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원작의 제목을 차용했다." '이름 없는 건축'이 제목에 내비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은유적인 태도는 아마 고(故) 백남준이 생전에 들었어도 꽤 흡족해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박근혜정부의 '문화융성'은 검열의 창궐이었다. 문화기관은 전문성과 무관한 친정부 인사의 낙하산 일색으로 채워졌다. 경쟁사회에서 공모(公募)는 거짓 공정성의 전형적인 방식이 되기 십상이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밀실에서 권력의 뜻을 관철하는 알리바이 구실을 한다. 당사자든 국외자든 저항하지 않고 실력이나 운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봉건군주제식 통치술을 구사함으로써 민주공화제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정부의 권력체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생물학적 아버지인 박정희에 대한 비판에 민감했다.
신경림의 '농무'라는 유명한 시 중에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미소지니라고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울분과 저항의 장에서조차 여성을 몰아내려는 시인의 잘못된 여성관이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이런 작품을 쓴 시인은 지금이라도 모든 여성들 앞에서 자기반성을 해야 할까? '농무'가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는 집어치우고 집사람을 데리고 신명나게 농무를 추는 것으로 표현되었다면 더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까?
수려한 채색과 친숙한 도상을 뒤집어쓰고 관객의 호응을 받는 MBW류의 대중미술 전시에 나는 왜 인색한 평점을 주려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블록버스터 미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 눈높이에 맞추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 관객을 알량한 왕 대접 해준 대가로, 이런 영화와 미술 전시는 거금을 벌어들인다. 상업적 대박을 꼭 비난의 이유인 양 지목할 순 없을 게다. 여기에 블록버스터 영화와 블록버스터 미술 간의 미묘한 차이점이 발생한다.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는 주류 미술을 향한 대중의 위화감을 자극해서 반사이익을 얻는다.
조영남의 대작 문제를 미학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무리가 뒤따른다. 실제로 조영남을 앤디 워홀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과장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앤디 워홀은 스스로 전형적인 예술가의 창작행위를 표방하기보단 오히려 산업디자이너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디자이너의 창작행위는 근본적으로 설계자로서의 역할로 충족된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품을 공장에서 생산하듯 제작했다. 조영남의 대작행위가 비공개적인 반면 앤디 워홀이 공개적이었다는 평가는 그런 점에서 일리가 있다.
때려 부순 건 당연히 잘못한 일이지만 작가가, 그것도 도발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말하고자 했던 작가가 그를 두고 처벌이나 책임 운운하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는 소견이다. 본인의 메시지를 스스로 희석시키는 것처럼도 보인다. 한편으로는 일베를 향한 사회의 강력한 우려를 고려할 때 그 정도 반발은 예상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걸 때려부수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 구성원들 간에 관용이 가득했다면 애초 일베는 탄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모델들과 새로운 촬영소품 및 촬영/편집 기법을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이번에는 야외에서 촬영해볼까?', '이번에는 빛이 반사되지 않는 검은색 천을 배경으로 써볼까?', '프로젝터로 모델의 몸에 빛을 쏘아 보는 건 어떨까?', '물과 반짝이 가루를 함께 사용하면 어떤 효과가 나는지 테스트해볼까?' 이러한 것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제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들이고 다 실제로 실행했던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조영남의 화투 그림은 예술이 아니다. 관행에 따른 손쉬운 돈벌이 수단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구매자 앞에서 물감이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캔버스 앞에 앉아서 작업 중인 척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코웃음이 나온다. 조영남은 화가인 척 연기하고 쇼맨십으로 그림을 파는 사업가였던 셈인데, 그조차도 잘 못했다. 무엇보다 상도덕이 없었고 양심이 없었다. 작품당 겨우 10만원을 주며 화가의 노동력을 착취했으니 말이다. 조영남의 변명과 그를 두둔하는 진중권의 글을 읽고 있으면 누군가의 지적처럼 '미술계는 사기가 관행'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숫자가 폭포처럼 내려오는 광경은 행사 기간 동안 ICC 타워가 예술에게 '점령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만했죠. 이번 아트 바젤 홍콩 중 장족의 발전이 있던 세션을 꼽는다면 영상 부분을 꼽겠습니다. 원래 짧은 영상들을 모아 보여주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올해에는 영상 부분 큐레이터인 리젠화와 이야기하며 5분 길이의 영상까지도 본 프로그램에 포함시켰죠.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의 의미가 깊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설치한 대규모 작업 이후에 갤러리에서 여는 첫 전시회다. 한국을 오가면서 유심히 본 연꽃을 모티브 삼아 작업을 진행했다. 자연과 스스로 결합하며 평화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공유하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내 전시에서 미학적인 면은 굉장히 중요한데 예전 작업에 비해 이번에는 관능적인 면이 더해졌다.
어시스턴트 한 명 없이 자신의 눈과 감각을 믿고 손으로 뽑아내는 그의 흑백 사진은 사이즈가 큰 것이 가로로 두 뼘, 작은 것은 엽서와 크기가 비슷하다. 어떤 땐 새끼손톱 조각보다 조그마한 피사체는 눈과 사진 사이의 공간을 극도로 좁히는데, 놀랍게도 제 형태와 명암을 온전히 갖춘 까닭에 그 치밀함과 세밀함에 대한 경의와 더불어 숨이 멎는 경탄마저 하게 된다.
우리가 하는 디자인은 언제나 실험적이어야 합니다. 실험적인 디자인은 사회적, 기술적인 발전을 이끌며 형국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이란 보기 좋은 겉모습에 국한하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는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즐기세요. 작은 시도가 세계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니까요.
영국 출신의 스타 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는 "아름다움은 자연으로부터 오며, 우주는 언제나 똑같은 것을 디자인하지 않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했다. 또한 "디자이너의 역할은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을 놀라게 하고 사람들에게 더 나은 것을 알게 해주고 생각을 도우며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새로운 자원을 어떻게 찾느냐는 방청객의 질문에는 장난스런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섞어보세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이죠. 혼합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합니다."
20세기 중반부터 활개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만연하던 요하네스버그에서 인권 변호사의 아들로 보낸 유년 시절은 그에게 항거할 수 없는 시대적 부조리로 각인되며 마치 일기를 쓰듯 작업 곳곳에 스며드는 원천이 됐다. 회화, 연극, 필름 등 여러 분야를 거쳐 안착한 분야는 목탄 드로잉. 생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고 그린 후 수정이 가능해 우리 삶의 불확실성과 임시성을 잘 보여주는 매체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