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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나라 전쟁 (7/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
published: 14 Mar 2014
고구려 수나라 전쟁 (7/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고구려 수나라 전쟁 (7/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cond Goguryeo-Sui War,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Goguryeo and the Chinese Sui Dynasty. Goguryeo cavalry forces, pursuing the Sui army, attacked and defeated it at the Salsu River. History In AD 612 the Sui Emperor Yangdi invaded Goguryeo with over one million men.[3] However, Goguryeo defiantly resisted its enemy. Emperor Yangdi dispatched 305,000 troops to Pyongyang, capital of Goguryeo. Goguryeo Gen. Eulji Mundeok defended fortresses against the Sui army and navy for several months and destroyed the Sui troops while retreating into Goguryeo territory. An ambush at Salsu (Chongchon River) inflicted massive casualties on the Sui forces. When the Sui army had reached Salsu the water level was shallow, as Eulji Mundeok had already cut off the flow of water with a dam. When the Sui troops were halfway across the river, Eulji opened the dam and the onslaught of water drowned thousands of Sui soldiers. The Goguryeo cavalry then charged the remaining Sui forces. The surviving Sui troops were forced to retreat at a breakneck pace to the Liaodong Peninsula to avoid being killed. This led to an overall campaign loss of all but 2,700 Sui troops out of 350,000 men, The Battle of Salsu is listed among the most lethal "classical formation" battles in world history. With victory over the Sui dynasty at the Salsu, Goguryeo eventually won the war itself, while the Sui Dynasty, crippled by the enormous loss of manpower and resources as a result of its Korean campaigns, started to crumble from within and was finally brought down by internal strife, to be replaced soon thereafter by the Tang.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살수(청천강)에서의 전투이다.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 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612년 1월 113만 3800명(보급병 등의 기타 병력을 포함하면 총 200만명에서 400만명 정도이다.)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하루 1군(軍)씩 보내 40일 걸려 겨우 출발이 끝났으며, 깃발은 960여 리에 뻗쳤다 한다. 육군은 요동성(遼東城)으로,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平壤)성으로 향하였다. 그해 4월에는 요하를 건너 별대(別隊)는 양제의 지휘하에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군은 힘써 싸웠으므로 수군은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5천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허실을 보았는데, 적장 우중문(于仲文)은 을지문덕을 사로잡고자 하였으나 유사룡(劉士龍)의 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청야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宇文述)은 후회하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하루에 적과 7전(戰)하였으나 계속 거짓으로 패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도 작전에 속은 것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에까지 밀려왔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군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군이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수나라군이 살수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하였다. 수나라군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요동 반도까지 도망가야 했다. 30만 5천 중 생존자는 2700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특히 신세웅 장군이 이끄는 제 8군은 지휘관인 신세웅 장군을 비롯하여 단 한명조차 생존자가 없이 모두 전멸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을 비롯하여 설세웅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의 작위가 박탈되었다. 단, 설세웅만은 갑옷을 고구려군에게 벗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한 점을 감안하여 작위만은 유지했다.- published: 1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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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guryeo-Sui War 1/4 How could Goguryeo defeat the Sui's millions troops?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
published: 04 Apr 2013
author: Yemaek Mançurya
The Goguryeo-Sui War 1/4 How could Goguryeo defeat the Sui's millions troops?
The Goguryeo-Sui War 1/4 How could Goguryeo defeat the Sui's millions troops?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nst the Goguryeo of Korea between AD 598 and AD 614. It resulted in...- published: 04 Ap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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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나라 전쟁 (8/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
published: 14 Mar 2014
고구려 수나라 전쟁 (8/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고구려 수나라 전쟁 (8/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cond Goguryeo-Sui War,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Goguryeo and the Chinese Sui Dynasty. Goguryeo cavalry forces, pursuing the Sui army, attacked and defeated it at the Salsu River. History In AD 612 the Sui Emperor Yangdi invaded Goguryeo with over one million men.[3] However, Goguryeo defiantly resisted its enemy. Emperor Yangdi dispatched 305,000 troops to Pyongyang, capital of Goguryeo. Goguryeo Gen. Eulji Mundeok defended fortresses against the Sui army and navy for several months and destroyed the Sui troops while retreating into Goguryeo territory. An ambush at Salsu (Chongchon River) inflicted massive casualties on the Sui forces. When the Sui army had reached Salsu the water level was shallow, as Eulji Mundeok had already cut off the flow of water with a dam. When the Sui troops were halfway across the river, Eulji opened the dam and the onslaught of water drowned thousands of Sui soldiers. The Goguryeo cavalry then charged the remaining Sui forces. The surviving Sui troops were forced to retreat at a breakneck pace to the Liaodong Peninsula to avoid being killed. This led to an overall campaign loss of all but 2,700 Sui troops out of 350,000 men, The Battle of Salsu is listed among the most lethal "classical formation" battles in world history. With victory over the Sui dynasty at the Salsu, Goguryeo eventually won the war itself, while the Sui Dynasty, crippled by the enormous loss of manpower and resources as a result of its Korean campaigns, started to crumble from within and was finally brought down by internal strife, to be replaced soon thereafter by the Tang.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살수(청천강)에서의 전투이다.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 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612년 1월 113만 3800명(보급병 등의 기타 병력을 포함하면 총 200만명에서 400만명 정도이다.)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하루 1군(軍)씩 보내 40일 걸려 겨우 출발이 끝났으며, 깃발은 960여 리에 뻗쳤다 한다. 육군은 요동성(遼東城)으로,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平壤)성으로 향하였다. 그해 4월에는 요하를 건너 별대(別隊)는 양제의 지휘하에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군은 힘써 싸웠으므로 수군은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5천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허실을 보았는데, 적장 우중문(于仲文)은 을지문덕을 사로잡고자 하였으나 유사룡(劉士龍)의 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청야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宇文述)은 후회하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하루에 적과 7전(戰)하였으나 계속 거짓으로 패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도 작전에 속은 것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에까지 밀려왔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군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군이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수나라군이 살수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하였다. 수나라군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요동 반도까지 도망가야 했다. 30만 5천 중 생존자는 2700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특히 신세웅 장군이 이끄는 제 8군은 지휘관인 신세웅 장군을 비롯하여 단 한명조차 생존자가 없이 모두 전멸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을 비롯하여 설세웅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의 작위가 박탈되었다. 단, 설세웅만은 갑옷을 고구려군에게 벗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한 점을 감안하여 작위만은 유지했다.- published: 1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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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나라 전쟁 (3/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
published: 14 Mar 2014
고구려 수나라 전쟁 (3/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고구려 수나라 전쟁 (3/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cond Goguryeo-Sui War,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Goguryeo and the Chinese Sui Dynasty. Goguryeo cavalry forces, pursuing the Sui army, attacked and defeated it at the Salsu River. History In AD 612 the Sui Emperor Yangdi invaded Goguryeo with over one million men.[3] However, Goguryeo defiantly resisted its enemy. Emperor Yangdi dispatched 305,000 troops to Pyongyang, capital of Goguryeo. Goguryeo Gen. Eulji Mundeok defended fortresses against the Sui army and navy for several months and destroyed the Sui troops while retreating into Goguryeo territory. An ambush at Salsu (Chongchon River) inflicted massive casualties on the Sui forces. When the Sui army had reached Salsu the water level was shallow, as Eulji Mundeok had already cut off the flow of water with a dam. When the Sui troops were halfway across the river, Eulji opened the dam and the onslaught of water drowned thousands of Sui soldiers. The Goguryeo cavalry then charged the remaining Sui forces. The surviving Sui troops were forced to retreat at a breakneck pace to the Liaodong Peninsula to avoid being killed. This led to an overall campaign loss of all but 2,700 Sui troops out of 350,000 men, The Battle of Salsu is listed among the most lethal "classical formation" battles in world history. With victory over the Sui dynasty at the Salsu, Goguryeo eventually won the war itself, while the Sui Dynasty, crippled by the enormous loss of manpower and resources as a result of its Korean campaigns, started to crumble from within and was finally brought down by internal strife, to be replaced soon thereafter by the Tang.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살수(청천강)에서의 전투이다.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 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612년 1월 113만 3800명(보급병 등의 기타 병력을 포함하면 총 200만명에서 400만명 정도이다.)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하루 1군(軍)씩 보내 40일 걸려 겨우 출발이 끝났으며, 깃발은 960여 리에 뻗쳤다 한다. 육군은 요동성(遼東城)으로,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平壤)성으로 향하였다. 그해 4월에는 요하를 건너 별대(別隊)는 양제의 지휘하에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군은 힘써 싸웠으므로 수군은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5천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허실을 보았는데, 적장 우중문(于仲文)은 을지문덕을 사로잡고자 하였으나 유사룡(劉士龍)의 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청야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宇文述)은 후회하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하루에 적과 7전(戰)하였으나 계속 거짓으로 패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도 작전에 속은 것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에까지 밀려왔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군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군이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수나라군이 살수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하였다. 수나라군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요동 반도까지 도망가야 했다. 30만 5천 중 생존자는 2700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특히 신세웅 장군이 이끄는 제 8군은 지휘관인 신세웅 장군을 비롯하여 단 한명조차 생존자가 없이 모두 전멸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을 비롯하여 설세웅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의 작위가 박탈되었다. 단, 설세웅만은 갑옷을 고구려군에게 벗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한 점을 감안하여 작위만은 유지했다.- published: 1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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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나라 전쟁 (2/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
published: 14 Mar 2014
고구려 수나라 전쟁 (2/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고구려 수나라 전쟁 (2/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cond Goguryeo-Sui War,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Goguryeo and the Chinese Sui Dynasty. Goguryeo cavalry forces, pursuing the Sui army, attacked and defeated it at the Salsu River. History In AD 612 the Sui Emperor Yangdi invaded Goguryeo with over one million men.[3] However, Goguryeo defiantly resisted its enemy. Emperor Yangdi dispatched 305,000 troops to Pyongyang, capital of Goguryeo. Goguryeo Gen. Eulji Mundeok defended fortresses against the Sui army and navy for several months and destroyed the Sui troops while retreating into Goguryeo territory. An ambush at Salsu (Chongchon River) inflicted massive casualties on the Sui forces. When the Sui army had reached Salsu the water level was shallow, as Eulji Mundeok had already cut off the flow of water with a dam. When the Sui troops were halfway across the river, Eulji opened the dam and the onslaught of water drowned thousands of Sui soldiers. The Goguryeo cavalry then charged the remaining Sui forces. The surviving Sui troops were forced to retreat at a breakneck pace to the Liaodong Peninsula to avoid being killed. This led to an overall campaign loss of all but 2,700 Sui troops out of 350,000 men, The Battle of Salsu is listed among the most lethal "classical formation" battles in world history. With victory over the Sui dynasty at the Salsu, Goguryeo eventually won the war itself, while the Sui Dynasty, crippled by the enormous loss of manpower and resources as a result of its Korean campaigns, started to crumble from within and was finally brought down by internal strife, to be replaced soon thereafter by the Tang.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살수(청천강)에서의 전투이다.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 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612년 1월 113만 3800명(보급병 등의 기타 병력을 포함하면 총 200만명에서 400만명 정도이다.)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하루 1군(軍)씩 보내 40일 걸려 겨우 출발이 끝났으며, 깃발은 960여 리에 뻗쳤다 한다. 육군은 요동성(遼東城)으로,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平壤)성으로 향하였다. 그해 4월에는 요하를 건너 별대(別隊)는 양제의 지휘하에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군은 힘써 싸웠으므로 수군은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5천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허실을 보았는데, 적장 우중문(于仲文)은 을지문덕을 사로잡고자 하였으나 유사룡(劉士龍)의 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청야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宇文述)은 후회하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하루에 적과 7전(戰)하였으나 계속 거짓으로 패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도 작전에 속은 것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에까지 밀려왔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군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군이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수나라군이 살수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하였다. 수나라군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요동 반도까지 도망가야 했다. 30만 5천 중 생존자는 2700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특히 신세웅 장군이 이끄는 제 8군은 지휘관인 신세웅 장군을 비롯하여 단 한명조차 생존자가 없이 모두 전멸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을 비롯하여 설세웅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의 작위가 박탈되었다. 단, 설세웅만은 갑옷을 고구려군에게 벗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한 점을 감안하여 작위만은 유지했다.- published: 1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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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나라 전쟁 (1/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
published: 14 Mar 2014
고구려 수나라 전쟁 (1/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고구려 수나라 전쟁 (1/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cond Goguryeo-Sui War,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Goguryeo and the Chinese Sui Dynasty. Goguryeo cavalry forces, pursuing the Sui army, attacked and defeated it at the Salsu River. History In AD 612 the Sui Emperor Yangdi invaded Goguryeo with over one million men.[3] However, Goguryeo defiantly resisted its enemy. Emperor Yangdi dispatched 305,000 troops to Pyongyang, capital of Goguryeo. Goguryeo Gen. Eulji Mundeok defended fortresses against the Sui army and navy for several months and destroyed the Sui troops while retreating into Goguryeo territory. An ambush at Salsu (Chongchon River) inflicted massive casualties on the Sui forces. When the Sui army had reached Salsu the water level was shallow, as Eulji Mundeok had already cut off the flow of water with a dam. When the Sui troops were halfway across the river, Eulji opened the dam and the onslaught of water drowned thousands of Sui soldiers. The Goguryeo cavalry then charged the remaining Sui forces. The surviving Sui troops were forced to retreat at a breakneck pace to the Liaodong Peninsula to avoid being killed. This led to an overall campaign loss of all but 2,700 Sui troops out of 350,000 men, The Battle of Salsu is listed among the most lethal "classical formation" battles in world history. With victory over the Sui dynasty at the Salsu, Goguryeo eventually won the war itself, while the Sui Dynasty, crippled by the enormous loss of manpower and resources as a result of its Korean campaigns, started to crumble from within and was finally brought down by internal strife, to be replaced soon thereafter by the Tang.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살수(청천강)에서의 전투이다.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 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612년 1월 113만 3800명(보급병 등의 기타 병력을 포함하면 총 200만명에서 400만명 정도이다.)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하루 1군(軍)씩 보내 40일 걸려 겨우 출발이 끝났으며, 깃발은 960여 리에 뻗쳤다 한다. 육군은 요동성(遼東城)으로,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平壤)성으로 향하였다. 그해 4월에는 요하를 건너 별대(別隊)는 양제의 지휘하에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군은 힘써 싸웠으므로 수군은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5천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허실을 보았는데, 적장 우중문(于仲文)은 을지문덕을 사로잡고자 하였으나 유사룡(劉士龍)의 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청야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宇文述)은 후회하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하루에 적과 7전(戰)하였으나 계속 거짓으로 패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도 작전에 속은 것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에까지 밀려왔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군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군이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수나라군이 살수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하였다. 수나라군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요동 반도까지 도망가야 했다. 30만 5천 중 생존자는 2700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특히 신세웅 장군이 이끄는 제 8군은 지휘관인 신세웅 장군을 비롯하여 단 한명조차 생존자가 없이 모두 전멸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을 비롯하여 설세웅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의 작위가 박탈되었다. 단, 설세웅만은 갑옷을 고구려군에게 벗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한 점을 감안하여 작위만은 유지했다.- published: 1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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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
published: 14 Mar 2014
고구려 수나라 전쟁 (6/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고구려 수나라 전쟁 (6/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cond Goguryeo-Sui War,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Goguryeo and the Chinese Sui Dynasty. Goguryeo cavalry forces, pursuing the Sui army, attacked and defeated it at the Salsu River. History In AD 612 the Sui Emperor Yangdi invaded Goguryeo with over one million men.[3] However, Goguryeo defiantly resisted its enemy. Emperor Yangdi dispatched 305,000 troops to Pyongyang, capital of Goguryeo. Goguryeo Gen. Eulji Mundeok defended fortresses against the Sui army and navy for several months and destroyed the Sui troops while retreating into Goguryeo territory. An ambush at Salsu (Chongchon River) inflicted massive casualties on the Sui forces. When the Sui army had reached Salsu the water level was shallow, as Eulji Mundeok had already cut off the flow of water with a dam. When the Sui troops were halfway across the river, Eulji opened the dam and the onslaught of water drowned thousands of Sui soldiers. The Goguryeo cavalry then charged the remaining Sui forces. The surviving Sui troops were forced to retreat at a breakneck pace to the Liaodong Peninsula to avoid being killed. This led to an overall campaign loss of all but 2,700 Sui troops out of 350,000 men, The Battle of Salsu is listed among the most lethal "classical formation" battles in world history. With victory over the Sui dynasty at the Salsu, Goguryeo eventually won the war itself, while the Sui Dynasty, crippled by the enormous loss of manpower and resources as a result of its Korean campaigns, started to crumble from within and was finally brought down by internal strife, to be replaced soon thereafter by the Tang.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살수(청천강)에서의 전투이다.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 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612년 1월 113만 3800명(보급병 등의 기타 병력을 포함하면 총 200만명에서 400만명 정도이다.)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하루 1군(軍)씩 보내 40일 걸려 겨우 출발이 끝났으며, 깃발은 960여 리에 뻗쳤다 한다. 육군은 요동성(遼東城)으로,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平壤)성으로 향하였다. 그해 4월에는 요하를 건너 별대(別隊)는 양제의 지휘하에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군은 힘써 싸웠으므로 수군은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5천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허실을 보았는데, 적장 우중문(于仲文)은 을지문덕을 사로잡고자 하였으나 유사룡(劉士龍)의 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청야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宇文述)은 후회하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하루에 적과 7전(戰)하였으나 계속 거짓으로 패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도 작전에 속은 것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에까지 밀려왔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군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군이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수나라군이 살수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하였다. 수나라군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요동 반도까지 도망가야 했다. 30만 5천 중 생존자는 2700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특히 신세웅 장군이 이끄는 제 8군은 지휘관인 신세웅 장군을 비롯하여 단 한명조차 생존자가 없이 모두 전멸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을 비롯하여 설세웅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의 작위가 박탈되었다. 단, 설세웅만은 갑옷을 고구려군에게 벗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한 점을 감안하여 작위만은 유지했다.- published: 1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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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나라 전쟁 (5/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
published: 14 Mar 2014
고구려 수나라 전쟁 (5/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고구려 수나라 전쟁 (5/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cond Goguryeo-Sui War,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Goguryeo and the Chinese Sui Dynasty. Goguryeo cavalry forces, pursuing the Sui army, attacked and defeated it at the Salsu River. History In AD 612 the Sui Emperor Yangdi invaded Goguryeo with over one million men.[3] However, Goguryeo defiantly resisted its enemy. Emperor Yangdi dispatched 305,000 troops to Pyongyang, capital of Goguryeo. Goguryeo Gen. Eulji Mundeok defended fortresses against the Sui army and navy for several months and destroyed the Sui troops while retreating into Goguryeo territory. An ambush at Salsu (Chongchon River) inflicted massive casualties on the Sui forces. When the Sui army had reached Salsu the water level was shallow, as Eulji Mundeok had already cut off the flow of water with a dam. When the Sui troops were halfway across the river, Eulji opened the dam and the onslaught of water drowned thousands of Sui soldiers. The Goguryeo cavalry then charged the remaining Sui forces. The surviving Sui troops were forced to retreat at a breakneck pace to the Liaodong Peninsula to avoid being killed. This led to an overall campaign loss of all but 2,700 Sui troops out of 350,000 men, The Battle of Salsu is listed among the most lethal "classical formation" battles in world history. With victory over the Sui dynasty at the Salsu, Goguryeo eventually won the war itself, while the Sui Dynasty, crippled by the enormous loss of manpower and resources as a result of its Korean campaigns, started to crumble from within and was finally brought down by internal strife, to be replaced soon thereafter by the Tang.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살수(청천강)에서의 전투이다.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 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612년 1월 113만 3800명(보급병 등의 기타 병력을 포함하면 총 200만명에서 400만명 정도이다.)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하루 1군(軍)씩 보내 40일 걸려 겨우 출발이 끝났으며, 깃발은 960여 리에 뻗쳤다 한다. 육군은 요동성(遼東城)으로,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平壤)성으로 향하였다. 그해 4월에는 요하를 건너 별대(別隊)는 양제의 지휘하에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군은 힘써 싸웠으므로 수군은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5천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허실을 보았는데, 적장 우중문(于仲文)은 을지문덕을 사로잡고자 하였으나 유사룡(劉士龍)의 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청야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宇文述)은 후회하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하루에 적과 7전(戰)하였으나 계속 거짓으로 패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도 작전에 속은 것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에까지 밀려왔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군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군이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수나라군이 살수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하였다. 수나라군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요동 반도까지 도망가야 했다. 30만 5천 중 생존자는 2700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특히 신세웅 장군이 이끄는 제 8군은 지휘관인 신세웅 장군을 비롯하여 단 한명조차 생존자가 없이 모두 전멸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을 비롯하여 설세웅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의 작위가 박탈되었다. 단, 설세웅만은 갑옷을 고구려군에게 벗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한 점을 감안하여 작위만은 유지했다.- published: 1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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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나라 전쟁 (4/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
published: 14 Mar 2014
고구려 수나라 전쟁 (4/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고구려 수나라 전쟁 (4/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cond Goguryeo-Sui War,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Goguryeo and the Chinese Sui Dynasty. Goguryeo cavalry forces, pursuing the Sui army, attacked and defeated it at the Salsu River. History In AD 612 the Sui Emperor Yangdi invaded Goguryeo with over one million men.[3] However, Goguryeo defiantly resisted its enemy. Emperor Yangdi dispatched 305,000 troops to Pyongyang, capital of Goguryeo. Goguryeo Gen. Eulji Mundeok defended fortresses against the Sui army and navy for several months and destroyed the Sui troops while retreating into Goguryeo territory. An ambush at Salsu (Chongchon River) inflicted massive casualties on the Sui forces. When the Sui army had reached Salsu the water level was shallow, as Eulji Mundeok had already cut off the flow of water with a dam. When the Sui troops were halfway across the river, Eulji opened the dam and the onslaught of water drowned thousands of Sui soldiers. The Goguryeo cavalry then charged the remaining Sui forces. The surviving Sui troops were forced to retreat at a breakneck pace to the Liaodong Peninsula to avoid being killed. This led to an overall campaign loss of all but 2,700 Sui troops out of 350,000 men, The Battle of Salsu is listed among the most lethal "classical formation" battles in world history. With victory over the Sui dynasty at the Salsu, Goguryeo eventually won the war itself, while the Sui Dynasty, crippled by the enormous loss of manpower and resources as a result of its Korean campaigns, started to crumble from within and was finally brought down by internal strife, to be replaced soon thereafter by the Tang.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살수(청천강)에서의 전투이다.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 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612년 1월 113만 3800명(보급병 등의 기타 병력을 포함하면 총 200만명에서 400만명 정도이다.)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하루 1군(軍)씩 보내 40일 걸려 겨우 출발이 끝났으며, 깃발은 960여 리에 뻗쳤다 한다. 육군은 요동성(遼東城)으로,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平壤)성으로 향하였다. 그해 4월에는 요하를 건너 별대(別隊)는 양제의 지휘하에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군은 힘써 싸웠으므로 수군은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5천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허실을 보았는데, 적장 우중문(于仲文)은 을지문덕을 사로잡고자 하였으나 유사룡(劉士龍)의 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청야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宇文述)은 후회하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하루에 적과 7전(戰)하였으나 계속 거짓으로 패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도 작전에 속은 것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에까지 밀려왔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군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군이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수나라군이 살수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하였다. 수나라군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요동 반도까지 도망가야 했다. 30만 5천 중 생존자는 2700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특히 신세웅 장군이 이끄는 제 8군은 지휘관인 신세웅 장군을 비롯하여 단 한명조차 생존자가 없이 모두 전멸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을 비롯하여 설세웅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의 작위가 박탈되었다. 단, 설세웅만은 갑옷을 고구려군에게 벗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한 점을 감안하여 작위만은 유지했다.- published: 1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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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수나라 전쟁 (9/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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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14 Mar 2014
고구려 수나라 전쟁 (9/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고구려 수나라 전쟁 (9/9) 《The Great Battle of Salsu : Koguryo-Sui war》
The Battle of Salsu was an enormous battle that occurred in the year AD 612, during the second Goguryeo-Sui War,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Goguryeo and the Chinese Sui Dynasty. Goguryeo cavalry forces, pursuing the Sui army, attacked and defeated it at the Salsu River. History In AD 612 the Sui Emperor Yangdi invaded Goguryeo with over one million men.[3] However, Goguryeo defiantly resisted its enemy. Emperor Yangdi dispatched 305,000 troops to Pyongyang, capital of Goguryeo. Goguryeo Gen. Eulji Mundeok defended fortresses against the Sui army and navy for several months and destroyed the Sui troops while retreating into Goguryeo territory. An ambush at Salsu (Chongchon River) inflicted massive casualties on the Sui forces. When the Sui army had reached Salsu the water level was shallow, as Eulji Mundeok had already cut off the flow of water with a dam. When the Sui troops were halfway across the river, Eulji opened the dam and the onslaught of water drowned thousands of Sui soldiers. The Goguryeo cavalry then charged the remaining Sui forces. The surviving Sui troops were forced to retreat at a breakneck pace to the Liaodong Peninsula to avoid being killed. This led to an overall campaign loss of all but 2,700 Sui troops out of 350,000 men, The Battle of Salsu is listed among the most lethal "classical formation" battles in world history. With victory over the Sui dynasty at the Salsu, Goguryeo eventually won the war itself, while the Sui Dynasty, crippled by the enormous loss of manpower and resources as a result of its Korean campaigns, started to crumble from within and was finally brought down by internal strife, to be replaced soon thereafter by the Tang.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살수(청천강)에서의 전투이다.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 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612년 1월 113만 3800명(보급병 등의 기타 병력을 포함하면 총 200만명에서 400만명 정도이다.)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하루 1군(軍)씩 보내 40일 걸려 겨우 출발이 끝났으며, 깃발은 960여 리에 뻗쳤다 한다. 육군은 요동성(遼東城)으로,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平壤)성으로 향하였다. 그해 4월에는 요하를 건너 별대(別隊)는 양제의 지휘하에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군은 힘써 싸웠으므로 수군은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5천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허실을 보았는데, 적장 우중문(于仲文)은 을지문덕을 사로잡고자 하였으나 유사룡(劉士龍)의 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청야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宇文述)은 후회하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하루에 적과 7전(戰)하였으나 계속 거짓으로 패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도 작전에 속은 것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에까지 밀려왔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군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군이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수나라군이 살수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하였다. 수나라군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요동 반도까지 도망가야 했다. 30만 5천 중 생존자는 2700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특히 신세웅 장군이 이끄는 제 8군은 지휘관인 신세웅 장군을 비롯하여 단 한명조차 생존자가 없이 모두 전멸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을 비롯하여 설세웅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의 작위가 박탈되었다. 단, 설세웅만은 갑옷을 고구려군에게 벗어 던지고 종횡무진 활약한 점을 감안하여 작위만은 유지했다.- published: 1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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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9/11)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
published: 24 Mar 2014
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9/11)
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9/11)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nst the Goguryeo between AD 598 and AD 614. It resulted in the defeat of Sui and contributed to the eventual downfall of the dynasty in AD 618. Background The Sui Dynasty united China in AD 589, defeating the Chen Dynasty and ending the division of the country that spanned almost 300 years. After the unification of China, Sui asserted its position as an overlord of neighbouring countries. However, in Goguryeo,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Pyeongwon and his successor Yeongyang insisted on maintaining an equal relationship with the Sui Dynasty. Wendi of Sui was displeased with the challenge from Goguryeo, which continued small scale raiding into Sui's northern border. Wendi sent diplomatic papers in 596 after Sui envoys spotted Goguryeo diplomats in the yurt of the Eastern Turk Khanate, demanding Goguryeo cancel any military alliance with the Turks, stop the annual raiding of Sui border regions, and acknowledge Sui as their overlord. Though Yeongyang appeared to comply with the ultimatum, in the following year, 597, he launched a joint preemptive invasion with the Malgal against Chinese outposts along the border in present-day Hebei province. 고구려-수 전쟁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에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배경 589년 수나라는 오랜 후한 삼국시대 이후 남북조시대를 거쳐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마침내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진을 멸망시키고, 장성 이북의 동, 서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살폈으며, 마침내 수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에 대비하여 방어 준비를 하였다. 수 문제는 이 사실을 듣고 글을 보내 이를 꾸짖었다. 598년 고구려의 영양왕은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遼西))를 선제 공격하였고 수비하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이 겨우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선제공격은 수나라의 북방 요충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수 문제는 진노하여 제1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Goguryeo-Sui_Wars- published: 2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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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11/11)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
published: 24 Mar 2014
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11/11)
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11/11)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nst the Goguryeo between AD 598 and AD 614. It resulted in the defeat of Sui and contributed to the eventual downfall of the dynasty in AD 618. Background The Sui Dynasty united China in AD 589, defeating the Chen Dynasty and ending the division of the country that spanned almost 300 years. After the unification of China, Sui asserted its position as an overlord of neighbouring countries. However, in Goguryeo,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Pyeongwon and his successor Yeongyang insisted on maintaining an equal relationship with the Sui Dynasty. Wendi of Sui was displeased with the challenge from Goguryeo, which continued small scale raiding into Sui's northern border. Wendi sent diplomatic papers in 596 after Sui envoys spotted Goguryeo diplomats in the yurt of the Eastern Turk Khanate, demanding Goguryeo cancel any military alliance with the Turks, stop the annual raiding of Sui border regions, and acknowledge Sui as their overlord. Though Yeongyang appeared to comply with the ultimatum, in the following year, 597, he launched a joint preemptive invasion with the Malgal against Chinese outposts along the border in present-day Hebei province. 고구려-수 전쟁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에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배경 589년 수나라는 오랜 후한 삼국시대 이후 남북조시대를 거쳐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마침내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진을 멸망시키고, 장성 이북의 동, 서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살폈으며, 마침내 수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에 대비하여 방어 준비를 하였다. 수 문제는 이 사실을 듣고 글을 보내 이를 꾸짖었다. 598년 고구려의 영양왕은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遼西))를 선제 공격하였고 수비하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이 겨우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선제공격은 수나라의 북방 요충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수 문제는 진노하여 제1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Goguryeo-Sui_Wars- published: 2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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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1/11)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
published: 24 Mar 2014
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1/11)
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1/11)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nst the Goguryeo between AD 598 and AD 614. It resulted in the defeat of Sui and contributed to the eventual downfall of the dynasty in AD 618. Background The Sui Dynasty united China in AD 589, defeating the Chen Dynasty and ending the division of the country that spanned almost 300 years. After the unification of China, Sui asserted its position as an overlord of neighbouring countries. However, in Goguryeo,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Pyeongwon and his successor Yeongyang insisted on maintaining an equal relationship with the Sui Dynasty. Wendi of Sui was displeased with the challenge from Goguryeo, which continued small scale raiding into Sui's northern border. Wendi sent diplomatic papers in 596 after Sui envoys spotted Goguryeo diplomats in the yurt of the Eastern Turk Khanate, demanding Goguryeo cancel any military alliance with the Turks, stop the annual raiding of Sui border regions, and acknowledge Sui as their overlord. Though Yeongyang appeared to comply with the ultimatum, in the following year, 597, he launched a joint preemptive invasion with the Malgal against Chinese outposts along the border in present-day Hebei province. 고구려-수 전쟁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에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배경 589년 수나라는 오랜 후한 삼국시대 이후 남북조시대를 거쳐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마침내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진을 멸망시키고, 장성 이북의 동, 서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살폈으며, 마침내 수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에 대비하여 방어 준비를 하였다. 수 문제는 이 사실을 듣고 글을 보내 이를 꾸짖었다. 598년 고구려의 영양왕은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遼西))를 선제 공격하였고 수비하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이 겨우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선제공격은 수나라의 북방 요충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수 문제는 진노하여 제1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Goguryeo-Sui_Wars- published: 2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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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8/11)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
published: 24 Mar 2014
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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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nst the Goguryeo between AD 598 and AD 614. It resulted in the defeat of Sui and contributed to the eventual downfall of the dynasty in AD 618. Background The Sui Dynasty united China in AD 589, defeating the Chen Dynasty and ending the division of the country that spanned almost 300 years. After the unification of China, Sui asserted its position as an overlord of neighbouring countries. However, in Goguryeo,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Pyeongwon and his successor Yeongyang insisted on maintaining an equal relationship with the Sui Dynasty. Wendi of Sui was displeased with the challenge from Goguryeo, which continued small scale raiding into Sui's northern border. Wendi sent diplomatic papers in 596 after Sui envoys spotted Goguryeo diplomats in the yurt of the Eastern Turk Khanate, demanding Goguryeo cancel any military alliance with the Turks, stop the annual raiding of Sui border regions, and acknowledge Sui as their overlord. Though Yeongyang appeared to comply with the ultimatum, in the following year, 597, he launched a joint preemptive invasion with the Malgal against Chinese outposts along the border in present-day Hebei province. 고구려-수 전쟁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에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배경 589년 수나라는 오랜 후한 삼국시대 이후 남북조시대를 거쳐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마침내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진을 멸망시키고, 장성 이북의 동, 서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살폈으며, 마침내 수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에 대비하여 방어 준비를 하였다. 수 문제는 이 사실을 듣고 글을 보내 이를 꾸짖었다. 598년 고구려의 영양왕은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遼西))를 선제 공격하였고 수비하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이 겨우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선제공격은 수나라의 북방 요충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수 문제는 진노하여 제1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Goguryeo-Sui_Wars- published: 2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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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4/11)
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
published: 24 Mar 2014
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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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nst the Goguryeo between AD 598 and AD 614. It resulted in the defeat of Sui and contributed to the eventual downfall of the dynasty in AD 618. Background The Sui Dynasty united China in AD 589, defeating the Chen Dynasty and ending the division of the country that spanned almost 300 years. After the unification of China, Sui asserted its position as an overlord of neighbouring countries. However, in Goguryeo,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Pyeongwon and his successor Yeongyang insisted on maintaining an equal relationship with the Sui Dynasty. Wendi of Sui was displeased with the challenge from Goguryeo, which continued small scale raiding into Sui's northern border. Wendi sent diplomatic papers in 596 after Sui envoys spotted Goguryeo diplomats in the yurt of the Eastern Turk Khanate, demanding Goguryeo cancel any military alliance with the Turks, stop the annual raiding of Sui border regions, and acknowledge Sui as their overlord. Though Yeongyang appeared to comply with the ultimatum, in the following year, 597, he launched a joint preemptive invasion with the Malgal against Chinese outposts along the border in present-day Hebei province. 고구려-수 전쟁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에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배경 589년 수나라는 오랜 후한 삼국시대 이후 남북조시대를 거쳐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마침내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진을 멸망시키고, 장성 이북의 동, 서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살폈으며, 마침내 수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에 대비하여 방어 준비를 하였다. 수 문제는 이 사실을 듣고 글을 보내 이를 꾸짖었다. 598년 고구려의 영양왕은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遼西))를 선제 공격하였고 수비하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이 겨우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선제공격은 수나라의 북방 요충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수 문제는 진노하여 제1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Goguryeo-Sui_Wars- published: 2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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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nst the Goguryeo between AD 598 and AD 614. It resulted in the defeat of Sui and contributed to the eventual downfall of the dynasty in AD 618. Background The Sui Dynasty united China in AD 589, defeating the Chen Dynasty and ending the division of the country that spanned almost 300 years. After the unification of China, Sui asserted its position as an overlord of neighbouring countries. However, in Goguryeo,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Pyeongwon and his successor Yeongyang insisted on maintaining an equal relationship with the Sui Dynasty. Wendi of Sui was displeased with the challenge from Goguryeo, which continued small scale raiding into Sui's northern border. Wendi sent diplomatic papers in 596 after Sui envoys spotted Goguryeo diplomats in the yurt of the Eastern Turk Khanate, demanding Goguryeo cancel any military alliance with the Turks, stop the annual raiding of Sui border regions, and acknowledge Sui as their overlord. Though Yeongyang appeared to comply with the ultimatum, in the following year, 597, he launched a joint preemptive invasion with the Malgal against Chinese outposts along the border in present-day Hebei province. 고구려-수 전쟁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에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배경 589년 수나라는 오랜 후한 삼국시대 이후 남북조시대를 거쳐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마침내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진을 멸망시키고, 장성 이북의 동, 서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살폈으며, 마침내 수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에 대비하여 방어 준비를 하였다. 수 문제는 이 사실을 듣고 글을 보내 이를 꾸짖었다. 598년 고구려의 영양왕은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遼西))를 선제 공격하였고 수비하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이 겨우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선제공격은 수나라의 북방 요충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수 문제는 진노하여 제1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Goguryeo-Sui_Wars- published: 2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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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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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guryeo--Sui War were a series of campaigns launched by the Sui Dynasty of China against the Goguryeo between AD 598 and AD 614. It resulted in the defeat of Sui and contributed to the eventual downfall of the dynasty in AD 618. Background The Sui Dynasty united China in AD 589, defeating the Chen Dynasty and ending the division of the country that spanned almost 300 years. After the unification of China, Sui asserted its position as an overlord of neighbouring countries. However, in Goguryeo,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Pyeongwon and his successor Yeongyang insisted on maintaining an equal relationship with the Sui Dynasty. Wendi of Sui was displeased with the challenge from Goguryeo, which continued small scale raiding into Sui's northern border. Wendi sent diplomatic papers in 596 after Sui envoys spotted Goguryeo diplomats in the yurt of the Eastern Turk Khanate, demanding Goguryeo cancel any military alliance with the Turks, stop the annual raiding of Sui border regions, and acknowledge Sui as their overlord. Though Yeongyang appeared to comply with the ultimatum, in the following year, 597, he launched a joint preemptive invasion with the Malgal against Chinese outposts along the border in present-day Hebei province. 고구려-수 전쟁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에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배경 589년 수나라는 오랜 후한 삼국시대 이후 남북조시대를 거쳐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마침내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진을 멸망시키고, 장성 이북의 동, 서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살폈으며, 마침내 수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에 대비하여 방어 준비를 하였다. 수 문제는 이 사실을 듣고 글을 보내 이를 꾸짖었다. 598년 고구려의 영양왕은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遼西))를 선제 공격하였고 수비하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이 겨우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선제공격은 수나라의 북방 요충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수 문제는 진노하여 제1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Goguryeo-Sui_Wars- published: 24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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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100대군 완파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Goguryeo-Sui Wars)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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