로 두더라도 해낼 수 있는 시급한 정치개혁도 많다. 명색이 민주국가인데도 정치와 정책이 국민과 따로 논다는 게 그 중 제일 심각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의제의 국민 대표성을 높이면서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글머리에서 인용한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투표가치의 평등성은 국민주권주의의 출발점"이라고 하였다. 투표가치의 평등성 면에서 가장 좋은 제도는 당연히 한 표 한 표가 동등하게 의미를 가지는 비례대표제다. 반면, 소선구제는 사표를 많이 만들므로 국민 대표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뿐만 아니라 소선구제는 거대 정당에 유리하기 때문에 정치독과점이라는 폐단을 낳는다. 양대 정당제를 옹호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경제의 독과점이 나쁜 것처럼 정치의 독과점도 당연히 나쁘다. 독과점 기업이 소비자의 요구에 둔감하듯이 양대 정당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나갈 뿐이다. 우리가 늘상 보아온 폐단이다.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대의제 개혁과 함께 국민 참여 확대도 필요하다. 현재 제도화 되어 있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로는 전국 단위에는 국민투표가 있고 지방 단위에는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 주민참여예산제도 등이 있다. 앞으로 스위스 등의 앞선 사례를 참고하여 국민 참여를 늘려 나가야 한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서는 국민의 발의부터 투표에 이르기까지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정치개혁을 위해 당장 헌법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투표가치의 평등성"을 보장하는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직접민주의의를 확대하면 된다. 흔히 중대선거구제를 거론하기도 하는데 투표가치의 평등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어정쩡한 제도다. 다만, 한꺼번에 완전 비례대표제로 가기 어렵다면 과도기적 조치로 채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족 같지만, 추첨민주주의에 대해 한 마디 언급해 두고 싶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더라도 정당에 의해 국민 대표성이 왜곡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선거나 정당을 통하지 않고 추첨으로 대표를 뽑으면 된다. 형사재판의 배심원 뽑듯이 일반국민 중에서 무작위로 대표를 뽑자는 것이다. 물론, 헌법 제41조는 국회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고 표현하고 있어 추첨 방식은 제외되어 있지만, 장기적 개혁안으로 반드시 고려해 보아야 한다. (혹 '국민 대표를 추첨으로? 그건 너무 엉뚱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를 위해서 필자가 쓴 다른 글을 링크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