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불가론 등을 운운하는 야권 내 주류 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박근혜-최순실-우병우 국정 농단 사건과, 노무현의 '선거 개입' 논란이, 당신들의 눈에는 동등하게 보이는가? 전자는 두말할 나위 없는 국정 농단이다. 최대한 빨리 그들을 처벌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후계자에게 합법적으로 넘겨야 하는 사안이다. 반면 후자는 '지금과는 다른 민주주의'를 꿈꾸던 이상주의자가 대통령 당선 이후 새 당을 만들더니 기존의 민주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 외 보수 세력을 자극하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니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뉴스를 열심히 볼 거다. 그동안 헌재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시간을 끌거나, '나쁘지만 (헌법재판관의) 의결정족수가 모자라 금지하지 못한다'는 식의 단호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는 걸 몇 차례 봤다. 하야든 2선 후퇴든 박 대통령이 뭔가를 결정하지 않는 한, 탄핵 소리는 더 커질 거다. 아직 먼 일일지 모르겠지만 광화문 집회가 (헌재가 있는) '가회동 집회'로 바뀌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7시간의 미스터리를 둘러싸고 온갖 루머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통령이 그 시간 동안 성형시술을 받았다는 루머가 입에 많이 오르내리자 그 동안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청와대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유언비어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말로요. 그럼 또 다른 루머가 입에 많이 오르면 또 다시 청와대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그렇다, 아니다 식의 답변을 내놓으면서 시간만 질질 끌 셈인가요? 마치 스무고개 게임을 해서 답을 알아맞춰 가는 식으로요?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루머들이 돌아다닌 후에야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런지요.
'사용후핵연료'란 원전에서 연료로 사용된 후 남은 폐기물인데요. 높은 열과 강한 방사선을 내뿜고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최소 10만년 이상 차폐시켜 안전하게 보관해야 합니다. 부산과 울산의 경계에 위치한 고리 원전 3호기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화재가 발생할 시 평균 9천㎢, 최대 국토의 50%가 넘는 5만4천㎢의 지역이 피해를 입게 되고, 피난 인구는 평균 500만에서 최대 약 2,430만에 이른다. 이처럼 위험한 물질의 처리 방법과 장소를 아직 찾지 못한 우리나라는 지난 30년간 발생한 핵 쓰레기를 원전 내 수조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그간의 행적을 보면 그녀가 사임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걸 기대하기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처럼 난망이다. 더 많은 추문의 보도와 수백만 시민의 집결에도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남은 임기 동안 자발적 유폐를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대가가 너무나 가혹하지만 후회는 늘 늦게 오는 법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사면을 전제로 한 사임을 박근혜에게 최후로 통첩하고, 박근혜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시 즉각 탄핵절차에 돌입하는 것이 최선일 듯 싶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검찰의 대통령조사방침을 접하면서 과거 박지원대변인의 명언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다. 박근혜의 검찰이 사상최초로 현직대통령을 조사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정치검찰이 국민검찰로 바뀌지 않는다. 국정원댓글개입 수사, 십상시 수사, 성완종 리스트 수사 등 숱한 대형국면마다 진실과 정의를 왜곡하며 국민이 준 검찰권을 남용해온 부역죄가 덜어지지 않는다. 만약 지난 1주 동안 광장참여가 떨어지고 정권지지가 반등했다고 가정해보라. 검찰조사결과는 보나마나 '역시나'였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처음에는 트럼프에게 표를 준 이들이 참을 수 없이 미웠다. 유색인종과 여성들마저도 많은 수가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그런데 이제는 왜 이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오랫동안 미국 사회에서 소외되어 왔다. 미국 경제가 나아졌어도 이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했다. 세계화에 따라 미국의 제조업 분야가 노동력이 싼 나라들로 생산기반을 옮기면서 교육 수준이 낮은 비숙련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진보층은 그것이 세계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만 했다. 그런데 사실일지언정 그런 말은 그들에게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대다수가 트럼프의 '인종적 편견과 여성혐오'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건 자신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가진 자들만의 놀이로 전락한 정치(금권정치)보다는 덜 중요한 이슈라고 여겼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간 언론을 포함한 주류 세력이 홍수처럼 쏟아낸 트럼프에 대한 비난과 공격은 트럼프의 '인종적 편견과 여성혐오'에만 집중되었으니, 이들은 모두 헛장사를 한 셈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하는 가치 판단에서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엘리트주의적 편향성에 빠져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한반도정책과 한·미 동맹에 관한 인식도 한국이 알아서 자위책을 쓰거나 필요하면 미국의 군사적 억지력을 현금으로 "구매"하라는 것이다. 돈벌이에 대한 동물적 감각을 갖고 부동산으로 거만금을 축적한 철저한 장사꾼의 논리다. 그래서 트럼피즘(Trumpism)에 대한 대책의 출발점은 세밀한 트럼프 연구다. 트럼프 정부의 출범으로 한국 안에서는 핵무장론이 다시 무성할 것이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한다. 미국 외교는 트럼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후보 트럼프와 대통령 트럼프는 같을 수 없다.
트럼프의 등장은 분명히 한반도 질서를 재조정하는 계기다. 언제나 위기는 기회다. 미국이 국내문제에 집중하면, 동북아시아의 상대적 자율성이 생긴다. 당연히 한국 정부가 기회를 포착해서 변화된 정세를 활용할 때다. 냉전 해체라는 어수선한 환경에서 북방정책을 추진했던 노태우 정부처럼 말이다. 박근혜 정부? 전략도 없고 실력도 없는데, 이제는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기회를 살리려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정부가 등장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몰려올 때는 가능한 수준에서 시야를 확보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트럼프의 등장은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필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여야영수회담은 1987년 6월 항쟁 중에 역시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의 총재 김영삼이 신군부의 독재자 전두환과 가졌던 회담. 예전에 박정희랑 회담을 하다 털린 기억 때문인지(쿨럭;) 김영삼은 전두환을 만나러 갈 때는 각오를 단단히 한 듯 싶었다. 특히 청와대에 오는 이들은 모두 신분증을 맡기고 청와대 출입증으로 바꾸고 그걸 패용해야 했는데 김영삼은 아마도 "'대한민국에 나 김영삼 모르는 이가 있느냐"라며 출입증 안 달겠다고 땡깡(응?) 부린 모양. 그래서 이튿날 신문엔 전두환 치하에선 거의 처음으로 출입증 안 단 제1야당 총재가 등장. 지금 돌이켜 보면 민주화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 아닌가 싶은 느낌적 느낌^^이다.
100만 광화문 시위가 '평화적인 축제적 시위'였다는 것, 그 자체가 그 광화문의 역사적 의미를 자동적으로 부여하지 않는다. 100만이 모여서 축제적 분위기에서 '평화시위'는 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그 100만의 사람들이 여전히 성차별, 장애차별, 성소수자차별, 외국인차별, 종교차별, 저소득층차별 등으로 점철된 가치관을 가지고 정치가를 뽑고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한다면, '100만 시위 광화문'은 한국역사에서 진정으로 의미로운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역사적 자리매김을 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가 치열하게 씨름해야 할 물음은, 이 광화문 시위는 궁극적으로 '어떠한 가치관을 확산하고자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물음과 대면하고 고민하지 않을 때에, 제2의, 제3의 '박근혜-최순실'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사회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물리학에서 움직이는 입자나 멈춰있는 입자를 물질의 '상태(state)'로 이해한다. 고체는 입자가 고정된 위치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며, 액체는 입자가 주변 입자와 약하게 붙어 있어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이다. 기체는 입자 사이에 아무 상호작용이 없어 마치 공간에 홀로 있는 듯한 상태이다. 어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액체와 고체 사이를 오가는 상태변화(phase transition)를 경험했던 것이다. 집회가 열린 시간이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로 보고 (6시간) 대략 한 사람이 한 공간에 머문 시간을 '2시간' 정도로 본다면 3명의 유동 인원이 같은 공간에 다른 시간 동안 참석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렇게 추산하면 Mosh-pit 밀도로 추산한 34만명의 3배를 하면 된다. 어림잡아 100만명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을 하고 커리어를 개척해 가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특히 여성으로서, 이번 결과는 참 쓰리고 아프다. 그토록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과시하고, 여성 비하 발언을 남발하고, 종교/표현의 자유를 억업하고 비민주적인 모습을 자랑스럽게 드러낸 인물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강대국이라 불리는 국가에서 민주주의 절차로 선택된 대통령이라는 게 큰 쇼크로 다가온다. 힐러리 클린턴은 패배를 인정했다. 그녀의 말에는 실망이 역력했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다시는 목격하고 싶지 않는 이 끔찍한 대선에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그녀에게서 배운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어느 상황에서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태도이다.
세상은 분명 과거보다 발전하고 소득과 생활의 수준도 과거보다 나아졌다지만 정작 이들은 그것을 체감할 수 없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번영의 이야기는 이들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다. 데이터와 부는 결국 엘리트의 것이었으며 자신들은 이 시스템에서 소외되었음을 깨닫는다. 무직자에게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사실과는 다르다 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잃고 저급 일자리를 전전하는 사람들에겐 더 저렴한 가격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외국인의 존재란 이미 닥친 위기에서 생존을 걱정하게 만드는 위협이다. 그렇게 굴러떨어지고 번영에서 한 발짝 떨어진 사람들에게 평등과 올바름은 더 이상 최우선 순위에 있지 않다.
보통 일류는 공통적으로 자존심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 인사 문제로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그러지 않는다. 반면 삼류는 자기가 삼류인지 알기 때문에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뇌물도 갖다 바치고, 아부도 하고 그런다. 그러다 보면 대개 인사에서 삼류가 등용되기 쉽다. 그러다 결국 조직 전체가 다 삼류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MB의 정부 인사의 컨셉은 MB가 한 번이라도 겪었고, 또 MB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야 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을 쓴 경우는 대개 주변 친인척이나 지기 등이 추천한 경우이다. 이런 식이다 보니 이도 저도 관계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해도 못 쓴다.
종로를 오가면서 간접적으로 관찰하긴 했다. 처음에는 구분을 못하겠더라. 그냥 마실 나와서 할아버지들과 노닥거리는 할머니 같기도 하고, 매춘하는 할머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 번 보니까 알겠더라. 어딘가 지친 기색이 있고 얼굴에서 빛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보면 다들 명랑하다고 하더라. '집에 남편 재워두고 나왔잖아'란 식으로 자기 얘기도 서슴없이 하고. 사실 자기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이야기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지 않나. 그럼 사는 게 진짜 지옥이 되는 거니까. 다만 어떻게든 살아갈 구실이 필요한 거다. 그리고 구실을 찾아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극한으로 밀어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