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으로 갈 생각은 줄어들어요. 2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가는데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가족이 있긴 한데 공기도 너무 나쁘고 점점 머뭇거리게 돼요. 만나는 사람들도 직장,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우리 정말 행복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신기해해요. 그런 말을 TV 아닌 곳에서 듣기는 어려운 거죠. 프랑스에 와서 '드디어 아이를 가질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국회에서 일할 때도 시험관을 했는데 화장실에서 주사를 맞아야 했어요. 나의 모성성에 대해서 아무런 지원받지 못하는 근무 환경이었죠.
이재오와 이방호는 자신들의 앞날에 김무성이 매우 껄끄러운 존재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MB는 내게도 맹형규와 김무성은 날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이방호는 그 당시 강창희 핑계를 대면서, 강창희와 서로 주고받기를 하다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을 했다. 여하튼 2008년 공천에서 재량권을 가장 많이 행사한 사람이 이방호였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이방호가 부산 경남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본 큰 축이 김무성과 권철현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날라갔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퍼붓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마음을 파괴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우리도 역시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들은 인식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펜의 힘"을 믿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알리는 것이며 우리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이경재 변호사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젊은 세대가 세상의 풍파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원리를 배우기 전에 현실의 아니꼽고 치사함을 먼저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단 한번도 젊은 세대를 향해 그런 종류의 아량을 베풀어본 일이 없다는 데 있다. 풍파는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이라는 의미다.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란 과연 몇살일까. 한국 사회는 그간 생존의 출발선 앞에 선 젊은이들을 시작은 힘든 게 좋다며 세찬 바람 앞에 바람막이로 썼고 험한 물결이 있을 때는 그 안에 수장시키고 사고라고 둘러댔다.
아무리 장보고 밥하고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재우고 깨우고 차리고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치우고 빨래하고 장보고 하교하면 학습지 시키고 잔소리 해대고 씻기고 재우기를 수만 번 반복해도. 아이가 손톱 안 깎은 지 좀 돼서 시커멓게 때가 꼈다. → "엄마는 뭐하냐?" 일 년 만에 훌쩍 커서 소매가 좀 짧아졌다. 새 옷 사줄 겨를이 없었다 → "엄마 신경 안 써주시나 보네." 반찬 챙기고 교복 챙기고 숙제 챙겼지만 준비물 하나 까먹었다. → "역시 맞벌이 집 애들은 표시가 나." 일주일 내내 집에서 해 먹이다가 하도 졸라서 맥도널드 갔다' → "요즘 엄마들 애들 건강 하나도 생각 안 한다." 이걸 다 클리어 하면 칭찬 들을 것 같지? 꿈도 야무지네.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치고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까지 역임한 조응천도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을 때는 환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조응천보다 무려 20년 후배 검사가 '어이 조응천씨'라고 부를 정도였다니 검찰이 선배라고 특별히 봐주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면 검찰은 왜 우병우를 이렇게 특별취급하는 것일까? 이제는 민간인 신분인 우병우가 뭐 그리 무섭다고 그러는 것일까? 혹시 아직 우병우의 끈이 덜 떨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 강자에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 한없이 강한 대한민국 검찰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비엔날레, 왜 이토록 많을까?' '미술의 사회적 역할' '관객 참여라는 신기루'라는 세 개의 화두는 매회 방문하는 국내외 모든 미술 비엔날레 전시장 안에서 털어낼 수 없었던 의문점들로, 이 낯익은 화두는 예외 없이 반복된다. 올해 비엔날레 전시장들을 지배한 것도 단연 세 화두였다. 이 같은 이유로 광주 부산 서울에서 열린 비엔날레 셋을 둘러보던 중, 비엔날레 리뷰를 올해 처음으로 다루지 말지 고민했다. 반복적으로 만나는 화두이되, 외부의 비판을 피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굳은 낯익은 화두에 대해 대동소이한 논평을 쓰는 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다.
많은 한국인들이 박정희가 운 좋게 훌륭한 국민을 만난 독재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박정희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배운 박근혜 역시 훌륭한 지도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맞았다. 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우리가 꼭 얻어야 할 중요한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사회 한 쪽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박정희의 우상을 깨는 일이다.
최순실 사태는 탈정치적인 문제이며 국민 전체의 문제이다. 이번 사태로 야당이 반사적인 이익을 얻겠고 문제를 알면서도 쉬쉬해온 새누리당은 불리해졌지만 그것은 부수효과일 뿐이며 국민 전체 vs. 박근혜 대통령의 대결이 현재 문제의 본질이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대통령은 우리를 대표하고 지배할 권력을 가질 능력이 없다"는 것이며 바로 이 대표의 실패가 본질이다. 단순히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다. 김영삼 때도 국민은 대통령을 부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어떤 정치적 고려도 지금 우리의 대표를 부인해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주권자의 의사보다 더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중요한 것은 없다.
기대와 희망이 절망과 체념으로 바뀌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요양병원은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없다며 입원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다른 종합병원을 권유했다. 나는 다시 구급차를 탔다. 처음 수술했던 그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왜 다시 돌아왔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자 처연했다. 싸우기도 하고, 웃고 떠들며 했던 세월이 얼마였는데, 왜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됐는지. 3개월이 지나자 퇴원을 종용했다. 병원 생활을 전전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너무나 지쳐버렸다. 엄마를 향해 "이제 그만 놓고 가야 할 거 같다"고 귀에 대고 말하기까지 했다. "내가 꼭 살려줄게" 하고 말하던 나는 여기에 없었다.
광기의 시간인 지금, 나는 힐러리에게 투표할 것이다. 왜? 리얼리티 쇼 스타의 비열한 인종차별과 성차별 말고 다른 이유가 뭐냐고? 그의 탈세와 거짓말과 부도 말고? 트럼프는 기후변화를 부정한다. 트럼프는 범죄가 역대 최저 수준인 지금 '치안'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한다. 트럼프는 여성과 십대 소녀들에 대한 우려스러운 정도의 무례를 보였다. 트럼프 정권 하에서는 우리는 결정이 이루어지는 회의실에 들어가지도 못할 거라 확신할 수 있다. 형법 개혁을 믿는 사람의 발언권은 없을 것이다. 셰일 가스 시추 반대 운동가, 인권 운동가, 평화 지지자, LGBTQ 지지자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실패한 공화당 경제와 사회 정의 전략으로 가혹하게 돌아갈 뿐이다.
비록 단기간의 총리지만 새 국무총리는 대통령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중대한 자리가 된다. 그렇다면 어떤 인물이 적합할까? 이를 위해서는 거국중립내각의 성격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현 상황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해 강력히 책임을 묻는 정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리는 국회가 추천하되 야당 몫이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현재의 김병준 내정자는 결격사유자에 해당한다. 또한 새 내각은 중립내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야에 두루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적합하다.
거대한 인간파도가 서울 한복판을 덮쳤다. 나는 이를 '2016년 시민혁명'이라 부르겠다. 20만이란 수만 중요한 게 아니다. 참여자들의 구성은 더 중요하다. 이번 집회시위는 노동자만의, 농민만의 생존투쟁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나왔고, 노인과 소년이 나왔다. 노동자와 농민이 나왔고, 빈민과 중산층이 나왔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들 온 가족이 나왔다. 진보와 보수 모두가 손을 잡았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하라."
1년 전만 해도 부동산 투기 부채질하지 못해 안달을 하던 정부가 그 사이에 이런 식으로 정책기조를 바꾼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긴 시간도 아니고 불과 1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투기 조장책을 썼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책임감 있고 사려 깊은 정부라면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얍삽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조금씩 투기 억제책을 풀어 갔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무모하게 한꺼번에 푸는 바람에 오늘의 혼란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최순실 사건 때문에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정부가 단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것은 최순실 사건 이상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어중간한 조치는 결코 피해야 한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앞으로 남은 1년 반 동안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군주'와 그의 부하들 때문에 전전긍긍할 것이다. 나는 국지전의 가능성까지도 있다고 본다. 그런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최고권력의 사퇴로 인한 '국정공백'이니 '헌정중단'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개념은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묻는다. 지난 3년 반 동안 이 국가에 '국정'이란 게 있었나. '헌정'이 작동하고 있었나. 지금 사태의 본질은 민주공화국에서 허울뿐인 권력과 정부만이 있었다는 것, 국정과 헌정이 작동하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중단과 공백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성찰적 분노가 주는 중요한 이득이 무엇인지를 유추해 낼 수 있다. 첫째,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득이다. 이 성찰적 분노는 폭력적 상황으로부터 개인들을 보호하고 자기존중감을 유지하게 한다. 자신에게 부당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아무런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개인 속에 지켜낼 자존감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공적 차원'에서의 이득이다. 이러한 성찰적 분노는 잘못된 일을 하는 가해자들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그에 따른 처벌을 요구함으로써 '정의의 집행'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찰적 분노를 통해서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게 하는 효과도 있고, 동시에 이러한 것을 통해서 미래에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잘못을 하지 못하도록 서로를 보호하는 의미도 될 수 있다.
긍정적 변화 1. 기록적인 폭염과 강추위 등 이상기후 현상이 완화될 것입니다. 올 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 기억하시나요? 최근에는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단풍이 들기도 전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겨울이 찾아 온 듯 합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 입니다. 한국을 비롯, 전 세계적으로는 열대성 태풍, 극심한 가뭄, 열대우림의 산불, 집중호우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몽골의 고비사막에만 서식하는 고비곰, 마잘라이(Mazaalai)는 1920년대 초에 발견되었고 현재 20~30여마리만이 남아 있는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곰이다. 사막 지역에 서식하는 유일한 곰으로, 척박하고 건조한 고비사막을 돌아다니며 식물의 뿌리와 잎, 곤충과 도마뱀 등을 찾아 먹는다. 겨울잠 기간은 11월에서 3월이고, 몸길이는 약 150㎝, 몸무게는 평균 90~100㎏이다. 다른 근연종에 비해 짧고 밝은 황색의 털을 가지고 있고 팔다리가 긴 편이다. 극히 적은 개체만 존재하는데다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은밀한 습성 탓에 생태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재 동물원이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보호되고 있지 않다.
'로봇 연기'란 꼬리표가 붙은 연기자가 있었다. 그에겐 무척이나 가혹한 메타포였을 테다. '연기에 감정이 없다'는 평가 말이다. 로봇은 감정이 없는 물체다. 사람이 로봇에 감정을 이입할 순 있겠지만, 그것이 로봇이 감정을 가졌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그래서일까? 우린 로봇을 이따금 거친 환경에 내몬다. 전쟁터를 누비고, 무너진 건물 더미로 들어가며, 공기가 없는 행성을 탐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상상해보자. 어느 날 로봇이 이렇게 말한다면? "저...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독일 라이프치히대학 과학자들이 로봇에게 고통을 가르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