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 성가시리만치 문재인 정부의 새 내각 인선을 둘러싼 청문회가 이어졌다. 새 정부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될 인물의 면면을 헤집고 고발하면서 적임인지 아닌지 시비가 뜨거웠다. 정치적으로 큰 역할을 하게 될 인물이, 누가 봐도 본보기가 될 만한 인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듯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범적인 인격을 지닌 이들에 의해 세상이 좌지우지된다는 선량한 믿음 속에는 어딘지 구린 구석이 있다. 의롭고 떳떳한 인물을 정치지도자로 뽑아야 한다는 원칙은 그럴듯하지만 정치가 인격에 좌우되는 것이라고 볼 이유는 전연 없기 때문이다.
사드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가정보원이 아무 감시도 받지 않고 특정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데도 안보라는 장막이 절대적인 구실을 했다. 안보만 들이대면 어떤 비밀도 어떤 독재도 정당화할 수 있기에,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안보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었다. 남북한이 여전히 전쟁 상태에 있다고만 하면,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대체로 입을 다물었다. 홉스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자연권의 일부를 양도해야 한다며 국가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했듯이, 전쟁에 대한 공포는 국가권력에 대한 판단을 정지시키며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에 한·미 간 합의 내용은 올해 연말까지 사드 발사대 1기가 배치되기로 합의했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5기를 추가로 올해 4월에 반입된 것으로 앞당겨졌다"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배치된 사드의 실상이 어떠하냐? 국방위에 가서 제가 알아본 바는 이렇습니다. 현재 한국에 반입된 사드 발사대는 총 6기. 한 기당 8발씩 요격 미사일이 장전되니까 한 번 발사할 분량으로 총 48발의 요격 미사일이 들어왔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단 16발. 사드 요격미사일은 한 발에 100억원이 넘습니다. 나머지 4기에는 장착할 요격 미사일이 없습니다. 당연히 창고에 처박아 두고 있습니다. 활은 들여왔는데 화살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유한국당이 당명으로 5행시를 공모하는 2차 전당대회 개최 이벤트를 페이스북에서 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5행시 공모전 이벤트는 22일 오전 7시 기준 2,257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문제는 2천 개가 넘는 대부분의 댓글이 이벤트 의도와 다르게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는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홍보를 위한 이벤트가 오히려 비판의 자리로 둔갑한 셈입니다. 문자폭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선 자유한국당 상황에서는 댓글을 신고하지도 못하고 난감한 상황입니다. 촌철살인으로 국민의 정치 참여 수준을 보여준 '자유한국당 5행시 공모전', 댓글 중 베스트만 뽑아봤습니다.
무슬림 이민자, 독거노인 그리고 가난한 예술인과 같은 사회 최하층이 채우는 120가구 무려 24층짜리 아파트가 겨우 1시간 만에 거대한 불기둥으로 타버린 것은, 부자동네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플라스틱 외장재 때문으로 밝혀졌습니다. 사회통합은커녕 그들 눈에 임대주택은 당장 걷어 내버리고 싶은 흉물에 불과했는지 모릅니다.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총리는 참사 현장 방문에도 유가족을 만나지 않았고 BBC 인터뷰에선 '뭐가 문제인지는 안다'는 투로 일관하며 화를 자초합니다.
경위가 어떻든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 뉴스메이커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보기에 안 좋은 건 둘째치고 정책에 혼선을 불러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뉴스의 한복판에 섰다. 지난주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 세미나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세미나에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사견을 전제로 대답했을 뿐이라지만 논란은 불가피하다. 문 교수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문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말은 곧 대통령의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조용히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 특보의 역할이다. 공식적인 발언은 가급적 자제하거나 최대한 신중을 기하는 게 옳다. 말이 길어지면 설화(舌禍)가 따르기 마련이다.
문정인 선생은 한미동맹의 균열로 말하자면 "독자적 핵무장하자"는 보수의 모험주의자만 못하고,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기로는 "전술핵 배치해달라"고 떼를 쓰는 보수 철부지만 못하며, 몽상적이기로는 북한 비핵화 외에 어떤 대북 접근의 논리도 불필요하다는 외골수 자기중심적 안보론자보다 못할 것입니다. 사실 문 선생님의 말은 북핵문제에 대한 적극적 자세를 모색하는 상식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대부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말한 내용입니다. 정작 미국보다 국내에서 "미국 정책에 거스른다"며 온통 난리입니다. 약간이라도 다른 말을 하면 미국이 싫어할까봐 경기를 일으키는 분들이 계십니다.
흔히들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루어졌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달성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도달하긴 한 걸까?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적 대표성'을 사회 구성원에게 두루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나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자가 지금 국회에 있는가?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엄연히 한국 사회에서 다수로 존재하는 여성, 노동자, 자영업자, 청년 등의 선호와 이익은 정치 과정에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국회는 국민들의 평균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