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본 장면 아닌가?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이 모든 전쟁에서 한국은 주체도 아닌 처지였지만, 수십만에서 수백만을 헤아리는 한국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청년들이 징집되어 사망했다. 특히 지금은 주변 강대국 패권이 이동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조선 인조 때의 병자호란과 조선 말 청일전쟁 시기와 너무나 유사하다. 지금 사드는 고도 미사일이나 수도권 방어에는 거의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났고, 미국의 오랜 국방전략의 산물도 아니며, 록히드 마틴이라는 일개 군산복합체의 로비로 배치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인의 생명을 지켜주지도 못하는 미국의 전략에 왜 한국인들이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는가?
전근대에 왕정이 보편적이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피지배계급이 왕정에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박혀 있는 이 관념이 왕정의 절대근거였다. 왕정이 자신의 노동과 생산을 일상적으로 털어가더라도 감히 저항을 꿈꾸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니, 왕이 죽으면 흰옷을 입고 눈물을 쏟았다. 왕이 민초들에게 무엇이기에! 이른바 '태극기 집회'를 보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 아직도 왕정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박근혜의 탄핵을 넘어 사람들의 '머릿속의 왕정'을 지우는 일도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궁극적으로 위안부 소녀상은 과거에 관한 작품이고, 겁없는 소녀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조각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조각은 상이한 역사를 가진 두 사회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위안부 소녀상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면, 그것은 아픈 역사 때문이 아니라 영원히 희생자로 객체화된 여자아이의 모습 때문이다.
독일의 경제학자 빌헬름 뢰프케는 평생 화두 하나를 붙들고 살았다. 바로 "칸트 괴테 베토벤의 나라 독일이 어쩌다 미치광이 히틀러에게 몰표를 몰아주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인류에게 안겨주었는가?"였다. 의문은 곧 이런 재앙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독일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성찰로 이어졌다. 뢰프케가 도달한 결론은 한 사회가 건강하려면 사회적 계층질서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소수의 '윤리적 귀족'이 존재해야 하며, 무지한 대중들로 인해 세상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진정한 성직자 혹은 지식인과 같은 엘리트가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전세계에서 모인 지도자들 앞에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노선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으로 자유무역 노선을 수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시진핑이 롯데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불매 운동, 반롯데 시위, 유커들의 한국 방문 제한, 한국 연예인들의 중국 공연 줄줄이 취소를 소극적으로는 묵인, 적극적으로는 독려하는 것은 강대국 최고 지도자의 얼굴을 깎는 이중의 잣대다. 개념적으로 말하면 이중인격자다. 트럼프의 미국제일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작은 이웃을 상대로 힘자랑하는 것은 중국의 역사적인 수치다.
아버지와 며칠을 지내는데, 그분 전화로 끊임없이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그리곤 대통령을 구하자는 구국의 목사님과 집사님의 동영상 연설이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리는데 마음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에게 하루 종일 온 카톡 중 내가 보낸 것은 몇개인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하게 되었다. 별로 없다. 사람들과 관계 맺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을 텐데, 혼자 계신 아버지에게는 끊임없이 울리는 이 카톡이 그분을 세상과 연결시키는 문 같은 건 아닐까. 그 문은 내 것이 닫힌 만큼 더 크게 열리는 건 아닐까. 그날 이후 나는 아침마다 문안 카톡을 보낸다.
4인 가족이 외벌이로 먹고 살기엔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도 곧 걸어다니는 "돈 먹는 기계"가 된다. "아이가 혼자 크냐?" 라고 물으면 "엄마와, 아빠와, 돈과 함께 큽니다"고 답할 준비가 됐다. 그래서, 직장을 찾아 나선다. 안타깝게도 약 10년 간 단절된 그녀의 경력으로 인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이모"거나 "미화 노동" 혹은 "마트 캐셔"에 그친다. 알파걸로 시작해 경단녀가 되고 반찬값 벌러 나왔다는 식당 아줌마가 된다. 이럴 거면 대학을 왜 나왔나, 대기업에 왜 들어갔을까 되묻기도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어리석은 논쟁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몇 년 전 남학생이 기간제 여교사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자, 남성교사할당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남교사 부재로 인한 학교 폭력이 심화되는 사례로 삼았다. 여기서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남녀 성차의 문제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작년에 기간제 남교사가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영상이 유포되자 분석이 달라졌다. 그제야 언론에서도 기간제 교사의 취약한 위치를 근본적 문제로 보도했다.
파렴치한 가해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은 상황이 그토록 나빴다는 걸 몰랐다는 변명은 그리 유효한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증언은 쌓여갔고 참담함은 커져갔다. 아무것도 우리를 치유할 수 없었다. 아니, 우리는 치유되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아갔다.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라 해도 그 가해를 묵인해온 침묵의 카르텔이 있었기에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상처받아왔다는 걸 모를 수는 없는 것이다.
경제적파이가 너무 적었고 작은 것에서 일정 부분을 강제로 취하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따랐다. 주변 강대국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입장도 고려하지 못했다. 주요 정책을 수정하는데 필요한 '교통정리'도 제대로 못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부당한 방법으로 자동차를 탈취한 뒤에, 지난 10년 동안 도로가 바뀌었다는 것도 모른 채, 과거에 해 왔던 방식으로 무모하게 돌진한 것과 흡사했다. 크고 작은 사고가 당연히 발생했고, 그것을 수습할 능력이 없었으며, 낡은 '채찍'으로 불만을 억누르는데 더 익숙했다. 2017년 3월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헌법질서의 유린과 한국 외교의 파산은 이러한 역주행의 결과다.
일반적으로 유해화학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자들이 주는 흔한 조언들이 있죠. 온통 쓰지 말고 피하라는 내용뿐인데요 건강상 별 문제가 없더라도 그런 자연주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즐겁게 사시는 분들,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살고자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큰 스트레스입니다. 이걸 피하니 저게 신경 쓰이고 저걸 피하니 또 다른 게 신경 쓰입니다. 그러다 보니 늘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어버리면 이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로 인한 폐해가 더 커집니다.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내 몸의 호르몬 밸런스가 깨어집니다.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걸 단순히 일당벌이로 보는 시선, 소외돼서 불쌍해진 존재들의 외로운 인정투쟁으로 보는 동정적인 태도 둘 다 동의하지 않는다. 혐오와 동정, 모두 자신의 분석틀에 대상을 맞추려는 태도다. 촛불을 든 자신은 신념에 의한 행동인데, 태극기를 든 노인은 일당 때문에, 혹은 삐뚤어진 사고 때문에 나온 좀비로 취급한다. 그 중장년, 노년들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혐오보다 노인혐오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혐오를 개념화하고,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자기방어용 무기들이 있지만, 노인들은 그걸 가지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잖아. 너는 그냥 너처럼 하면 돼." 그 답을 받고 나는 지하철 몇 대를 보내며 승강장 의자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자고 외모를 먼저 생각한 걸까. 여자를 외모로 평가하는 것에 그토록 분노하는 나면서, 왜 정작 스스로를 외모로 평가한 걸까. 외모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왜 '카피라이터'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니 낯선 직함 앞에서 늘 외모부터 떠올렸을까. 생각은 복잡해졌다.
광장을 일부 점유한 친박집회에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일차적으론 집회 참석자들의 거리낌없고 공격적인 말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이은 전쟁, 그리고 쿠데타는 누군가를 살육하고, 간첩으로 몰고, 감옥에 처넣는 적대의 정치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런 역사가, 이편에 서 있다면 온갖 불의와 불법과 부패를 저질러도 이편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인정되고, 이편에 서 있기만 하면 저편을 마음대로 유린해도 좋다는 믿음을 형성해온 것이다. 이편에 있기만 하면 당연히 면책특권이 발부된다는 믿음이 특검과 헌재를 겁박하는 말을 할 용기의 원천인 셈이다. 요컨대 이들의 목소리는 대한민국에 대한 저작권, 다시 말해 이 나라는 '우리'가 만들었고, 그 '우리'가 누구인가는 항상 '우리'가 정의한다는 주장에 터잡은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행동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합니다. 첫째, 프레임이 바뀌면 선택이 바뀌는 인지적 편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들은 주어진 사회적 규범과 규칙에 순응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람들은 도덕적 준거점을 가지고 있고, 여기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는 심리적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입니다. 갑질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아마도 세 가지가 모두 뒤섞여 있지 않겠습니까. 집에서는 좋은 부모, 좋은 자녀, 좋은 배우자인 이들도 갑을관계로 이루어진 환경에서는 달리 행동할 수 있습니다. 특히 꾸벅꾸벅 인사를 받는 자리인 직장 상사, 매장의 소비자, 한국 항공사의 승객의 위치에 서면, 갑처럼 행동하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기 쉽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에겐 평범한 일상에서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증오를 정의, 열린 마음, 친절함으로 대체할 수 있는 힘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하는 어마어마한 변화일 필요는 없다. 젠더를 떠나 우리는 인간으로서 서로를 향해 행동하는 방식으로 증오와 싸울 수 있다고 믿는다. 아주 중요한 순간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말이다. 친절함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고, 상대의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와 상관없이 동등한 사람으로서 상대에게 말할 용기를 갖는 것 - 그건 친절함이다.
어느 연도에서든 여성은 35세 이전에 최고임금을 경험합니다. 남성은 45세에서 55세 사이에 최고임금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야기하는 가장 큰 요인이 여성의 경력단절입니다. 교육과 결혼 전 경력이 역량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역량 투자 부족은 육아 이후 복귀하는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전체에 걸친 소득 격차는 더욱 심합니다. 월평균임금 50만원 차가 1년 동안 지속되면 600만 원입니다. 경력 초기를 제외하면 차이는 월 100만 원 이상으로 벌어집니다. 단순 계산해서 월 100만 원, 연간 1,200만 원 격차가 20년 동안 지속되면 약 2억 4,000만 원 차이가 납니다.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선택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어 역풍을 맞은 보건사회연구원의 인구포럼에서 제출된 저출산 대책의 한 대목이다. 이 대목 전에 언급한 비혼 여성의 고스펙이 저출산의 원인이니 스펙 쌓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저급해서 관심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하향선택결혼'이라는 대안에는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눈길은 갔다. 약간 반갑기까지 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바로 많은 여성들이 쉽게 '하향선택결혼'을 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섹슈얼리티 경험을 연재하면서 남성들에게 많은 댓글과 메세지를 받아왔다. 대표적인 메세지는 이런 것들이다.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 "필자가 그런 남자들만 만나고 너무 극단적인 경험만 해온 것 아니냐" "자극적인 소재로 인기몰이 하려는 거냐" "강간범을 신고 안 하고 뭐했어?! 신고해!" "남자도 비슷하게 힘들다, 너무 남자 여자 갈등을 부추기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