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이번처럼 섹스가 대선 토론의 중심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클린턴과 트럼프가 반대편에서 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지저분한 분위기는 이미 잡혀 있었다. 미국 대통령 후보인 두 사람은 무대 가운데에서 만나 서로를 노려보았고 악수는 하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계속 내리막이었다.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신랄한 공격, 기소 위협, 온갖 비난이 100분 동안의 타운홀 토론 내내 계속되었다. 현대 역사에서 가장 격렬하고 유치한 토론이었다.
60년대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세상이 쉬웠다. 물론 개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모든 것을 바쳐 열심히 노력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내 말은, 하나의 코호트로 봤을 때 그들은 다른 코호트들보다 쉬운 세상을 살았다는 거고, 어려운 환경조건이라 그렇지 다른 세대 역시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거다. 한국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를 열심히 살면서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세대 =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 (혹은 똑똑하지 않은) 세대'라는 논리적 오류가 그 코호트에 존재한다.
일부 사람들은 모병제를 도입하게 되면 결국 경제적 빈곤층만 군대에 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균등한 병역이라는 것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 한국의 징병제는 실제로 학력과 재산, 배경에 따라 차등적용 되고 있다. 결국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것은 주로 넉넉지 못한 가정의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징병제는 개인의 운명을 결정할 선택권조차도 빼앗아가 버린다.
잘 생기지도 않았던 여드름이 한쪽 뺨이나 귀에만 발생한다면 휴대전화 피부염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휴대전화의 금속장식인 니켈과 크롬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질환인데요. 여드름은 물론 알레르기성 홍반이 귀나 한쪽 뺨에 나타나는 것이 주요증상입니다. 새 스마트폰보다는 사용한 지 오래된 스마트폰에서 많이 발생하며 땀이 많은 체질인 경우, 땀으로 인해 니켈과 크롬이 유출되므로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2015년 유가족들은 천안함재단 임원들이 2함대 해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며 이를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래범 천안함재단 사무총장은 "2함대에 있는 골프장 때문에 천안함이 그렇게 폭침 사고가 난 건 아니잖아요?"라며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의원은 국가보훈처로부터'천안함재단의 운영현황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천안함재단이 모 방송국 사장의 퇴임을 축하하며 재단의 경비로 10돈짜리 황금열쇠(297만원)를 선물했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는 빌리 부시에게 자신이 'X지를 움켜쥐었다'고 떠벌렸다. 하지만 선출직 공무원인 당신들, 지난 주말 동안 '수치스럽다'고 트럼프를 규탄하는 척하며 트럼프와 거리를 두려했던 당신들이 사실상 여성들을 공격하는 법을 통과시켜 여성들을 법적으로 '움켜쥔' 사람들이다. 여성들에게 돈을 더 적게 주는 건 공격이다. 모두를 위한 어린이집을 막는 건 공격이다. 더 다수 젠더인 여성이 하원의 20%밖에 차지하지 못한 것은 아파르트헤이트와 같은 형태의 공격이다.
인권 존중 없이는 평화와 지속 가능한 성장은 있을 수 없다. U.N. 인권 시스템은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가입국의 능력을 키워주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사무총장은 인권우선 이니셔티브 등으로 U.N.의 시스템 전체에 인권을 주류로 편입시켜야 하며, 위반과 침해를 예방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며 피해자들의 역경을 고심해야 한다. U.N.은 젠더 평등을 향한 세계적 움직임의 선봉에 서야 한다. 여성에게 힘을 주고 모든 정책에 젠더 관점을 반영하는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를 촉진해야 한다.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압도된 것은 이 세종이란 사내가 1443년에 훈민정음을 완성해 놓고선 바로 일반 백성에게 반포하지 않고 3년(!) 동안 기다리며 말하자면 테스트를 해보고 쓸 만하다는 자신이 생긴 다음인 1446년에야 반포한 점이다. 뭐랄까 당시 조선의 땅 한자락에 대한 처분권, 백성 한 명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당신 세종대왕님께서 모두 쥐고 있다는 도저한 절대군주로서의 자신감이 없으면 감행할 수 없는 일종의 사치이면서도 또한 그러한 절대권력자가 빠지기 쉬운 자만과 조급함의 유혹을 대단한 자제력으로 극복한 게 이 '훈민정음 창제 3년 후 반포'라는 기막힌 기다림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국어 경찰 활동은 집안뿐 아니라 대외 순찰로도 이어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문에서 '반듯이'와 '닥아 내어'에 줄을 긋고 '반드시' '닦아 내어'라고 고쳐놓은 사람은 보나마나 우리 아버지였다. 온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갔던 날, 잘 가던 횟집 문 앞에 버티고 선 아버지는 들어갈 생각을 안 했다. 대신 사장님더러 밖으로 좀 나와보라고 불러냈다. 새로 바꾼 발 매트에 적힌 말이 문제였다. "어서 오십시'요'가 아이고요, 어서 오십시'오'가 맞습니더, '오'." 아버지는 피카소가 손전등으로 소를 그리듯 허공에 커다랗게 '오'라고 적어 보였다.
얼마 전. 지난 16년간 나를 위로해 주고 지켜 주었던 내 강아지 토토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버렸다. 토토가 치매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토토를 돌보기 위해 거의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짐승도 나이가 들면 사람이 노환을 앓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 굉장히 핍진한 슬픔을 환기하고 있었다. 토토는 머리를 요란하게 흔들고, 정처 없이 헤매며, 어두운 구석으로 처박히듯 들어갔다가는, 이윽고 함정과 늪에 빠진 것처럼 되돌아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누구는 안락사를 시키라는 소리도 했다.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나의 나머지 인생이 어떠할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인생은 결국 망한다.
우리는 가족이란 관계가 필연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가족 또한 우연히 만들어진 관계 아닌가.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정해진 운명에 놓인 관계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싸움이 일어난다. 그 운명적 관계 안에서 내가 너를 지배해야 한다는 알력이 형성된다. 사실 그런 관계란 인간과 인간이라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선 존재할 수 없는 폭력 아닌가. 그래서 누구를 만나면 사람이 행복한 것인지, 누구와 함께할 때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지, 결국 그런 행복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되는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그런 행복이란 결국 우리의 주변에 널려 있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가 힘 없고 가난한 사람 편에 서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 하더라도요.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정부는 힘 있고 가진 사람의 친구라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때로 오면서는 그 인식이 더욱 강화되었구요. 사람들 사이의 신뢰, 협동하려는 생각, 남에게 양보하는 자세 같은 것들을 통틀어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르지요. 최근의 두 보수적 정부가 저지른 최대의 실정은 바로 이 사회적 자본을 역사상 최저의 수준으로 낮아지게 만든 것입니다.
부모님께 커밍아웃할 때 준비를 철저히 했다. 어머니나 아버지 어느 한쪽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양친이 모두 한 자리에 계시고, 주변에 나를 포함한 우리 세 명만 있어야 하며, 식당 같은 곳이 아니라 반드시 집 안이어야 했다. 그리고 두 분의 건강 상태가 좋고 다른 큰 걱정거리가 없어야 했다. 즉, 부모님 주변에 신경 써야 할 요소가 없고, 오로지 이것만 깊게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는 커밍아웃을 했다. 또한 지나치게 감정이 올라올 것을 대비해서 가능한 한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몇 가지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한 후 자리를 비워 부모님 두 분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열차 예약까지 마쳤다.
심지어 백남기 농민의 유족들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나선 극우단체마저 등장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직격당해 의식을 잃던 순간 현장에 있던 빨간 우비 차림의 남성이 백씨를 타살한 의혹이 있으니 이를 규명해달라는 수사의뢰서를 경찰에 제출한 단체들도 나타났다. 어쩌다 한국사회가 이 지경까지 추락했을까? 진보는 고사하고, 민주는 고사하고, 상식은 고사하고, 인륜조차 사치인 사회가 되었을까?
2007년 들어서면서 정국은 서서히 대선 정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2~3월이 되었는데도 MB는 경선 캠프를 꾸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MB에게 "빨리 짜임새 있는 캠프를 꾸려야 한다. 본격적으로 진용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MB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리다가 세 번째로 얘기 했을 때에야 "그러면 이상득 의원과 상의해서 해보세요. 이재오 의원은 절대 모르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MB는 왜 이재오 의원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던 것일까.
살다 보면 운이 좋아 성공한 사람들 중에 "운도 실력이다"라며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짜 따지고 보면 "실력도 운이다"라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실력이 좋아서 우연으로서의 운이 좋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연히 운이 좋아서 실력이 좋아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최고의 재능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실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능력이란 별 볼 일이 없는 것"이다.
A는 인생에서 거쳐온 고비라곤 수능밖에 없는 지루한 서사의 인간이었다. 세상에 대해 평론하고 싶은 것이라곤 맛집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이 가게 점원 태도가 어쩌네 저쩌네' 하며 아르바이트생의 인성을 운운하는 A를 볼 때면 나는 그를 멸시했다. 사랑이 도취나 찬양이 아닐 수 있고, 어떤 욕구의 교환일 수 있다는 걸 A는 내게 가르쳐줬다. 내가 그를 멸시했던 것은 그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동생의 시댁형님은 올해 1월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친정이 발리인 시댁형님은 새로 태어난 손자를 친정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자 발리에서 아들의 세례식을 하기로 하였고 동생의 시아주버니도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들을 데리고 같이 처가댁인 발리로 갔습니다. 예전부터 계획이 되어 있던 일정입니다. 단지 아버지께서 운명하시는 순간, 발리에 동생이 머물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하며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겠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 하루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는 우리 가족들을 모욕하는 일은 그만두기 바랍니다.
'소박하고도 진실한' 이 가족 이야기를 보며 오히려 가족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정신분열적인 데가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가족을 추켜올리는 시도는 가족의 수난을 은폐하거나 예고한다. 쉽게 가치를 부여하면서 쉽게 내팽개치며, 해체의 위협을 가하고 있을 때 가장 숭배를 바친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족을 공동체의 원형으로 소환한 다음 곧장 공동체의 실패를 떠안겨버린다. 공동체와 가족의 실제 관계는 정확히 그 반대다. 공동체가 가족의 원형이며 가족의 고난은 공동체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상이다. 그러니 사회적 삶의 문제를 더는 가족에게 미루지 말아야 하며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가족을 내버려두어야 한다. 특히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