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닥치자 저소득층부터 무너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용수(가명·49)씨는 8년 전까지만 해도 수제구두를 만드는 제화공이었다. 하지만 수제구두를 찾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졌고, 그 이후에는 건설 현장의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다.
매일 새벽 5시에 직업소개소를 찾아가지만 한달에 많아야 10~12일밖에 일을 하지 못한다. 일당은 10만원이지만 소개비 만원과 차비 등을 빼면 8만원 정도가 남는다. 한달 100만원을 벌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저성장에 구조조정까지 겹치면서 저소득 가구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빨래를 널고 있다.
한씨는 지난해부터 일자리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달 내내 일감을 못 받아서, 고시원비는 사정을 이야기해 미루고 방 안에서 반찬도 없이 밥만 먹고 지내기도 했다”며 “건설 일이 너무 없을 때는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는데, 식당 일은 일당이 반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서도 보름 동안 직업소개소에 나갔지만 일감을 받은 것은 달랑 사흘이었다. 경기침체가 점점 심화하고 제조업 분야 구조조정, 건설업 불황까지 겹치면서 저소득층부터 소득 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저소득층 일자리가 몰려 있는 건설 현장이나 영세 자영업의 임시·일용직, 영세 하청·중소기업의 고용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지난해 1~9월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전년 대비 무려 13.37%가 감소했다. 정부로부터 받는 각종 연금이나 수당(이전소득)을 합친 이후 소득인 처분가능소득도 10.35%가 줄어든 것으로 나온다.
이런 감소 폭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큰 것이다. 지난해 저소득층의 소득 타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뛰어넘는다는 의미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고용 시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 위축이 뚜렷한데다 저소득 가구의 주된 근로 형태인 일용직 일자리가 빠르게 줄고 있다”며 “이런 추세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올해도 상황이 더 나빠질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득 불평등 지표도 악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소득 5분위 배율’이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전년보다 악화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반적인 경기 부진이 소득 분배 악화를 이끄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상위 20%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하위 20%의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높을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다.
5분위 배율은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악화 추세를 보여왔으나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는 기초연금 도입 효과 등이 반영되면서 2010년 5.66배에서 2015년 5.11배로 떨어지는 등 개선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런 개선세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역전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실장은 “경기변동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계층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속해 있는 임시·일용직과 청년실업자 및 중고령층”이라며 “이들에 대한 일자리 공급과 소득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