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숫자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 하나씩을 대표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 두 숫자는 정권의 광기(狂氣)가 사회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듯, 첫 번째 숫자는 우리 산천의 강들을 모두 망가뜨리기 위해 작심하고 쏟아부은 국민의 혈세를 뜻합니다.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아까운 돈을 국토를 파괴하는 데 낭비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영미의 정보기관들은 치밀하게도 또 하나의 역정보를 준비하니 그것은 바로 패튼의 미군이 주둔하였음직한 영국 내 지역의 지역신문에 영미 정보기관의 기관원들이 독자투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요새 젊은 미군 병사들이 밤에 술을 먹고 고성방가해서 괴롭다. 단속해 달라."라고 하는가 하면, "젊은 미군 녀석들이 동네 처녀들에게 집적거려서 풍기가 문란해져서 싫다"하는 점잖은 영국 노인분들의 꾸지람성 투고까지 모두 연합국 정보기관원들이 단 댓글 아니 이들이 창작해 낸 '독자'투고였던 것이었다. "미군, 주둔지에서 행패" 같은 요새로 치면 가짜 뉴스들이 실리기 시작했고 영국 신문들을 독일 정보기관을 통해 주의깊게 살펴 보았을 독일군은 방어군의 주력을 노르망디가 아닌 칼레로 옮기는 치명적 실수를 하게 된다.
"콘돔의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195쪽). 이 구절은 5장 '하고 싶다, 이 여자' 편에 나오는데, 알려진 사실과 '달리' 저자는 피임과 성병 예방을 위해 콘돔만큼 효율적인 것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의 요지는 콘돔 사용이 "한 차원 높은 정서적 교감"을 방해하니, "안전한 콘돔과 열정적인 분위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서 임신을 "사고(?)"라고 표현하고 있다(물음표는 저자 본인의 표시). 일단, 그는 이 책에서 공중 보건과 관련하여, 중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만(?) 26명의 여성과 연애했다는 저자의 경험을 고려하면, 무지로 인한 자신감이 지나치다.
언론은 살벌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뉴스 의제를 사건·사고라는 피상의 세계에만 가두는 식으로 왜곡해왔고, 이젠 이게 부메랑이 되어 사건·사고에 이해관계나 특정 이념성·정파성을 갖고 있는 독자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모욕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자업자득이라고 말하기엔 언론이 처한 모든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 독자와 같은 눈높이를 갖기 위해 애써온 평등주의의 실현으로 자위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야 할 것인가?
북핵문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변수는 바로 시간이다. 북한은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를 완성하고 탄두 설계를 재촉하고 있다. 운반수단 분야에서도 종류를 다양화하고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분명히 핵 보유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고, 현재의 수준을 동결시킬 과감한 협상이 필요하다. 문제가 비상하면 해답도 비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시간의 제한'을 고려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서 '담대한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저 연배의 여성이, 저 자리에 올랐다면 아무리 배경이 좋았다 해도 남자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노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여성을 두고 "딜한다" "강경화를 날린다" "내준다"라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리는 중장년 남성들이 있다. 나는 남자들이 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대단히 불편했다. 지금껏 여성을 차별하는 환경을 누려왔으면서, 여성들의 희생 덕분에 그 자리에 오른 것도 모르고, 지금 와서 또 여성을 차별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그래왔던 것처럼, 강경화씨를 여성이라고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야당과의 '딜'을 위해 왜 유독 강경화씨에 대해서만 "날린다" "내준다"는 말을 쓰는가? 굳이 누구를 내주어야 한다 치자. 그런데 강경화를 지키고 김상조를 내주면 한국이 지옥 되나? 도종환을 내주면 왜 안 되는데?
에마시계엔 작은 모터가 내장됐다. 이 모터는 진동을 이용해 뇌에 신호를 전달한다. 뇌는 신호를 받아 근육에 이완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파킨슨병 환자도 쉽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파킨슨병 환자의 뇌는 잉여 신호를 근육에 보내고, 이 때문에 근육은 혼란에 빠져 많은 움직임을 한번에 일으켜 떨림이 발생한다. 에마시계는 손목 진동을 이용해 뇌 신호가 손목 근육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하이언의 표현대로라면, 혼란스러운 근육 반응에 '백색 잡음'을 주입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 멋스런 고집불통 사내가 정말로 고맙다. 정교한 만듦새와 아름다운 디자인에 기꺼이 가치를 지불하는 사람이었던 게 고맙다. 아름다운 우리 것을 잘 알아보고 그것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전하려 했던 그 태도가 고맙다. "때론 돈을 낙엽처럼 불태울 줄도 알아야 한다."던 그가 모아놓은 6500점의 유물이 고맙다. 그가 쓴 맛깔나는 문장들이 고맙고, 그가 남긴 잡지들이 고맙고, 그가 세상에 둘도 없는 멋쟁이였던 게 고맙다. 나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 남자가 〈뿌리깊은 나무〉 출판사의 집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볼 때가 있다. 시간을 머금은 보드라운 질감의 토기를 들고 찬찬히 들여다 보다 한두 번쯤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손목엔 파텍 필립을 차고 말이다.
5월 31일 문 대통령은 미국 민주당 소속 딕 더빈 상원 원내총무를 만나 사드 배치에 대해 논의했다. 더빈 의원은 면담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원치 않으면 9억2300만 달러(약 1조300억원)의 관련 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청와대에서 내놓은 해당 면담에 대한 브리핑에서는 그러한 충격적 발언에 대한 언급이 쏙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더빈 의원이 거짓말로 인터뷰를 한 게 아니라면, 청와대에서 언론 브리핑에서 해당 내용을 '보고 누락'한 셈이다.
현재 공정위의 포상금 제도는 '작동되지 않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3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①갑을관계 이슈에서 '정보를 알 만한' 피해당시자 을은 모두 포상금 대상자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공정거래법 체계에서 갑을관계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은 4가지인데, △하도급법에서는 하청기업 사장님이 △가맹사업법에서는 가맹점주가 △대규모유통업법에서는 납품업자들이 △대리점법에서는 대리점 점주들이 제외돼 있습니다. 예컨대, 남양유업 본사의 횡포에 대해 남양유업 점주들은 포상금 대상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②포상금 지급 재원 규모가 쥐꼬리만큼입니다. 역시 '작동되지 않도록'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③'반드시 줘야 하는' 준칙 조항이 아니라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는' 재량 조항입니다.
교육부의 잘못된 갑질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MB정권 때부터였다. 재정지원을 무기로 총장직선제, 학장선출제를 교육부가 원하는 간선제로 강압적으로 변경했고,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을 비롯한 다양한 국립대 통제정책이 실행되었다. 총장/학장 직선제든 간선제든 장단점이 있다. 문제는 대학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대학거버넌스 문제를 교육부의 압력으로 결정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말 안들으면 돈 주지 않겠다'는 것. 교육부의 입맛에 따라, 대학의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지난 9년간 벌어진 일이다.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인증받은 곳은 세계적으로 2만여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16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은 분만 방식이 아닌 모유 수유 권장에 대한 인증입니다. 한국에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인증받은 곳이 적은 이유는 한국의 출산 행태 때문입니다. 많이 경험하셨듯이 우리나라 산부인과에서는 출산 직후 2~4시간 동안은 아이와 떨어져 있게 됩니다. 하지만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인증 요건 중에는 '산모는 출산 후 30분 이내에 아기와 피부를 맞대고, 최소 30분간 아기와의 접촉을 지속해야 하며 이때 젖을 빨리기 시작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가장 먹먹했던 순간은 바로 낯선 이에게 폭력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게딘이 자신의 건강보다 HIV감염인 파트너 조나단의 건강을 챙겨달라고 광부노조 가족에게 부탁하고, 조나단이 에이즈 감염사실을 광부노조 가족에게 털어놓는 장면이었다. '에이즈'가 뭐든 상관없다는 듯 그의 손을 꼭 잡아주는 광부노조 가족의 모습은 마치 약자와 약자가 연대하는 모습의 완성형 같았다. 런던프라이드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던 시대에 약자와 약자가 서로의 손을 잡고 어떻게 버티고 변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국방부 근무지원단은 600대가 넘는 차량운용에 엄청난 연료와 운전병을 투입합니다. 이런 일이 있습니다. 매주 국방부 간부회의에 합참 고위 장성들이 참여합니다. 합참 청사에서 국방부 청사는 바로 길 건너, 걸어보면 대략 1분 거리입니다. 그냥 걸어가면 될 것을, 월요일 아침이면 합참 청사 앞에는 고위 장성을 실어 나를 고급 관용차들이 줄 지어 있습니다. 여름이면 운전병들은 에어컨 틀어놓고 대기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온갖 똥 폼 다 잡느라고 낭비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워싱턴의 미 국방부 가보십시오. 출근 시간이면 장성들이 일반 하위직 사무원들과 같은 셔틀버스에서 줄 지어 내립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인관관계가 내 시력의 캄캄한 상황과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을 보면 그것은 해부학적인 안구의 상태나 혹은 그것과 관련된 기관들의 생리학적 활동성과 직접적인 관계를 논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만남'이라고 하는 물리적 거리의 축소 혹은 그에 준하는 여러 통신수단의 연결횟수를 의미한다면 시각의 장애는 관계의 형성이나 유지 혹은 발전에 부정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는 그 사이를 이어주는 이동의 수단이 필요한데 시각의 장애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이동의 경우의 수를 현저히 축소시키는 작용을 동반한다.
별로 유해할 것 없는 만화라는 것이 나의 결론인데 어째 딸과 함께 볼 때마다 고군분투하는 소피아가 마냥 안쓰럽다. 진정한 공주가 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소위 지덕체의 조화, 내면과 외면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늘 타인의 마음을 배려하며 자신의 욕망을 조율해야 한다. 남의 죄는 기꺼이 뒤집어쓰되 자신의 성취에 대해 절대 잘난 척해서는 안 된다. 전력을 다해 삐딱한 내가 보기에 〈리틀 프린세스 소피아〉에 나온 현대판 공주의 미덕이란 여성을 향해 예쁘게 설치된 덫에 가깝다. 교묘히 업그레이드 된 억압이랄까.
19세기 말 생존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해 간 조선인들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는 시련이 멈추지 않았다. 20세기 초, 정확히는 1937년, 17만 명의 고려인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 당한다. 고려극장의 배우들도 그 안에 있었다. 영화는 당시 고려극장 전설의 디바였던 이함덕의 발자취를 좇는 한편 그녀의 제자이자 생존해 있는 고려극장의 대표적인 디바 방 타마라를 방문한다. 영화는 고려인, 고려극장, 이함덕, 방 타마라를 넘나든다.
미국인 17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의 84%, 여자의 58%가 첫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부담해야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6개월차 이상 되면 남자의 75%, 여자의 83%가 데이트 비용을 나눠서 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재미있는 게 데이트 비용 분담에 대해서 여자의 지지율이 남자보다 높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음에도 전체 남자의 76%가 여자가 비용을 내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단 것이다.
많은 관객들이 영상 속 조문객의 오열을 보며 영화관이라는 장소성을 망각한 채 오열하는 자신을 마주한다. 이 순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애도는 특이하게도 떠나간 대상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분노와 슬픔으로 항의했음에도 억압당해온 가치들과, 선과 정의가 배반당하는 우리의 아픔에 오불관언했던 세력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을. '촛불혁명'은 표면적으로는 정권교체로써 완수된 듯하지만 사실 감정은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두개의 애도가 완수되어야 마음 깊숙이 고인 멜랑꼴리와 결별하고 건강한 정치성을 회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