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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홍승희 블로그 목록

여자는 꽃이 아니라 인간이다

(0) 댓글 | 게시됨 2017년 03월 09일 | 00시 51분

나는 나의 섹슈얼리티 경험을 연재하면서 남성들에게 많은 댓글과 메세지를 받아왔다. 대표적인 메세지는 이런 것들이다.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 "필자가 그런 남자들만 만나고 너무 극단적인 경험만 해온 것 아니냐" "자극적인 소재로 인기몰이 하려는 거냐" "강간범을 신고 안 하고 뭐했어?! 신고해!" "남자도 비슷하게 힘들다, 너무 남자 여자 갈등을 부추기지 마라"고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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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채식주의자

(0) 댓글 | 게시됨 2017년 02월 28일 | 01시 54분

"그럼 뭘 먹고 살아요?" "치킨도 삼겹살도 못 먹어요? 어쩜."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요." "채식주의자 처음 봐요. 멋있어요."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면 대개 돌아오는 반응이다. 궁금하다. 고기를 안 먹는 게 어려운 일일까. 나는 채식이 쉬워서 한다. 고기를 안 먹으면 되니까. 채식은 대단한 일도, 유별난 것도 아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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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왜 작은 것에 분개할까?

(2) 댓글 | 게시됨 2017년 02월 15일 | 07시 08분

나는 작은 것에 분개하지 않았다

나는 김수영 시인을 좋아했다. "시까지도 잊어버리는 삶, 온 몸으로 쓰는 시!"라고 고함치는 맨 몸의 진정성이 좋았다. 그가 우산이 부서지도록 마누라를 때린 것을 시로 적어놓아도 특별히 부대끼지 않았다. 그의 시 중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에서 "나는 왜 작은 것에만 분개하는가"를 말하며, 시인은 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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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의 억압도 정치적인 것이다

(2) 댓글 | 게시됨 2017년 02월 01일 | 07시 49분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

동거하기 전, 우리는 자주 모텔에 갔다. 섹스할 곳이 없었으니까. 모텔은 비싸서 DVD방에서 황급히 일을 치르기도 했다.

어느 날 섹스 후 그가 말했다.
"우리, 이제 너무 자주 모텔에 오지 말자."
"응. 왜요?"
"사람들이 그렇게 볼 수도 있어. 혁명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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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삶아 먹고 산다

(0) 댓글 | 게시됨 2017년 01월 24일 | 01시 22분

얼마 전 전시 기획자가 전시회를 함께하자고 연락했다. 전시장을 빌릴 여력이 없는 젊은 작가에게 좋은 기회라면서, 제도권 전시 경력이 부족한 나의 이력에 도움이 될 거라고 덧붙였다.

젊음은 이력을 만드는 시간일까. 예술검열로 싸우는 시국에도 어떤 청년 예술가는 자본과 국가의 전시장 앞에 고개 숙여야 한다. 나의 '위치'를 염려해주는 사람들이 나이와 함께 늘어간다. 멘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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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집회에 데이트 하러 왔니?"

(2) 댓글 | 게시됨 2017년 01월 16일 | 01시 38분

집회에서 감춰야 하는 여성성

2008년, 열아홉 살이던 나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대학 졸업반이었다. 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하이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갔다. 나에게는 이게 평상복이었고,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광장에서 자주 마주치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는 데이트 하러 왔니?"

집회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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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잘하는 수컷으로 인정받고 싶니?

(2) 댓글 | 게시됨 2016년 12월 31일 | 06시 22분

열아홉 살 때였다. '남자다운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나는 세 살 연상의 남성스러운 학군단(학생군사교육단) 남자를 소개받았다. 그는 과묵하고, 듬직하고, 자상했다.

화이트데이였다. (찝찝한 첫 경험 이후 화이트데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모든 기념일이 싫다.) 어쨌든 그는 화이트데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줄 것이 있다며 나를 집으로 유인했다. 알았다. 우리가 섹스하겠구나. 뭘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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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기여하지 않기

(0) 댓글 | 게시됨 2016년 12월 29일 | 07시 23분

일 년 전,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소와 돼지를 가득 실은 차를 봤다. 돼지와 눈동자가 마주쳤다. 돼지의 눈망울은 탁한 내 눈과 다르게 또렷하고 맑았다. '인간은 동물을 열등하다고 했지만, 도대체 저들이 뭐가 열등하다는 건가?' 생각했다. 육식이 새삼스럽게 잔혹해졌다. '이제 돼지를 먹을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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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된 괴물들

(1) 댓글 | 게시됨 2016년 12월 27일 | 01시 52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은 보험액이 얼마인지, 유병언 아들이 동거하다가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은 안전에 불안을 느꼈다. 수학여행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 혹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죽음이기 때문일까. 그들의 죽음 앞에서 대한민국은 참 잔인했다. 타자의 고통은 일상적인 재난 방송이 된 걸까.

얼마 전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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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없는 폭력

(0) 댓글 | 게시됨 2016년 12월 03일 | 08시 00분

몇 개월 전 녹색당 전 청년운영위원장의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당신이 남고 내가 떠나는, 당신은 활개 치고 내가 피하는 이 세상이 너무 싫다." 녹색당을 떠난 피해자가 남긴 글이다. 나는 얼마 전에야 이번 사건을 알게 되었다.

최근 데이트폭력에 대해 대화하던 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피해여성의 고통에는 공감하지만, 그녀의 증언에 동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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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이상 효녀라고 부르지 말라

(0) 댓글 | 게시됨 2016년 11월 17일 | 01시 26분

올해 1월 내 삶에 해일이 밀려왔다. 위반부 한일협상 반대 예술행동에서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한 날부터다. 대한민국 효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오르내렸다.

관종, 종북이라는 비난은 익숙했다. 비난보다 칭찬이 불편했다. 나는 효녀도 아니고 그리 도덕적이지도 않고, 내키는 대로 막산다. 예술가라고 스스로 명명하지만, 예술가라는 존재도 의심한다. 끈기도, 인내심도 없다. 주의 산만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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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없다

(0) 댓글 | 게시됨 2016년 11월 03일 | 04시 05분

하루만에 7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탄원서를 함께해줬다.

문자가 왔다. "청각장애인 2급 ㅇㅇㅇ입니다. 말을 못하고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나를 시혜적으로 도와준 게 아니고, 동등한 시민으로 어깨를 걸어줬다.

중증 장애인 이동권 예산 삭감에 분노해 2008년 처음 촛불을 들었다.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깨를 걸기 위해. 중증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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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담한 세계가 부끄럽다

(0) 댓글 | 게시됨 2016년 10월 30일 | 03시 17분

고양이가 나무에 묶여 입을 벌리고 눈을 뜬 채로 숨진 사진을 봤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걸까. 부릅뜬 고양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인간은 지구의 다른 존재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걸까.

'최순실 모녀 스토리'가 언론과 SNS 타임라인, 술자리 안주거리로 도배되고 있다. 역술인에 대한 편견, 여성에 대한 혐오가 득실거리는 이 나라에서 '무당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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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거대한 감옥 같아요

(8) 댓글 | 게시됨 2016년 10월 24일 | 04시 57분

재판 받고 나왔어요. 검찰이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네요. 귀를 의심했어요.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나네요.

이번 검찰 구형도 여느 때처럼 벌금형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징역이라는 말에 놀랐던 것 같아요. 두렵지 않지만,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을지 혼란스러웠어요. 다행히 많은 분이 조언을 주셨습니다. 응원해주시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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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체

(1) 댓글 | 게시됨 2016년 10월 19일 | 08시 30분

공항에 부모님이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멀리서 발견한 뒷모습.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 아빠의 등이 허리를 굽힌 구름같이 포근해 보인다. 시간이 흘렀다. 삶의 시간이.

엄마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나를 안아줬다.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엄마가 피곤하게 졸고 있다. "엄마, 내 무릎에 누워서 자." 엄마는 몇 분 무릎에 누웠다가 일어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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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온전한 삶이 아닌가?

(1) 댓글 | 게시됨 2016년 10월 17일 | 04시 43분

한국으로 잠시 여행을 왔다. 서늘하고 청량한 밤공기, 남색 하늘, 은은한 보름달. 지구 그림자가 걷히고 달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옷 집회. 5개월 전 아팠던 그날처럼,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승은언니, 해달오빠, 아라와. 그러나 지금은 우리와 함께 걷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좁은 독방에 있다가 쇠고랑을 풀고자 모였다. 상처받지 않고, 분노하기 위해. 고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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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의 변명

(1) 댓글 | 게시됨 2016년 10월 11일 | 23시 52분

"살인마." "사회정의를 말하면서 살인을 하다니."

지난 5월, 낙태수술 증언 후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빠에게도 메시지가 왔다. 무엇이 자랑이냐며 타박을 했다. 왜 그런 걸 굳이 올리느냐고. 아빠에게 말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너무 많은 여성이 아직도 혼자 감옥에 갇혀있는 고통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고통을 없애지 못하더라도 숨 쉴 구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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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유령

(5) 댓글 | 게시됨 2016년 08월 06일 | 04시 41분

아빠가 발을 동동 구르며 연락이 왔다. 너 당장 종북 아니라고 사람들에게 말해. 너 종북 아니잖니. 하면서.
이런 사람도 있었다. 당신, 정치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종북이 아니라고 해명해 보게. (그는 교수고, 더민주당에서 활동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는 좋아하던 사람이 발을 동동 구르며 연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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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을 나오며

(28) 댓글 | 게시됨 2016년 08월 04일 | 01시 56분

22살, 인터넷에서 반값등록금 집회를 했던 내 사진과 일본 야동배우의 몸과 합성해 성기에 유심칩을 넣고 있는 이미지, 항문이 훤히 보이는 이미지가 보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내 몸은 벗겨지고 난도질당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손이 떨렸다. 나는 괜찮다고, 미친놈들이라고 여겼다. 여성에 대한 성적 조롱은 흔한 문화였으니까.

차라리 종북 빨갱이라고 하는 게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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