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헌법 제13조 제2항) 재산권을 박탈하는 소급입법을 금지하고 있다. 만약 최씨 일가가 과거 40여 년에 걸쳐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을 환수하려면 소급입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바로 이 헌법조항에 때문에 위헌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박탈을 금지하는 헌법적 원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므로 이 원칙보다 더 중요한 공적 가치나 이익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재산권을 박탈하는 소급입법은 허용될 수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로의 꿈이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었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꿈을 포기했다는 진심이 되레 사랑을 무너뜨린다. 본래의 진심은 속절없을 뿐이다. 〈라라랜드〉의 결말이 가슴을 저미는 건 그래서다. 우연히 들어선 클럽에서 오래전 자신이 응원하던 꿈의 징표를 보게 된 미아의 얼굴에서, 클럽의 무대에 올라 객석에 앉아 있는 미아를 발견하고 잠시 말문을 잊게 되는 세바스찬의 얼굴에서 지나간 계절이 떠오른다.
현행 우리 헌법은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자, 즉 최고득표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있다. 개헌 없이 정치권의 타협으로 선거법 개정에 성공하여 결선투표제로 선거를 치르더라도, 결국 1위 득표자와 2위 득표자간의 타협이 유지되기 힘들어 분쟁으로 가거나 선거승패를 수용할 수 없는 유권자간 분쟁으로 위헌소송시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분쟁과 송사의 과정 속에서 야기될 엄청난 국정공백과 혼란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의 정당성과 그 실현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1000만 촛불의 기적은 한국 민주주의의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광장민주주의'가 아직 '현장민주주의'에 도달하지 못한 현실을 처연하게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광장'에서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루었지만, 정작 실제 삶이 영위되는 '현장'에서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민주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얼마나 민주적인 제도와 문화가 실행되고 있는가. 광장에서 당당하게 대통령을 비판하듯이, 삶의 현장에서 교장, 총장, 사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가. 광장민주주의와 현장민주주의는 여전히 비대칭적으로 괴리되어 있다.
시민혁명의 운명은 다음 대통령에게 달렸다. 국가 개조의 비전과 실천 의지를 가진 자만이 다음 대통령에 나설 자격이 있다. 비전도 전략도 없는 사람이 정치공학으로 대통령이 되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이다. 대선후보들은 광장의 요구가 초현실적 비리와 부정에 가담 또는 용인한 박 대통령의 퇴진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광장의 요구는 그런 초상식적인 재앙의 토양이 된 낡은 체제와의 결별이다.
얼마 전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뉴스를 듣고, 사람들은 말했다. "조류독감 유행이래, 조심하자." "치킨은 그래도 먹을 거야."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대." "대기업은 좋다는데?" 왕왕 한 말들 가운데, 땅속에 파묻힌 2500만개의 심장은 없다.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사람도 먹고살기 힘드니까, 내 오늘이 고통스러우니까, 인간의 존엄이 우선이니까. 2500만번의 비겁이다. 살아생전 햇볕 한 줌 받지 못한 존재들이 처음 햇빛을 만난 날 땅속에 묻혔다. 인간을 위해서, 인간 때문에.
'최순실 은닉 재산= 박근혜 차명 재산'이라는 의혹 속에 '전두환 추징법'에 따라 박근혜씨의 재산은 환수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최순실씨 재산 환수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의 경우는 대상이 공무원으로 한정돼 있다는 점입니다. 최순실씨는 공무원이 아니기에 적용이 어렵고 재산 증식의 불법성에 대한 증거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사적인 관계로 축적된 재산인 경우에는 범죄 입증의 책임이 엄격하게 적용되기에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형이 워낙 좋아하는 밴드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콘서트를 열었었는데, 형 몰래 티켓을 예매해 깜짝 선물한 적이 있다. 1부 무대가 끝나고 밴드가 옷을 갈아 입는 동안 빈 무대를 대신 채워줄 초대 가수가 나왔는데, 시간을 더 때워야 했는지 관객들을 대상으로 말을 걸다 우리를 발견하고선, 아, 여기 또 불쌍한 분들이 계시네요, 이런 날 남자 둘이 콘서트장까지 오시고, 이 불쌍한 두 남성분께 위로의 박수 부탁 드립니다, 라고 말하며 친히 우리를 손가락으로 콕 콕 찍어 주었다. 당연히 그 조롱의 대상은 게이 커플이 아니라 솔로인 두 이성애자 남자였겠지만, 그래서 더 슬프고도 분한 2부 공연이었다.
이 글을 통해 고백하는데, 나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면서도 대선 투표에서 박근혜를 찍지 않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나는 박근혜 후보의 검증 책임까지 맡고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집권을 하면 나라가 어찌될까 심각하게 걱정을 했다. 오죽하면 그 당시 '박근혜와 최태민과의 관계가 드러나면 온 국민이 경악할 것이고, 박근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을 것'이라고 얘기했겠는가. 불행히도 이 정권은 내 예상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당선 후 이웃주민에게 선물로 받은 진돗개 새롬이, 희망이를 청와대로 데려가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새누리당과의 회의에서 비선실세 논란에 대해 '청와대 실세끼리 다툰다고 하는데, 진짜 실세는 진돗개'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이렇듯 알려진 '진돗개 사랑'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 중에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행보를 보인 사례는 없다. 오히려 2016년 여름에는 '반려동물 산업'을 육성해야 할 신산업으로 규정하고 동물경매업을 신설하고 반려동물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다고 발표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구술 면접은 각종 인문학 독서, 토의토론, 스피치 훈련을 받은(주로 사교육을 통해) 학생이 유리하고, 학종은 생활기록부에 다양한 볼거리, 즉 스펙을 많이 넣을 수 있는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들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공격이 이어지다 보니 학종을 부잣집 아이들이 시험이라는 관문을 피해 쉽게 명문대학 가는 지름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시험 쳐서 대학가는 방식으로는 가난한 학생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사교육을 못 받으면 감당할 수 없는 방법으로 대입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날 위해 하얀 여자가 되어줄 수 없어?" 내게 황당한 부탁을 했던 남자가 있었다. 가무잡잡 태닝 한 피부에 밝게 염색한 머리, 짙고 얼룩진 눈 화장을 한 내게 하얀 여자가 되어달라니 순간 엄청난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가 말하는 '하얀'이란 태닝하지 않은 피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얗고 투명하게 변하길 바랐던 것은 내 성향 그 자체였다. 나의 타투, 화장, 옷차림에서 드러나는 '기 센 여자'의 기호들이 몹시 불편했던 것이다. 교정한다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호소였달까.
제가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시도한 일은 오로지 자신의 체험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말했으나 잊혔던 목소리를 그저 복원하고, 세상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내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목소리만이 진짜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할머니들을 둘러싼 일임에도 위안부문제가 당사자의 일부를 점점 제쳐놓고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침묵하게 된 분들의 목소리도 일단 들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들 간의 생각이 다르다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다시 생각해 보자, 오로지 그것뿐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그것도 개봉시기에 맞춰 최신 영화를 해설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아주 오래 전 첫 크리스마스 선물과 비견될 만큼의 사건이었다. 다른 관객 눈치 봐 가면서 동행자에게 설명을 부탁하지 않아도 되었고 내 걱정하느라 화면에 몰입하지 못하는 동행자에게 미안한 맘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서로가 민망해서 극도로 제한받고 있었던 야한 장면에 대한 접근성이 확보되었다는 것은 작품의 이해도와 나의 만족도에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 주었다.
블랙 컨슈머란 단어가 생긴 지도 몇 년 되었는데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일선의 직원들에게 그 고통을 감내하라고 강요하고 있으며 방어권은 주지 않고 블랙 컨슈머들이 요구하란 대로 다 들어주는 식으로 조용히 잠재우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러니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들이 줄어들 리가 있나. 오히려 더 장려하는 쪽으로 인센티브가 형성되어 '진상짓'을 '스마트한 소비'라고 포장하는 족속들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결국 현장의 직원에게 자기 방어권이 없다는 점이 이번 일의 가장 큰 문제다. 만약 그러한 일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 권리를 가지고 회사에서 책임을 져준다면 어느 직원이 거기서 단호하게 나서지 않겠는가?
보수색이 강한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노 대통령에게 소신 발언이나 직언을 하는 경우를 청와대 근무하는 2년 동안 저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1년이 지나기 전에 우리 사회 내 보수진영에서 "반기문이 변절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언론을 통해서도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된 1990년의 용산미군기지 이전 양해각서 체결 당시 외교부 북미국장으로 협상 대표였던 반기문 보좌관은 그 당시 어떤 소신으로 그 양해각서에 서명했는지를 설명조차 못하고 "위에서 시키니까 했다"며 책임을 모면하는 발언만 했습니다. 절대 책임을 지지 않는 그 처신이 바로 '기름 장어'라는 별칭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시를 학문으로만 접근하는 사람들이 보통 랩을 시라고 보는 의견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영국에서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그때 랩은 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어떤 학자에게 어떤 랩 가사를 읽어봤냐고 물어봤더니, 랩은 하나도 들어본 적이 없다더라. 반면 나는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으며 많은 고민을 했고, 그에 따라 랩 역시 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전하는 역할의 많은 부분을 시와 노래가 담당해 왔다."
트럼프의 도전은 단순히 한미동맹 재조정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미 2009년 이래 한국의 보수가 다짐해온 안보는 물론 경제와 가치의 측면에서도 미국과 일체화되는 전략동맹의 기조는 무너졌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가치를 수출한다거나 자유무역의 관리자가 되려는 의지가 없다. 게다가 국제질서의 관리자라는 미국의 신뢰성이 아니라, 적이든 동맹이든 상대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의 기술, 특히 협상의 판 자체를 깰 수도 있다는 예측 불가능성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시가지에서 이런 폭발음을 들은 것은 처음이라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평범한 토요일이 시작되었다(여기는 금요일 토요일이 주말인데,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은 정상근무한다). 7시반 출근을 하고, 전체 회진을 돌고, 정규 수술을 시작한다. 낮 12시 반, 여전히 응급실은 잠잠하다.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이송할 만큼 크게 다친 환자가 없거나, 아니면 이송되기도 전에 환자가 모두 사망했거나. 그저 전자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