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애초에 논의의 대상이 아닌,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가 찬반을 두고 다툴 수 있는 가치관의 문제로 오인되거나, 금기(박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낙태죄가 그 중 하나로, 지금껏 국가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취급해왔는지 투명하게 드러내는 사안이다. 여성이 임신을 지속할 자유와 지속하지 않을 자유는 온전히 그 여성의 선택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헛소리도 첨언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베토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세포의 미래를 안타까워하지만 베토벤이 아니더라도 차곡차곡 자신의 생을 쌓아온 여성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마리아도 아메바도 아니니 혼자 임신했을 리는 없는데, 지우면 지웠다고 낙태충 낳으면 낳았다고 미혼모 또는 맘충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외교안보 장관회의에서 큰 소리가 날 정도로 의견 차이가 부각되었다. 북한에 물어보고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미 정부 내에서 송 전장관을 제외한 장관들은 누구나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했다. 그리고 서별관회의가 열렸다. 송민순 전 장관을 제외한 장관들은 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지적했다. 그리고 2차 총리급 회담을 비롯해서 분야별로 다수의 장관급 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북한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고 불쑥 유엔에서 인권결의안에 찬성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겠는가? 사전통보를 하고, 북한의 반응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집회가 끝나고 삐죽한 건물 사이를 걸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청소년 순결 강연이 열리고 있다. 그들은 성은 더럽다고할까. 아니면 성은 대단히 아름다우니까, 내 몸은 보물이니까, 잘 "지키라"고 할까. 여자아이들은 여자가 손해니까 혼전순결을 다짐할까. 옆에서 낙태죄 폐지 집회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봐,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도덕적인 섹스"를 해야 해, 라고 결심할까. 아니면 거짓말에 화가 나서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올까. 그들이, 우리가 부숴야 할 거짓말들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결혼으로 세상이 당장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결혼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을 조금은 바꾸었다. 이성애자들에겐 '한국에서도 동성 결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동성애자들에겐 '우리도 결혼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동성 결혼은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 혹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의 결혼으로 대한민국이 조금 더 로맨틱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20만 명이 불법으로 임신중절을 받는다. 그리고, 입법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당장 완전히 합법화할 수 없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고, 사회와 윤리는 시시각각으로 바뀌며, 그를 법에 반영해야 하는 것이 사회적 요구다. 이 문제에 관한 통찰도,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여성의 인권 문제도, 또, 누가 범법자여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나 발상이라곤 전혀 없는 입법자의 고결한 척하는 행태가, 그리고 쟁점은 잊은 채 현장에서 서로를 돌보아야 할 의사와 환자가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이 현실이 나는 참으로 개탄스럽다.
출생과 양육의 부담이 여성에게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나 청년층의 소득이 제 자신의 생존만 감당하기에도 빠듯하다는 점, 양육시설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출산을 결정한 여성은 당장 제 경력을 단절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점, 이 모든 점을 차치하고라도 여성은 원치 않은 임신에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단 점. 이런 이유들은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말의 고려사항으로도 채택되지 못했다. 대신 '임신하지 않는 여성들의 무책임'이나 '낙태하는 여성들의 무책임'만이 출산율 저하의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대선 막바지에 MB 스스로 BBK가 자기 회사라고 말했다는 소위 '광운대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이 나타나 여기저기 접촉을 하고 다녔다. 내게는 시민단체에 있는 지인을 통해서 '누가 그런 것(광운대 동영상)을 가지고 있는데 팔겠다고 한다'며 연락이 왔다. 나는 박재성을 불러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그들을 만나도록 했다. 일당은 3인조로 파악됐다. 우리는 생각했다. '이들이 분명 정동영 후보 쪽에도 갔을 텐데 그들은 왜 사지 않았을까? 샀다면 왜 공개를 안 할까?'
무엇을 다루었느냐가 중요하지 작품의 함량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이 엄혹한 세상에,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나는 별로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다큐 <자백>에서 과거 군부독재 시대를 비판하는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내가 편들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프로파간다라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비판하고자 하는 이들과 동업자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다큐들을 모두 퉁쳐서 함량 미달이라는 편견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좋은 다큐가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세상을 망치는 건 그런 사람들이다. 자, 그렇다면 최승호의 '자백'은 좋은 다큐인가.
특히 제가 공감했던 글은 바이라고 누군가한테 얘기하거나 스스로 생각을 할 때 '내가 중2병에 걸려가지고 지금 바이라고 깝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스스로 되게 많이 했었어요. 내가 이상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아 이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거 보면서 '아, 그러면 내가 중2병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고 약간 위로를 받은 게 좀 있어서.
여성학자 신시아 인로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스러운'이라는 형용사를 의식하자. '사소한'이라는 말을 주의 깊게 보라. 이 두 표현은 당신이 열고 싶은 문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다."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일, 사소한 일은 없다는 말이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넘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줄 몇 권의 페미니즘 도서를 소개한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답답함을 해소해 줄 페미니즘 입문서부터 우리 삶을 조건 짓는 구조에 질문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따라 읽는다면 페미니즘의 방대한 스펙트럼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왜인지 실이 달린 바늘을 들고 천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을 때마다 기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어차피 빨리 못하니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성인군자 모드. 성급한 덜렁이라는 자기 규정과의 한 땀 승부. 그리고 자수가 완성되면 느껴지는 '오르가스믹'한 성취감. '와 내가 이걸 다 끝냈단 말이야? 내가?' 자수를 시작한 지 고작 두 달이어서 결과물은 초라하지만 바늘과 나는 안다. 우리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으며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났는지.
블랙리스트에 오른 9천473명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죄가 있다면 세월호참사 처리과정에서 정부의 잘못을 지적한 죄다. 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14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공개 지지한 죄다. 유력 대선주자들의 적극지지자를 블랙리스트로 묶어 불이익을 주기로 한 정권의 행위는 권력의 힘으로 유력야권주자의 손발을 묶고 확장력을 막는 간악하고 비열한 민의왜곡이자 중대한 범법행위다. 한마디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민주법치국가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국기문란의 중대범죄다.
이런 영화들에 대한 비판에서 중요한 점은 이들이 비판하고 있는 것이 개별영화가 아닌 이런 부류 영화의 유행과 흐름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알탕 영화들은 대부분 여성혐오적이지만 그와 별도로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를 하나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이런 영화들이 비정상적으로 많고 그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풍토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국제적 약속의 파기, 동맹과의 관계 손상, 국제적 경제제재 등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요컨대 한국 핵무장은 기존의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한미원자력협정 등에 위배되며, 최근 미국의 '핵무기 없는 세상' 정책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198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자리에서 극소량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이 2004년에 뒤늦게 확인됐을 때,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전통적 우방국들이 한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까지 주장하며 강하게 대응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차은택은 한때 뮤직비디오의 모든 것이었다. 그의 이름에서 '미르재단'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뮤직비디오들을 한 번 떠올려보시라. 1999년 모든 뮤직비디오 상을 독식하다시피 했던 이승환의 '당부'. 양조위와 전도연과 류승범이 소매치기로 등장한 '더 네임'(The Name), 장진과 김현주가 애틋한 사랑을 나누던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 그가 박근혜 정부 아래서 맡은 직책들을 보라. 인천아시안게임 영상감독, 밀라노 엑스포 전시관 영상감독, 창조경제추진단장,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러시아는 최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홋카이도까지 연결하자고 일본에 제안했다. 하바롭스크와 사할린 사이 타타르 해협 7㎞ 구간과 사할린~홋카이도 간 라페루즈 해협 42㎞를 다리나 터널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성사되면 섬나라 사람이 대륙의 설경(雪景)에 취해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을 누비는 파천황(破天荒)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아베는 이미 올해 5월 소치에서 푸틴과 만나 사업비 1조 엔(약 10조8000억원)을 넘는 8개 항의 경제협력 방안을 제시했고, 이를 전담할 장관직까지 만들었을 정도여서 제안은 진지하게 검토될 것이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고 보니, 전엔 없던 제도가 생겨 있다.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근로자의 연장/휴일/야간근로를 제한하는, 이른바 '모성 보호 제도'. 없던 제도가 생긴 건 물론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게 여성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읽힌다. 나와 같은 해에 아이를 얻은 한 남자 PD가 그런다. "이거, 사실 배우자한테도 적용해야 해. 남편이 야간이나 휴일에 근무 하면 엄마가 고생하잖아. 그리고 여성들한테만 이런 제도를 적용하면, 회사에서 여사원 기피할 것 아냐."
"만약 빌 게이츠가 미국이 아닌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에 태어났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과 사업수완이 있더라도, 제아무리 운이 좋더라도, 과연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러기는커녕 미국에서 흔히 보는 백만장자가 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빌이 번 돈의 대부분은 미국사회가 그에게 제공한 여건과 기회의 덕분이고, 따라서 그가 전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말은 지극히 타당하면서도 중요한 논리를 담고 있는데, 문제는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필자는 그를 인용하는 대신 그는 그렇게 말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학의 거장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를 "불확실성의 제도화'라고 정의했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누가(여당이건 야당이건) 잡을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최소한이라는 의미다. 모든 민주주의자들이 여기에 동의한다. 단 민주주의자들만 동의한다. 나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아담 쉐보르스키가 정의한 "불확실성의 제도화"라는 개념에 동의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나의 눈에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확실성의 제도화"(의원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