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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돈이 아니어도 베짱이 복지는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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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 M Do

지난 대선 때는 후보들이 서로 복지를 확대한다고 하여 금방 세상이 달라질 것 같더니 최근에는 분위기가 반전되고 말았다. 복지는 개미가 베짱이를 먹여 살리는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시각이 집권 세력 내부에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은 자기 밥숟가락을 물고 태어난다'는 말을 흔히 들어왔다. 어려움이 닥쳐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혹 누구나 먹고사는 데 필요한 정도의 자기 돈은 반드시 어디엔가 있다는 뜻은 아닐까? 이런 추측이 옳다면 개미의 돈으로 베짱이를 위한 복지정책을 펼 필요가 없다. 그저 베짱이에게 자기 돈을 찾아주기만 하면 된다.

복지 재원은 꼭 세금이어야 하나?

복지 재원은 세금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복지는 정의롭지도 않고 경제에도 짐이 된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복지를 제공하면 공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고 개미가 베짱이에게 생활비를 마련해주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의 대표적인 이론가로는 철저한 시장주의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들 수 있다. 자유방임주의의 온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였던 프리드먼은, 정부가 온정주의적 복지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개탄한다. 1962년에 쓴 유명한 책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보자.

온정주의적 정부 활동의 필요성은 자유주의자에게는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문제다. 자유주의가 기피하는 '내 문제를 다른 사람이 결정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여야 하며 또 이런 원칙은 그 포장이 공산주의건 사회주의건 복지국가건, 자유주의의 주적인 집단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와 그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는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 보수 진영의 단골 레토릭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프리드먼은 시장경제 이론 속에서 복지정책의 근거를 찾아낸다. 인간에게는 불행에 빠진 사람을 가엾이 여겨 자발적으로 도우려는 본성이 있는데, 누군가 자선을 행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사람이 무임승차를 하게 되며, 이런 외부효과는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므로 정부를 통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프리드먼이 제시한 복지제도는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이다.

소득세보다 더 좋은 세금, 자연세

부의 소득세는 일반 소득세의 대칭형이다. 일반 소득세가 면세점 이상의 소득에 일정 세율을 곱한 금액을 소득자에게서 징수하는 세금인 반면, 부의 소득세는 소득이 면세점 이하인 사람에게 그 차액에 일정 세율을 곱한 금액을 지급한다. 징수하는 대신 오히려 지급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프리드먼은 소득세보다 더 좋은 세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무도 생산하지 않았고 또 그 양이 제한되어 있는 자연을 소유・사용하거나 오염시키는 사람으로부터 그 대가를 징수하는 세금이 "가장 덜 나쁜 세금(least bad tax)"이라고 하였다. 좋은 세금이라고 하지 않고 덜 나쁜 세금이라고 한 것은 정부 간섭과 세금을 싫어하는 프리드먼의 독특한 화법이다. 프리드먼이 칭찬한 이런 세금을 '자연세'라고 부르기로 하자.

자연 중 인간생활에 가장 밀접하고 규모도 큰 물자는 토지이므로 자연세의 대표는 단연 토지세다. 요즘은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환경오염세도 중요한 예가 되며 천연자원 채취자에게 부과하는 천연자원세도 마찬가지다. 자연세가 정의롭기도 하고 효율적이기도 한 세금이라는 사실은 프리드먼만이 아니라 모든 교과서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지 재원을, 나아가서는 모든 정부 재원을, 자연세로 우선 충당하고 혹 모자라면 다른 '더 나쁜' 세금을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연은 우리 모두의 공동자산

자연은 소득과 다르다. 소득은 자신의 노력과 기여의 결과인데 비하여 자연은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러므로 자연은 소득과는 달리 당연히 사적 소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생산하지 않은 것, 그러면서도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 필수적인 존재인 자연은 원초적으로 우리 모두의 것이다. 단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소유'제도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자연이 우리 모두의 공동자산이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존엄하다면 모든 국민은 자연세 수입에 대해서는 동일한 지분이 있다. 국민이 그 지분으로 자신의 생활비를 조달한다면 별도의 복지가 필요 없다. 조세를 재원을 삼는 복지와는 달리 남의 돈을 쓰는 것이 아니므로 개미와 베짱이의 비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게으름을 피우더라도 자기 돈으로 먹고 산다는 데 무슨 시비꺼리가 될 것인가?

실제로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는 석유채굴세 수입을 매년 모든 주민에게 동일하게 지급하고 있다. 알래스카에서는 석유 파이프라인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던 1976년에 주 헌법을 개정하여, 석유 광권 수입의 4분의1 이상을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에 넣고 이 기금의 운용 수익을 주민에게 나누어주게 하였다.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은 특정인이 생산한 것이 아니므로 그 수익 역시 당연히 모두의 것이라는 취지이다. 배당액은 운용 수익에 따라 매년 다른데 2008년에는 1인당 3,269달러에 달했고 2013년은 금융 위기의 여파로 운용 수익이 줄어 900달러에 그쳤다.

기본생계 책임지는 보험을

그런데 필자는 알래스카 방식보다는 보험 방식이 더 낫다고 본다. 모든 국민의 기본생계를 보장하는 보험제도를 만들어 자연세의 일부를 보험료로 납부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만 보험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보험금을 타는 국민은 소수이므로 알래스카 방식보다 더 적은 재원으로 더 많은 금액을 보장할 수 있다. 또 자연세 수입을 남겨서 일반 정부재정에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더 나쁜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국민 공동자산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토지만 해도 연간 150조 원 정도의 임대가치가 있으니 국민 1인당 연간 300만 원 꼴이 된다. 환경오염세와 천연자원세를 합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아진다. 보험금을 탄 사람이 나중에 잘 살게 될 경우에 수령액을 상환하도록 하면 가용 자금을 더 늘릴 수 있다. 더구나 자연세 수입만큼 다른 세금을 감면해주면 토지 임대가치는 더 올라간다.

물론 이미 토지가 사유화되어 있는 지금의 상태에서는 곧바로 토지에서 연간 150조 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필요한 복지 재원은 현재의 세제에 따라 마련하면서, 자연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원론에 맞게 현재의 세제를 서서히 바꾸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보장하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임을 이해한다면 우리 사회의 복지 갈등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 월간 공공정책 (한국자치학회 공공정책연구원 발행) 통권 제97호 (2013년 11월호) 71-72면에 게재한 것을 일부 개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