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에서 진행한 사찰의 목적은 지금까지 좌파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해 왔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했다. 물론 좌파를 발본색원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넌센스다. 권력을 잡았으면 화합을 해서 다 끌고 가야지, 좌파를 발본색원 하겠다며 사찰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에 바탕을 둔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그러나 그것도 시늉에 불과했으며 사실은 다른 짓을 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자신들이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찰을 활용했던 것이다.
검찰은 박근혜가 모든 사건을 공모한 '주범'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래서 탄핵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특히 새누리당 129명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박근혜의 헌정질서 유린과 탄핵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유권자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국회에서 탄핵 안건은 '무기명 투표'를 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이 사건은 '헌법을 지키는' 싸움이기에, 모든 국회의원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힐 의무가 있고, 모든 유권자는 국회의원에게 입장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나의 신은 항상 내 삶에 깊게 관여했다. 셔플로 설정해 놓은 그때마다 플레이어에선 항상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것만 같은 노래들이 재생됐다. 나의 신은 이별의 아픔에 지쳐 자괴감에 빠져 괴로울 때면 '너의 눈물은 알아서 마를 거야'('Tears Dry on their own', 에이미 와인하우스)라고 말해줬다. 그 신은 어느 곳에나 언제나 있다. 어느 날 아침 숙취에 절어 있을 때면 스타벅스의 커피숍의 스피커를 통해 '정신 차려. 가끔은 모든 게 엉망일 때도 있는 거야'('Hold on. Sometimes everything is wrong', 알이엠)라고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박근혜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결의가 하루 속히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박근혜의 대통령직 직무수행을 정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주권자로부터 정치적 사형선고를 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려 할 뿐 아니라, 친일미화 국정교과서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버스를 모는 운전수가 제 정신이 아닐 때에는 그 운전수에게서 버스의 핸들을 즉각 빼앗아야 한다.
오바마의 정책을 상당 부분 계승했을 힐러리가 당선되었다면 사드 배치를 번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국제법상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고 박근혜 정부도 정당성도 잃으면서 기존 정책을 고수해야 하는 부담이 줄었다. 그런데 정부는 급변하는 정세에 대한 관찰과 분석없이 트럼프 당선 다음날 바로 사드 배치를 기존의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서둘러 밝혔다.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성급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의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란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닌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를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당시 헌재는 측근 비리에 대해 "대통령이 지시·방조했다거나 불법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2004년 헌재의 해석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적용하면 헌재의 심판을 가볍게 통과할 정도입니다. 가장 큰 사유가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적인 개입입니다.
헌재소장이 내년 1월31일에 임기가 만료된다. 헌재는 당연히 이 시점을 1차 선고기한으로 삼아야 한다. 만에 하나 모든 정성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기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내년3월15일이 마지막 기한이다. 국민의 명령이다. 아무리 늦어도 이때까지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탄핵소추안이 헌재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국회와 야3당은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종료시점이 탄핵심판의 시간적 마지노선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국회 역시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지금부터 단 하루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탄핵소추를 최대한 서둘러야 맞다.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문제를 사소하게 만드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소한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집회 현장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을 '년'으로 욕하지 말라는 발언이 집회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거라는 식의 글을 당당히 올릴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발언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순진한 태도는 자신이 누리는 권력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의 오만함일 뿐이다. 당신들이 '조개'라고 '사소하다'고 외면해왔던 문제는 여전히 나와 내 주위 사람을 떨게 하는 일상적 공포이다.
정치적 의사를 표시한 스티커는 '민폐'나 '무개념' 행동이 되는가? 의경들의 고충은 생각도 못한? 트위터에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저것은 "대자보를 지저분하다고 떼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째서 목소리를 시위대가 나서서 자진 철거하는지? 백도라지님의 말처럼 우리가 시위에 나가서 맞닥뜨리는 의경이나 방패, 물대포 등은 공권력이 육화한 것이다.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의 책임을 엄밀하게는 그 자리에 없었던 강신명에게 묻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공권력으로서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고충을 헤아리는 것은 행정적 책임자를 사적으로 해석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Bae Bae'의 경우는 더 심각한데, 백인 혹은 백인으로 여겨지는 외국인 여성들이 거의 빅뱅의 성희롱 대상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자기를 끌어안고 얼굴에 하얀 액체를 뿌려대는 빅뱅을 밀쳐내지 않는 이 여성들은, 뮤직비디오 막바지에서는 자기 치마를 들추는 빅뱅을 웃으며 놀아주기에 이른다. 제작진은 빅뱅, 혹은 제작자들의 욕망이 마치 여성들이 진짜 가지고 있는 욕망인 것처럼 그린다.
만에 하나 기각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더라도 야당은 탄핵에 착수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야당이 탄핵절차에 착수했는데 새누리당이 반대해서 부결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국민들은 야당과 함께 계속 투쟁을 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야당이 시작도 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을 가지지 못 한다. 야당에게마저 외면당하고 실망하면 그때는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주 촛불을 들고 나오는 상황, 심지어 검찰에서마저 대통령을 범죄자로 판단하는 상황이라면 야당은 국민들의 힘을 믿고, 국민들과 함께 탄핵에 나서는 것이 맞다. 그것은 야당의 의무다.
모든 것은 헌법 제1조가 무너진 것에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왕조국가였고, 비선공화국이었다. 자본공화국이었고, 관료공화국이었고, 기득권공화국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시스템은 전혀 헌법 제1조와 무관하게 설계되었고 운영되어 왔다.
많은 군필자들은 자신들의 빼앗긴 세월을 두고 어딘가에서 보상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자신들 주변의 수많은 여성들과 소수의 면제자들을 보면서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남성주의의 솔깃한 이간질이 가세한다. 하지만 남자들이 빼앗긴 것을 여성과 면제자들이 가져간 것이 절대 아니다. 남자들은 오히려 이중으로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징병제가 세계 유례 없는 수준으로 가혹하다는 것을 따져보면, 군 복무 중에 부모에게 손을 벌려서 돈을 써야 하는 입장인 것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가족 차원에서는 삼중, 사중의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솔직히 나도 자신 없다. 만약 내가 서울대를 졸업하고 검찰에 들어가 부잣집 딸과 결혼할 수 있다면, 나름 정의의 검을 휘두르며 기업·정치인들을 줄줄이 기소할 수 있다면, 나의 지조와 신념은 돈과 권력 앞에 눈 녹듯 녹아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두렵다. 16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한경쟁에 내몰려 끝내 그 승자독식의 법칙을 내면화하고 마는 학생들이. 오늘도 집, 학교, 학원을 오가며 성공만을 위해 질주하고 있을 젊은이들이. 강용석을 존경하고 이희진에 열광했던 그대들이.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퇴진'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는 한편으로, 일각에선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분노와 조롱의 한편에는 소수자에 대한 비하/혐오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정서의 한 가운데에는 '발달장애/정신장애'에 대한 혐오도 존재한다. 특히, 소위 '심리학자'라는 자들이 박근혜를 정신장애 또는 발달장애라고 단정지으며, 자신의 장애혐오 정서를 여과 없이 노출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문제적이다.
우리가 맞서고 있는 상대는, 지배와 억압이 아니라 간접적인 피해,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거짓과 잘못 사용된 권력이다. 군사정권의 폭압이 아니라, 부드러워 보였던 공주의 무능에 대한 분노다. 그렇다면 당연히 시위 양상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분노는 꼭 폭력으로만 표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박근혜가 두려워 하는 건 힘이 아니라 숫자일 터. 여성, 아이, 혹은 장애를 가진, 힘에서 밀리는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30년 후의 시위"다워지지 않을까. 가진 힘을 쓰지 않는 영웅들이 있는 데모.
북부흰코뿔소는 흰코뿔소의 두 아종 중 하나로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2015년 11월22일, 미국 샌디에이고 사파리 공원에 살던 41살 암컷 '놀라'의 죽음 이후 오직 세 마리만 세상에 남았다. 케냐 올페제타(Ol Pejeta)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42살 수컷 '수단', 암컷 '나진'과 '파투'가 마지막 남은 북부흰코뿔소이다. 이들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밀렵 때문에 24시간 무장 경비원의 보호를 받는다.
현재 논의가 대통령 책임을 묻는 방식에 집중되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다. 비서실장 스스로 실토했듯이 봉건시대에나 가능한 일이 어떻게 21세기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었을까? 최소한의 분별력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는 대통령이 어떻게 현재의 대통령까지 오를 수 있었고, 이제서야 민낯이 드러났을까라는 질문이다. 최씨 비선실세 게이트가 가능할 수 있었던 책임의 한 축은 새누리당이고, 다른 한 축은 검찰이다.
구글 번역기가 믿기 어려울 만큼 장족의 발전을 했다. 한글 이메일도 한번 영문으로 번역해봤다. 된다. 외국업체가 보내온 영문 이메일도 한글로 돌려봤다. 거의 이해된다. 정말 예전엔 30-40%라면 이젠 80-90%까지 온 것 같다. 놀랍다. 그리고 고맙다, 구글. 미국, 실리콘 밸리의 저력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러면 여기서 이제 영어공부는 안 해도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아니면 번역가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